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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창제 전, 집현전 수찬이 작명한 ‘光化門’

등록 2020-11-18 06:00:00   최종수정 2020-11-18 08: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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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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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395년 정도전이 태조의 명으로 작명한 경복궁 勤政殿(근정전) 앞 제1문 ‘勤政門(근정문)’ 남쪽의 제2문 ‘正門(정문)’은 일반명사 ‘정문’과 구분이 안돼 1426년 세종의 명으로 집현전 수찬이 ‘弘禮門(홍례문)’으로 개명하고, 궁성 남문은 ‘光化門(광화문)’으로 작명했다.
[서울=뉴시스]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정궁(正宮)이고,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 정문(正門)이다.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에서는 광화문에 대해 한국의 나랏문(國門)이라 하면서, “1395년 태조 때 건축됐는데 처음 이름이 ‘四正門(사정문)’이었던 것을, 세종 7년(1425)에 ‘光化門(광화문)’으로 개명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바이두의 위 설명은 네이버에서 ‘광화문’이라 치면 곧바로 보이는 두산백과사전의 다음 설명을 참고한 것이다.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년)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바꾸었다.”

그러나 광화문을 처음에 정도전이 ‘사정문’으로 이름 지었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1395년에 창건되었다는 말도 잘못이다. 아래와 같은 1395년 음력 10월7일자 태조실록 기록을 오해한 것이다.

“정도전에게 명하여 새 궁궐과 여러 전각들의 이름을 짓게 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의 의미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은 ‘경복궁(景福宮)’이라 하고, 연침(燕寢)은 강녕전(康寧殿), 연침의 남쪽은 사정전(思政殿)이라 했으며, 또 그 남쪽 전각은 근정전(勤政殿)이라 하고, 그 전문(殿門)은 근정문(勤政門), 그 남쪽 문[午門]은 ‘정문(正門)’이라 하였다.”

위 태조실록 기록을 대할 때, 아직 경복궁의 ‘궁성(宮城)’은 축조되지 않은 때였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진>에서 보듯, 정도전이 ‘정문’이라 칭한 문은 근정문 바로 앞(남쪽)에 있는 ‘홍례문(1426년 세종 때 지어진 이름으로 후에 ‘흥례문(興禮門)’으로 바뀜)’을 말한다. 정도전이 이름 지은 1395년 음력 10월엔 근정전 앞 남쪽에는 2개의 문만 있었다. 그때는 궁성이 미완성 상태라 궁성의 남문인 ‘광화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궁궐을 먼저 짓고, 궁성은 나중에 쌓았다. 경복궁성은 태조실록 1398년 음력 1월13일자 “궁성을 쌓는 역졸들에게 양식을 주라고 명했다” 기록처럼 1398년부터 본격 축조되었고, 1399년 음력 1월19일 정종 때 새 수도의 궁성과 외성이 모두 신축되었다.
 
정도전이 지은 이름 중 ‘경복궁’, ‘근정전’, ‘근정문’, ‘강녕전’, ‘사정전’의 명칭은 6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근정문’ 바로 앞의 ‘정문(正門)’은 정도전의 훌륭한 의미부여에도 불구하고 왕궁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지 못했다. ‘정문’은 민간에서도 널리 쓰는 ‘건축물 정면의 주요한 문을 뜻하는 일반명사 ‘정문(front door)’과 같아, 고유명사로 인식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세종 8년(1426) 음력 10월26일 세종대왕은 집현전 수찬(修撰)에게 근정전의 제1문인 ‘근정문’을 제외한 경복궁의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도록 명했다. 그에 따라 수찬은 근정전 앞 제2문을 ‘홍례문(弘禮門)’, 제3문을 ‘광화문(光化門: 궁성 남문)’이라 하고, 근정전 동랑(東廊)의 작은 문은 ‘일화문(日華門)’, 서쪽 작은 문은 ‘월화문(月華門)’이라 하였으며, 궁성 동문은 ‘건춘문(建春門)’, 서문은 ‘영추문(迎秋門)’, 근정문 앞 돌다리는 ‘영제교(永濟橋)’라 하였다.

집현전 수찬은 정6품 벼슬이다. 세종으로부터 위와 같은 명을 받은 이는 1425년 음력 11월29일 집현전 수찬에 제수된 ‘김빈(金鑌)’으로 보인다. 1425년 5월11일자 세종실록에 ‘집현전 수찬’으로 기록된 ‘권채(權採)’도 함께 명을 받았을 수 있다. 이때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이다.

1413년 음력 3월에 하륜(河崙) 등이 찬술한 ‘태조실록’은 1448년 세종의 교지에 따라 증보 편수된다. 새 궁궐의 준공 상황을 적시한 태조 4년(1395) 음력 9월29일자 기록을 살펴보자. “이 달에 태묘 및 신궁이 준공되었다... 정전(正殿: 근정전)은 5칸으로 조회를 받는 곳이며 보평청의 남쪽에 있다. 전문(근정문) 3칸은 정전의 남쪽에 있고, 오문(홍례문) 3칸은 전문의 남쪽에 있다. 동문은 ‘일화문’이라 하고, 서문은 ‘월화문’이라 한다.”

위에서 증보된 곳은 ‘일화문’과 ‘월화문’ 부분이다. 정도전이 그 이름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기록 “後築宮城, 東門曰建春, 西曰迎秋, 南曰光化門(후에 궁성을 축조하였고, 동문은 ‘건춘문’, 서문은 ‘영추문’, 남문은 ‘광화문’이라 하였다)” 또한 세종 때 증보된 부분이다. <계속>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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