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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①] 나는 왜 ‘키덜트’가 됐나

등록 2015-03-31 15:36:18   최종수정 2016-12-28 14: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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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키덜트 & 하비 엑스포 2015'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다음 전시는 오는 8월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다. 2015.01.18.  [email protected]
아이들과도 싸우는 ‘어마무시한’ 어른들의 장난감 세계 자동차 가격 맞먹는 RC카…‘지름신’ 부른다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마트에서 마지막 한 개 남은 ‘한정판 로봇 장난감’ 한 개를 두고 어린이, 청소년들과 ‘피 튀기는’ 경쟁을 하는 사람, 30대 후반 남성이다.

 그가 이 장난감을 사려는 것은 자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그렇다고 조카를 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간직하고 싶어서다. 

 피규어, 프라모델, 레고, RC카, 드론, 3D 프린터 등이 최근 뜨고 있다.

 ‘키덜트(Kidult)족’ 덕이다. ‘키드(Kid·어린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어린이 같은 어른’을 말한다. 

 이들은 과거 같으면 “철없다” “세상 물정 모른다” 등 비아냥을 들을 만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수백만원씩 들여 사람 키만 한 피규어를 구입하기도 하고, 10년 된 소형차를 타면서도 같은 가격대의 RC카를 몇 대씩 산다. 사실 소형차도 이를 싣고 운동장으로 가기 위해 필요할 뿐이다.

 국내에는 아직 낯설기만 한 3D 프린터를 구입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직접 자신만의 아이템을 만들기도 하고, 어린이들이 색칠놀이를 하는 것처럼 캐릭터 피규어에 직접 색을 입혀 나만의 피규어를 만들기도 한다.

 성인 남성들이 어린이처럼 장난감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아직 걸음마 수준인 국내 키덜트 시장은 얼마다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요술차 마술봉 딱부리 삐삐 찌찌 힘을 모으자. 키덜트 세계로 들어가 보자.”

 #1. 지난해 6월15일 자정 무렵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설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슈퍼마리오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제목과 함께 서울 지역 맥도날드 매장 앞에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잇달아 올라왔다.

 16일 0시를 기점으로 맥도날드가 판매하는 ‘해피밀 슈퍼마리오 시리즈’를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 감자튀김, 청량음료로 이뤄지는 ‘어린이 세트’인 해피밀 판촉 확대를 위해 장난감을 증정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그 해 5월30일 슈퍼마리오 시리즈 피규어 1차 판매분 4종을 처음 출시했는데 사흘 만에 매진됐다. 이 때문에 애초 6월23일부터 판매하려던 2차 판매분 4종을 1주일 앞당겨 이날부터 판매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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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키덜트 & 하비 엑스포 2015'를 찾은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다음 전시는 오는 8월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다. 2015.01.18.  [email protected]
 그런데 이들은 거의 어린이가 아니었다. 20~40대 성인들이었고 상당수가 남성이었다. 1990년대 일본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을 통해 슈퍼마리오에 열광했던 30~40대가 추억 속 캐릭터 피규어를 간직하기 위해 심야에 맥도날드 앞에 진을 쳤다.

 물론 이들 중에는 자녀 품에 해피밀 슈퍼마리오를 안겨주기 위해 심야에 몇 시간이나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치 않은 아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곧 ‘희귀템’이 될 슈퍼마리오 시리즈를 손에 쥐기 위해서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아예 줄서기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인기 속에 2차분은 이틀 만에 완판됐다.

 #2. 40대 대기업 부장 김모씨는 요즘 주말이 기다려진다. ‘쉬고 싶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건 진짜 이유도 아니다. 바로 ‘쿼드콥터’를 갖고 놀기 위해서다.

 쿼드콥터는 로터(회전날개)가 4개인 비행체를 말한다. 흔히 ‘드론(Drone)’이라 불리는 바로 그 장난감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초등학생 딸에게 인형을 사주기 위해 마트 장난감 코너를 찾았다가 쿼드콥터를 시연하는 것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19만8000원을 주고 구매했다.

 물론 의욕처럼 쉽게 조종하지는 못해 여러 번 추락시켰지만, 겨우내 매일 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꾸준히 연습한 끝에 이제는 자유자재로 쿼드콥터를 날릴 수 있게 됐다.

