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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일제 36년’이라고 늘리는 심리

등록 2015-03-01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4: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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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01>

 ‘일제 36년’이 입에 배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단기 4278년(1945) 9월7일 국민대회 준비회는 “우리는 ‘이 날’이 오기를 이미 36년 간 기다려 왔으며 이는 바로 선열들의 피로 바꾸어 온 행복이며 평화를 위해 싸워온 동맹의 깊고 두터운 우정의 결실로써 전 세계 인민들은 반드시 이들을 위해 추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이 날’을 경축할 수 없는 선열의 영령 및 연합국의 의병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바입니다”라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일제침략하 한국 36년사’와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 등 책, ‘일제 36년 식민지배의 잔영’ ‘죽지 않는 일제 36년의 망령’ ‘일제 36년을 증언한다 다시는 치욕의 역사 없도록’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일제강점 36년’ ‘일제강점 36년이 한국인의 의식에 남긴 영향’ 등 논문, 그리고 ‘잃어버린 36년: 의열단’ 등 보도기사에 이르기까지 ‘일제 36년’은 관용구처럼 뿌리박혔다.

 ‘일제 36년’은 그러나 틀린 말이다. 35년, 정확히는 34년 11개월 14일이다. 1876년 강제 당한 불평등 강화도 조약을 기점 삼으면 69년, 1905년 12월 을사늑약으로 계산하면 38년이기는 하다.

 전범국 일본은 한국병합(일한병합·조선병합·일한합방) 기간을 1910년 8월29일~1945년 9월9일, 35년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9월9일은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미국 제24군단 존 하지 중장과 제7함대 사령관 T C 킨케이드 제독에게 항복서를 낸 날이다.

 한국에게 9월9일은 의미가 없다. 1910년 8월29일 일·한 병탄조약 당일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헤아리면 34년 11개월 14일이다. 반올림 해도 35년이건만, 줄곧 36년이라고 말해 왔다. ‘한국나이’처럼 햇수로만 따졌다.

 서지학자 김연갑은 “1910년 정한론 이후 운요호(雲楊號)사건, 갑신정변, 갑오개혁,한·일 강제의정서, 을사늑약, 경술국치를 거쳐 어둠의 식민지배가 1945년까지 이어졌으니 36년, 아니 360년으로 표현해도 부족할는 지 모른다”면서도 “이런 인식은 바꿔야 한다. 역사는 주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라고 했다가 ‘일제항쟁기’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항쟁해 해방됐으니 항쟁한 기간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일본 통치시대의 조선’, 중국과 다른 나라들은 ‘조선일점기(朝鮮日占期)’ ‘조선일치기(朝鮮日治期)’, ‘일본 통치기 조선’ 등으로 부르고 있다.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해방이고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는 것은 광복이다)

 일제항쟁기는 36년도, 35년도 아닌 8년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바로 알기’의 저자 이봉원의 우국적 견해다. 임정 27년에 주목한다. “대만국립정치대학의 후춘혜 교수가 한 다음의 말이, 가장 짧으면서도 핵심을 짚은 그래서 우리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했던 의미가 아닐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27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 업적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는, 대한 민족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꿋꿋이 견디어 나가는 불요불굴의 정신과 일본 제국주의에 결단코 투항하지 않는다는 자주독립의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나라 밖 중국에서 27년 간 존재하고 분투했다는 사실은, 일본이 그 기간 동안 한국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병은 알리고…’식으로 피해정도를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40년이라고 과장한 경우도 있다. “8월 보름날 일본황제 히로히토가 그 신성하다는 입을 열어 눈물 섞인 소리로 카이로 선언을 수락한다는 방송을 한 그 순간부터 그새 40년 간을 조선을 뺏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의 주권은 소멸되고 한국은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김동리 ‘내 나라’, 1946년 5월25일 가정신문)  

 사망진단서에 ‘78세 몇 개월’이라고 기재된 할머니를 “여든살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어떤 후회와 효심을 대일 항쟁기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피학이다. 25년을 사반세기라고 칭해 역사와 전통을 뻐기는 관행을 떠올린다면 해괴하다. 고통의 국권 피탈세월은 35년이다.

 오늘은 제96주년 3·1절이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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