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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제1위 중성 ‘•(하늘 아)’에 접속하기

등록 2020-09-2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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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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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는 조선에 온 지 3년 만에 한글을 스스로 깨우치고 훈민정음에 가까운 철자법으로 ‘사민필지’(1889)를 썼다. ‘•’는 ‘ㅏ’와 유사하나 입이 더 작게 벌어지며, 중국어에서 ‘ㅡ’로 발음되는 한자음은 우리 정음에선 대부분 ‘•’ 소리다.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제1위 중성 ‘•(하늘 아)’는 ‘점’이 아니라 ‘원’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옛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반영돼, 훈민정음 해례본에선 ‘•’를 ‘呑(ㅌ•ㄴ: 탄자 중성)’ 외에 ‘원’으로 칭했다(증거: 用初生義一其‘圓’...欲穰兼人爲再出, 二‘圓’爲形見其義).

‘•’ 소리는 우리 민족의 특수한 정체성으로,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 그 소리를 발성하고 있다. 다만, 일제의 언문철자법(1930)에서 글자 삭제 후 오늘날엔 그 실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발음하고 있을 뿐이다. 그 무의식 속의 ‘•’ 소리를 의식으로 끄집어내어 온 국민이 바르게 쓸 수 있다면 훈민정음은 다시금 그 영롱한 빛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ㅏ’와 유사한 ‘•’가 정확히 어떤 소리를 나타내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해례본의 설명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해례편 4장에서는 “•舌縮而聲深(•설축이성심)”이라 하였다. ‘•’는 혀가 수축되고 입안 뒤쪽의 소리, 곧 ‘후설중성’이라는 말이다. 뒤이어 해례편 5장에서는 ‘개구도(開口度: 발음 시 입을 벌리는 정도)’와 ‘입술의 오므려짐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ㅗ與•同而口蹙(ㅗ여•동이구축), ㅏ與•同而口張(ㅏ여•동이구장)”이라 하였다. 2019년 5월14일자 <아래아(•) 음, 제주도 방언에만 남아있을 리가>에서 밝힌 것처럼, “ㅗ는 •와 같은 반폐음(半閉音)이나 입을 오므리는 것이 다르다. 즉, ㅗ는 원순음이고 •는 평순음이다. ㅏ는 •와 같은 평순음이나 •에 비해 입이 더 벌어지는 개음(開音)이다”라는 뜻이다.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 박사는 미국인이다. 그는 1886년 내한하여 외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글(헐버트는 ‘조선 언문’이라 하였음)을 4일 만에 스스로 깨우치고 3년만인 1889년에 한글로 ‘사민필지(士民必知: 선비와 백성이 필히 알아야 할 책)’를 썼다. 그는 세종대왕처럼 ‘士’의 음을 ‘사’가 아닌 ‘ㅅ•’로 적었다. 그리고 훈민정음해례 편 21장에 쓰인 ‘사람’과 똑같이 ‘사’의 중성엔 ‘ㅏ’를, ‘람’의 중성엔 ‘•’를 썼다.

외국인의 조선 언문 습득이 이와 같을진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 중성을 습득하여 쓰는 것은 더 쉬울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처음에 혼자서 ‘사람’을 발음해보고 관찰했다. 입의 벌어짐 정도에 유의하며 집중 관찰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람’의 ‘ㅏ’가 앞 ‘사’의 ‘ㅏ’보다 입이 더 작게 벌어지는 것을 인지하고 탄성을 질렀다. ‘사랑’은 ‘사람’과는 달랐다. ‘사랑’의 ‘사’는 분명 ‘랑’의 ‘ㅏ’ 보다 입이 더 작게 벌어졌다. 세종대왕 당시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에서도 ‘사랑’을 표기할 때 ‘사’의 중성을 ‘•’로 적은 것을 보고, 조상들과 연결됨을 느꼈다. ‘바람(風)’의 경우는 입의 벌어짐 정도가 ‘바’와 ‘람’ 모두 작았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문헌들에서 ‘바람’을 모두 ‘•’로 표기한 것이 완전히 이해됐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우리의 발음들은 지역과 사람 별로 달라진 경우가 있지만, 많은 경우 세종대왕 당시 음을 그대로 발하고 있어 희망적이다. 두 중성 모두 ‘•’를 쓰는 ‘ㅂ•ㄹ•ㅁ(風)’과는 달리, 법화경언해(1463)에 나오는 ‘바라다’의 명사형 ‘ㅂ•람(望)’과 용비어천가 10장에 나오는 ‘바라보다’의 ‘ㅂ•라다(望)’는 ‘람, 라’의 중성이 ‘ㅏ’이다.

우리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 ‘하다’와 ‘~하다’의 ‘하’가 입이 작게 벌어지는 ‘•’ 중성임을 스스로 감 잡았다면, ‘하늘 아(•)’자에 대한 파악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참고로, 중국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중국 한자음과 비교해가면서 우리말 한자음의 ‘•’를 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다. <사진> 속 도표 ‘孟子(맹자←ㅁㆎㆁㅈ•)’와 그 중국음 ‘멍즈’에서 보듯, 한자어의 우리말 정음이 ‘•’인 것은 중국어에선 예나 지금이나 ‘ㅡ’ 중성으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사민필지(士民必知)’의 ‘士’를 중국인들은 권설음 ‘스[shì]’로 발음하니, ‘士’의 우리말 정음은 ‘사’가 아닌 ‘ㅅ•’이다. 그와 달리 ‘사막(沙漠)’의 ‘沙’를 중국어에선 ‘스’가 아닌 ‘샤[shā]’로 발음하니, ‘沙’의 우리말 정음은 ‘ㅅ•’가 아닌 ‘사’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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