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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ㅇ’은 소리가 없다는 왜곡, 주시경이 원조

등록 2020-02-1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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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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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훈민정음 ‘ㅇ’은 초발성이 아니며 소리가 없는 것이라고 왜곡한 주시경과 그로 인한 악영향.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에선 한글 ‘ㅇ’이 단지 장식용이라고 2차 왜곡하여 소개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 ‘자음(輔音)’ 란에선 한글의 기본자인 ‘ㅇ’을 단지 ‘장식용’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훈민정음 ‘ㅇ’은 소리가 없어 초발성이 아니라며 세종대왕을 전면 부정한 주시경의 오해와 왜곡이 국어 정책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때문이다. 

불행히도, 주시경(1876~1914)은 1940년에 발견된 33장의 ‘훈민정음 해례본’ 전체를 보지 못했다. 단지 1905년 여름에 지석영을 통해 ‘문헌비고’의 악고(樂考)에 실린 훈민정음의 일부분만 보고 오해를 했다. 만약 그가 “오행으로 물에 해당하는 목구멍은 온갖 소리가 생겼다가 돌아가는 근원”임을 암시한 ‘훈민정음해례’ 편 3장의 기록을 보았더라면, 서양언어학에 경도되어 ‘대한국어문법(1906)’에서 “음에는 모음과 자음의 분별이 있고, 모음은 스스로 말하는 음이고 모든 음의 근본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훈민정음에서는 중국 전통 성운학에서 ‘성모(聲母)’라고 불렸던 초성을 ‘자모(字母)’, 곧 글자의 모음이라 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가 영어 ‘vowel’을 ‘母音(모음)’으로 번역했다. 사실 vowel은 라틴어 ‘vocalis’에서 비롯된 말로 ‘목소리의’를 뜻하는 ‘vocal’과 동원어인 관계로 ‘母(어미 모)’자를 쓴 ‘모음’이란 번역은 타당치 않다. 더군다나 그 번역어는 전통 용어인 ‘성모(聲母: 초성)’와 혼동을 일으켜 문제가 된다.

이처럼 영어 vowel에서 비롯된 ‘모음’을 독립적인 완전한 소리로 인식한 주시경은 오히려 세종대왕이 작명한 ‘중성(中聲)’이란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여겼다. 그는 ‘국문강의(1906)’에서 ‘간’의 경우엔 ‘ㅏ’가 ‘ㄱ’과 ‘ㄴ’의 가운데에 있어 ‘중성’이란 명칭이 문제가 없지만, ‘가’의 경우엔 ‘ㅏ’가 가운데에 있지 않아 ‘중성’이란 명칭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가 만약 훈민정음해례본 ‘종성해’의 “종성 ‘ㅇ’은 경미하고 속이 빈 소리여서 종성에 반드시 쓰지 않아도 된다” 부분과 훈민정음 언해본의 ‘솅(世)’자를 살폈더라면, 그런 망발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시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문강의’에서 ‘악’이나 ‘아’라고 했을 때 ‘ㅇ’은 소리가 없으므로 ‘ㅏ’의 중성 명칭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만약 그의 인식대로 ‘ㅇ’이 진실로 소리가 없는 것이라면, 소리의 면에서 ‘악’의 ‘ㅏ’는 초성이 되며, ‘아’의 ‘ㅏ’는 가운데소리가 될 수 없다. 허나 이 또한 그가 만약 ‘훈민정음해례’ 편 2장의 “(‘ㅇ’은 속이 빈 대나무관에서 나는 피리 소리처럼) 목구멍 속이 텅 비어서 막힘없이 나는 소리”라는 기록을 보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망발이다.  

<사진>에서 보듯, 주시경은 ‘국어문전음학(1908)’에서 훈민정음 목구멍소리 초성 ‘ㅇ’에 대해 “(훈민정음에서) ㅇ如欲字初發聲은 ‘욕’의 ‘ㅛㄱ’을 제하고 그 여음이라 함이라. 그러나 ‘欲’의 음은 ‘ㅛㄱ’ 뿐이요 초발하는 음이 없으니 ‘ㅇ’은 有若無하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말의 소리(1914)’에선 “ㅇ는 소리가 업는 것이니라” 하면서 ‘중성’을 서양의 ‘모음’과 동일시하면서 ‘홀소리’라 칭한 다음 “홀로 나는 소리를 이름이니라”고 하였다.

세종께서는 훈민정음 어제서문에서 “ㅇ은 欲(욕)자 처음 펴나는 소리 같으니라”라고 천명하였다. 그런데 주시경은 훈민정음과는 체제가 다른 서양언어학의 ‘모음’ 이론을 근거로 삼아 해례본의 설명을 정면 부정했다. ‘ㅇ’에 대한 상세한 사항은 ‘한글+한자문화’ 2020년 1월호 <훈민정음 목소리 ‘ㅇ’과 중성에 대한 이해> 편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문제는 ‘ㅇ’에 대한 주시경의 오해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표준국어대사전’ 등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에선 우리나라 사전 등의 말을 곧이듣고 훈민정음 초성 ‘ㅇ’은 발음되지 않으며 단지 장식 역할만 할 뿐이라고 2차 왜곡하여 소개(baike.baidu.com/item/辅音)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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