 남들이 일행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빠짐없이 담기 위해 셀카봉을 최대한 높이 들어 올리거나 그것도 모자라 셀카렌즈까지 동원할 때 김씨는 쿼드콥터를 지상 10여 m 상공에 띄워 올릴 뿐이다.

 그러면 쿼드콥터가 하늘을 날며 몸체에 부착된 초소형 HD 카메라로 일행의 모습은 물론 지상에서라면 결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광경들을 가득 담아낸다. 

 손가락만 한 피규어 캐릭터 인형부터 마음껏 하늘을 나는 최첨단 드론까지 장난감에 열광하는 어른들, 키덜트족이 급증하고 있다.

 많은 심리학자는 키덜트족에 관해 “20대 이상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어렸을 적의 분위기와 감성을 간직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갖가지 향수들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그 경험들을 다시 소비하기 위해 장난감에 탐닉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부모의 지갑이 열리기만 목 놓아 기다렸던 어린 시절과 180도 달라졌다. 자신만의 구매력을 갖게 된 키덜트족은 제아무리 고가라고 해도 필요하다 싶을 경우 과감히 사들인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장난감을 갖고 싶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어른으로서의 보상심리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키덜트, 무엇을 갖고 놀까

 키덜트족이 사랑하는 장난감은 크게 전통적인 의미의 장난감과 최첨단 ICT(정보통신) 제품이 키덜트족에 의해 장난감이 된 것 등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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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5 키덜트 엑스포에서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한 관람객이 스파이더맨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03.29.  [email protected]
 전자는 만화나 영화 캐릭터를 활용한 피규어, 레고 시리즈 등이 해당한다.  

 일본 SF 애니메이션 ‘건담’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갖가지 피규어는 키덜트 시장의 대표적 아이템이다. 10대 시절 소형 건담 피규어에 만족해야 했던 마니아들은 성인이 되자 곧바로 수십만~수백만원대 건담 피규어를 거침없이 ‘지르고’ 있다.

 이에 맞불을 놓는 것은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를 토대로 한 캐릭터 피규어들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 ‘제다이’ ‘다스베이더’ 등과 ‘제국 군대’가 키덜트 컬렉터용 피규어 제품군으로 국내에 등장했고,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옵티머스 프라임’ ‘범블비’ ‘메가트론’ 등 변신 로봇들도 영화처럼 로봇에서 차로, 차에서 로봇으로 변신하면서 키덜트 시장에서 각광 받고 있다.  

 요즘 30대 남성들이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레고의 인기는 키덜트 열풍에 힘입어 사그라들 줄 모른다. 국내 최장수 레고 커뮤니티 '브릭인사이드'의 회원 수는 2만5000명에 달한다. 다른 유명 레고 커뮤니티인 ‘레고당’ ‘브릭나라’ ‘브릭스월드’ 등도 나날이 세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후자는 요즘 등장하고 있는 키덜트족이 열광하고 있는 ICT 기술을 채택한 아이템들이다. 처음부터 장난감은 아니었지만, 키덜트족은 이들에게서 가공할 유희성을 엿봐 장난감으로 용도 변경하고 있다.  

 과거 군사용이었던 ‘드론’이 대표적이다. 드론은 사람이 타지 않고 무선전파 유도로 비행하는 비행기나 헬리콥터 모양의 비행체를 말한다.

 초기에는 공군기나 고사포, 미사일 등이 연습 사격을 할 때 적기 대신 표적 구실로 사용됐다. 이후 무선기술의 발달에 따라 정찰기나 무인 공격기로 영역을 넓혔다.

 그런 드론이 계속 소형화하면서 촬영용, 수송용 등으로 쓰이다 아예 개인 취미용, 즉 장난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국내 각 포털사이트에는 드론 동호회가 계속 생겨나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각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앞다퉈 드론을 키덜트족을 위한 장난감으로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 쿠팡의 경우 지난 2월말까지 드론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2.4배에 이르렀다. 주요 구매 계층은 30~40대 남성으로 이들의 비중(55%)이 반을 넘었다.

 드론 인기에 힘입어 전체 무선조종(RC) 제품(드론·RC헬기·RC자동차 등)의 매출도 같은 기간 74%나 급증했다.

 드론 못잖게 각광 받고 있는 ICT 장난감은 ‘3D 프린터’다. 기존 2D 프린터가 전송된 파일에 맞춰 잉크를 종이 표면에 분사, 2D 이미지인 활자나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라면 3D 프린터는 입력한 도면을 바탕으로 플라스틱 등 소재를 깎거나 쌓아서 3차원 입체 물품을 만들어낸다.

