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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문화재청 ‘훈민정음 정본 제작연구’ 보고서, 납득불가

등록 2020-10-1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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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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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1> 멸실된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맨 앞 장에 대한 이용준의 1차 복원본(1940)과 ‘御製訓民正音’ 등 오탈자를 바로잡은 박대종의 복원본(2018).
[서울=뉴시스]  한글날에 즈음하여,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와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국보1호 ‘남대문’을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꿔달라는 청원서다.

우리말과 글이 사라지려던 1940년 무렵, 빛처럼 나타난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다. 그것이 국보 1호가 되기 위해선 멸실된 맨 앞 두 장에 대한 바른 복원이 선행돼야 한다. <사진1>에서 보듯, 1940년 경 이용준이 복원하면서 많은 오탈자를 냈기 때문이다. 그의 가장 큰 실책은 ‘세종대왕이 지은 글’임을 뜻하는 ‘御製(어제)’를 누락시킨 일이다.

이용준의 복원 부위에 ‘御製’가 빠져있음을 처음 발견한 이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안병희 교수이다. 안교수는 <사진2>의 ①보물 제745-1호 1459년 월인석보 내 훈민정음 언해본과 ②1446년 음력 9월 29일자 세종실록 기록을 근거로 해례본 낙장의 권두서명이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임을 밝혔다. 이어 필자는 ③2015년 박대종 복원 훈민정음 언해본과 ④국보 제71호 동국정운 서문에 기재된 ‘御製訓民正音’을 권두서명의 증거로 추가 제시했다. (상세한 사항은 2017년 12월23일자 주간한국 ‘문화재청 훈민정음 복원 학술발표에 대한 반론’ 참고요)

문화재청에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7년 학계에 용역을 주어 훈민정음 해례본의 낙장 부분에 대한 정본작업을 실시했다. 당시 해당 용역 연구 책임자는 훈민정음학회장인 한재영 한신대 교수이다. 이 용역의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2017년 12월 문화재청에서 발간한(50000-001754-01)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정본 제작 연구’ 보고서를 보면, 연구자들의 의견은 통합되지 않고 셋으로 분열됐다.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세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훈민정음 해례본의 권두서명이 ‘御製訓民正音’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은 소수의견(한재영 책임연구원)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소수의견의 안은 이미지 파일로 구현하여 제시하지는 않기로 하였다. 이미지 파일로 구현할 때에 필요한 ‘御製’ 두 글자의 적절한 예를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보고서 25~26쪽)

둘째, “권두서명에 ‘御製’가 있을 가능성과 없을 가능성은 둘 다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하나의 안만을 제시해야 할 경우에는 ‘御製’를 넣는 쪽이 더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미 이루어진 언해본 정본 제작 사업에서는 ‘御製’를 넣지 않는 것으로 하였기에 그 안을 근거로 권두서명을 ‘訓民正音’으로 하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보고서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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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2> 훈민정음 해례본 낙장의 권두서명이 ‘御製訓民正音’이라는 직접 증거 4가지. ①보물 제745-1호 1459년 월인석보 내 언해본 ②1446년 음력 9월 29일자 세종실록 기록 ③2015년 박대종 복원 언해본 ④국보 제71호 동국정운 서문
셋째, 박창원 이화여대 교수 왈, “책의 권두서명이 『訓民正音』이며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만일 권두서명이 ‘御製訓民正音’이라면 이 책의 말에 있는 정인지 서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마치 정인지의 ‘御製’와 같은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 전체의 권두서명으로는 ‘御製訓民正音’이 아니라, ‘訓民正音’이 되어야 한다. (보고서 90쪽)

당시 토론자로 참석한 박창원 교수의 위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언해본의 주석처럼 ‘御製’는 ‘임금 지으신 글’이고, 정인지가 임금이 아님은 천하공지의 사실인데, ‘정인지 후서’와 무슨 충돌이 일어나며 어떻게 ‘어제훈민정음’이 정인지의 ‘어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내 새로 28자를 맹가노니”라는 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용준이 ‘御製’를 누락시킨 관계로, 훈민정음을 세종이 아니라 집현전 학자들이 지었다느니, 신미가 지었다느니 하는 대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 현재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신임회장이자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으로 있는 박창원 교수는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당시 말을 거꾸로 한 것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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