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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X-어제훈민정음 O, 이것이 증거

등록 2020-10-2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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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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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1> 국보 제71호 동국정운(1447) 권제1 신숙주의 서문은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1446) 맨 앞 4개장의 권두서명이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임을 증거하는 직접 증거 4가지 중 하나다.
[서울=뉴시스]  책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지는 총 33장(‘33엽’이라고도 함)이다. 그 중 맨 앞 4장 분량의 글은 2020년 4월8일자 <훈민정음 ‘해례본’은 ‘해석례의 번본’이다>에서 밝힌 것처럼, 오직 세종대왕만의 글인 “國之語音(국지어음)~便於日用耳(편어일용이)”까지의 ‘어제서문’과 “ㄱ。牙音~點同而促急”의 ‘어제강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4개장의 소제목(권두서명)은 <사진1>에서 보듯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이다.

‘어제훈민정음’ 4개장은 임금이 지은 글이라 큰 글씨로 썼고, 그 뒤쪽 집현전 8학자들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훈민정음해례’ 편 29개장은 작은 글씨로 썼다. 8명의 신하들이 임금의 1444년 1월 초고 중에서 손을 대어 보다 상세한 설명을 가한 부분은 주로 훈민정음 28자의 ‘용례(用例)’와 ‘뜻(義)’ 등을 간략히 적은 ‘예의(例義)’ 부분이다. 물론, ‘어제훈민정음’ 편 중 ‘어제강령(☜여기는 단 하나의 용자례나 뜻(義) 설명이 없어 例義라 할 수 없음)’ 부분은 핵심지침 사항이어서 ‘훈민정음해례’ 편에서도 거듭 자세히 설명했다.

1940년 경 ‘훈민정음’ 해례본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큰 문제가 생겼다. 맨 앞 두 장이 떨어져 나가, 이용준이 해례본 뒤쪽 진품 글씨들을 흉내 내어 복원 작업을 했는데, 실수로 권두서명 ‘어제훈민정음’에서 ‘어제’를 빼버렸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의 맨 앞 장 권두서명이 ‘御製’ 있는 ‘御製訓民正音’임을 입증하는 직접 증거들 중 하나는 국보 제71호 ‘동국정운’이다. <사진1>에서처럼 1446년 음력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의 완성 이후 정확히 만 1년 만에 완성된 동국정운의 서문에는 ‘御製’ 있는 ‘御製訓民正音’이 뚜렷하게 보인다. ‘御製’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거기에 쓰인 ‘製(제)’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훈민정음 언해본 내 주석이 증명하듯, ‘御製’는 ‘임금 지으신 글’이며 ‘御製’에서의 ‘製’는 명사로써 ‘지은 글(기록)’을 뜻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동사 ‘만들다’를 뜻하는 ‘제’는 세종의 말씀 “新制二十八字(새로 스믈여듧자를 맹가노니)”에서 증명되듯, ‘衣(옷 의)’ 없는 ‘制(제)’자를 썼다. 

따라서 명사인 ‘御製’를 동사로 오해하고, 동국정운의 “以御製訓民正音定其音(이어제훈민정음정기음)”을 “어제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로 본 것은 오역이다. “(훈민정음 책 중 세종의) ‘어제훈민정음’ 편에 따라 그 음을 정하고”가 바른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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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2> 동국정운(1447)은 훈민정음 해례본(1446) 내 ‘御製訓民正音’에서 세종이 배열한 7음의 오행 순서인 ‘아→설→순→치→후→반설→반치’에 따라 체계적으로 편집됐다. 그에 비해 중국 명나라의 홍무정운(1375)은 ‘ㄷ’ 소리인 ‘설음’을 맨 앞에 두되, 순서에 체계가 없다.
신숙주가 동국정운 서문에서 한 위 말은, 역시 신숙주가 쓴 ‘홍무정운역훈’(1455) 서문 내 다음 문장과 함께 볼 때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夫洪武韻用韻倂析, 悉就於正, 而獨七音先後, 不由其序。然不敢輕有變更, 但因其舊(대저 홍무정운은 운을 씀에 합하고 나눈 것은 모두 바르게 되었으나 유독 7음의 선후에 있어서만은 그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감히 가벼이 변경을 할 수가 없어서, 다만 그 옛 방식을 따르되)”

여기서 7음이란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음’ 순서의 7초성을 말한다. <사진2>에서처럼 홍무정운 권제1을 보면, 7음의 전통적 순서가 아닌 설음 ‘東(둥:ㄷ)’으로 시작하고, ‘설→반설→순→치→후→아→후→순→치→반치→치→아’ 순으로 진행된다. 7음의 배열순서가 체계 없이 매우 어지럽다. 그에 비해 동국정운을 편집할 때는 세종이 ‘어제훈민정음’ 편에서 배열한 대로 7음을 아음 ‘君(군:ㄱ)’에서부터 시작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순서로 정해 바르게 편집하였다. 그러니 동국정운의 “以御製訓民正音定其音”은 구체적으로 “훈민정음 책 중 ‘어제훈민정음’ 편에 따라 그 음(7음)의 순서를 정하고”를 뜻한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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