 입체 형태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크게 파우더(석고나 나일론 등의 가루), 플라스틱 액체, 플라스틱 실 등을 종이보다 얇은 0.01~0.08㎜ 층(레이어)으로 겹겹이 쌓아 입체 형상을 만들어내는 적층형과 커다란 덩어리를 조각하듯이 깎아내 입체 형상을 만들어내는 절삭형이 있다.

 세계 최초의 3D 프린터는 1980년대 초 미국 3D 시스템즈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체가 어떤 물건을 제품화하기 전에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플라스틱 액체를 굳혀 입체 물품을 만들게 한 프린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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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5 키덜트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다양한 캐릭터의 장난감이 전시된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2015.03.29.  [email protected]
 초기 플라스틱에 국한됐던 소재는 나날이 발전해 이제 플라스틱은 물론 석고, 나일론. 금속 등으로 확장됐고, 용도도 산업용 시제품 생산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얼리어답터적 성향을 가진 키덜트족들이 이를 이용해 캐릭터 피규어를 직접 제작하면서 장난감화 한 것이다.

 시각에 따라 3D 프린터를 장난감이 아닌, 장난감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도구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 중 일부는 어린 시절 찰흙이나 지점토로 작품을 만들던 추억을 살려 피규어나 각종 기구를 만들고 있는 만큼 3D 프린터 자체를 장난감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키덜트 시장, 유통업계 살리나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은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으며, 현재 연간 7000억원대로 커졌다.

 출산율 저하의 유탄을 맞아 앞으로 어린이 대상 매출이 급감할 것을 우려해 온 유통·완구업계는 가뭄 속 단비가 돼줄 이들 키덜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의 ‘토이&하비 테마관’은 2012년 5월 오픈 이후 경기불황 속에서도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신장이 30~80%로 계속 성장하다 최근에는 100% 가까이 치솟았다.

 이 백화점은 이에 고무돼 지난해 9월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웃집 토토로’(1998),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이상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등 애니메이션들과 작품 속 캐릭터들을 전시하는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 조형전’도 열고 있다. 이 전시회에는 지금까지 약 20만 명이 다녀갔으며, 캐릭터 상품 판매액도 월 2억원에 달한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5일까지 남성 편집매장 ‘큐리오시티 오브 레노마’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의류, 패션 소품, 음향기기뿐만 아니라 ‘아이언맨’ ‘배트맨’ 등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속 인기 캐릭터의 피규어와 드론 등 다양한 키덜트 상품을 팔았다.

 이마트의 경우 취미·조립완구 매출이 2011년에는 전년보다 1.3% 신장을 보이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 23.2%로 상승했다. 완구 내 매출 비중도 2011년 1.25%에서 2014년 4.3%로 점차 확대하고 있다.

 롯데마트 역시 키덜트 수요를 반영해 지난해 RC카, 프라모델, 블록완구 등의 품목 수를 전년보다 30%가량 확대했다.          

 온라인 종합 쇼핑몰 인터파크는 지난해 12월 국내외 500여 브랜드, 250만여 종 상품을 보유한 카테고리 ‘아이토이즈’를 문 열었다. 반다이의 ‘스트라이크 건담 GAT-X105’, 레고의 ‘폭스바겐 T1 캠퍼 밴’ 등 키덜트 인기 상품은 물론, 유럽 프리미엄 완구 브랜드인 이탈리아 트루디, 클레멘토니, 갈토이즈, 깔루, 핀토이즈 등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구하라’ 서비스를 시행, 해외 직접 구매나 구매 대행으로 구하기 힘들었던 상품까지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오프라인 매장도 열며 고객 접점을 늘렸다.

 롯데닷컴은 올해 영실업 인기상품 브랜드관, 레고 갤러리관 등 브랜드관을 신설할 계획이고, 옥션은 전용 카테고리를 신설해 쿼드로터 드론 RC헬기, 레이싱용 초대형 RC카 등 무선 조종 장난감을 비롯해 레고, 피규어 상품을 팔고 있다.

 미니 드론 판매로 재미를 본 쿠팡은 이제 ‘팬텀2 비전 플러스’ 등 전문 항공 촬영 기능까지 갖춘 수백만원대 제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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