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해례본 ‘索(색)’자에 권점이 붙은 까닭
박대종의 ‘문화소통’
4성 권점을 붙이는 규칙은, 글자에 밀착시키되 낮은 소리인 평성은 글자의 왼쪽 아래에 권점을 찍었다. 그걸 기점으로 상성·거성·입성의 권점은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즉, 위로 올라가는 소리인 상성의 권점은 글자의 왼쪽 위, 가장 높은 소리인 거성은 글자의 오른쪽 위, 높은 소리이되 받침이 ‘ㄱ·ㄷ·ㅂ’인 입성의 권점 위치는 오른쪽 아래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삭’과 ‘색’의 두 음을 가지고 있는 ‘索’자가 단 한 차례 쓰였다. <사진1>에서 보듯, ‘훈민정음해례’ 편 1장의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지금 정음을 제작하신 것은 처음부터 재지(才智)로 만들고 ‘力索’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성음에 의거하여 그 이치를 다한 것일 뿐이다)” 문장에 쓰였다. 여기 ‘力索’이라는 단어의 ‘索’자에 ‘입성 권점’이 찍혀 있다. 문제는 ‘索’의 음 중에서 ‘삭’도 입성이요, ‘색’도 입성이라는 점이다. ‘力索’을 ‘력삭’으로 읽을 때와 ‘력색’으로 읽을 때는 그 뜻이 서로 다르다. ‘力索’의 바로 앞에 쓰인 ‘智營(지영: 재주와 슬기로 만듦)’이라는 단어는 중국에는 없고 훈민정음 해례본 제작진이 처음으로 쓴 말이다. 그러나 ‘力索’은 세종 이전 중국 한나라의 왕포(王褒)가 BC59년에 지은 ‘동약(僮約)’에 나오는 말이다. 거기에서 ‘力索’은 ‘힘이 다함, 지침’의 뜻을 나타내며, ‘력삭’으로 읽는다. ‘索’이 ‘다하다’의 뜻일 때는 ‘삭’ 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례본 내 ‘力索’이 쓰인 문장을 “지금 전하께서 정음을 제작하심은 처음부터 재주와 슬기를 부려 만들고 힘이 다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면 말이 되질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선 용비어천가(1447)를 봐야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의 8학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제작한 용비어천가를 보면, ‘索’이 ‘삭막할 삭(권1, 28장)’일 때는 비록 입성이라도 입성 권점을 찍지 않았다. 반면 권1, 48장에서처럼 ‘찾을 색’일 때는 입성 권점을 찍었다. ‘삭’은 ‘索’의 일반적인 음이고, ‘색’은 ‘삭’에 비해 덜 일반적인 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비어천가를 통해, 해례본 내 권점 찍힌 ‘力索’은 ‘력색’으로 읽어야 하고, ‘애써 찾다’의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索(삭막할 삭)’의 글꼴은 주나라 금문에서 진나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두 손을 그린 ‘廾(공)’자가 생략돼, 결과적으로 ‘素(흴 소)’의 자형만 남았다. 素(소)는 糸(실 사)와 垂(드리울 수)의 옛글자로 이루어져, 물들이지 않은 본디의 흰 명주실 타래를 늘어뜨린 모습에서 ‘희다, 본디, 바탕’ 등을 뜻한다. ‘索(삭)’은 실타래의 모습에서 나아가 ‘노끈→새끼줄→새끼를 꼬다’의 뜻도 나타낸다.(해석: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