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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①]나는 싱글, 그러나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다…나는야 ‘조카 바보’

등록 2015-06-02 16:23:16   최종수정 2016-12-28 15: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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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함소아 한의원이 지난해 5월 개최한 ‘2014 함박 웃는 아이 선발대회’의 ‘18세 이하 조카와 함께하는 조카 바보 부문’에서 300대 1의 경쟁을 뚫은 수상자 사진.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홍보 담당 지배인 홍정윤(31)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란에는 홍씨와 한 여자 어린이가 똑같은 표정을 한 채 밝게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홍씨의 개인사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얼핏 본다면 홍씨가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아직 미혼이다. 그렇다면 사진 속 어린이는 누구일까. 바로 세 살 위 언니의 딸, 그러니까 홍씨의 일곱살짜리 조카다.

 이 때문에 홍씨는 오해도 많이 산다. 실제 그와 처음 카카오톡 대화를 하게 된 언론사 기자나 동종업계 관계자 중 상당수가 “따님이 예쁘네요”라고 말하는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조카를 정말 사랑한다. 그래서 조카와 찍은 가장 닮은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다. 남들이 오해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마음이다.

 최근 홍씨처럼 조카를 친딸,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이모, 고모, 삼촌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조카 사진으로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장식한다.

 또한 값비싼 유기농 면 침구부터 국내외 유명 브랜드 의류, 유모차, 장난감까지 선물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외국에 출장이나 여행을 가서도 자신의 명품 가방을 사지 못해도 조카 선물을 챙기는 것은 필수다.

 조카와 단둘이 가족사진을 찍기도 하고, 조카가 좀 더 자라면 커플룩을 입기도 한다.

 이들이 바로 최근 유통가의 큰손으로 자리 잡은 ‘조카 바보’들이다. ‘딸 바보’ ‘아들 바보’ 등 자녀에게 무한 애정을 쏟는 ‘부모’를 상징하는 단어 못잖게 최근 사용이 급증한 신조어다.

 그렇다면 조카 바보는 왜 출현했고, 우리 사회·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자.

 #1.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서울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이 개최한 ‘어린이날’ 기념 프로모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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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미녀 배우 한지민이 지난 5월20일 웨이보에 조카와 찍은 사진을 올려 ‘조카 바보’임을 인증했다. (사진 출처=한지민 웨이보)
 TV 인기 애니메이션 ‘요괴워치’(감독 우시로 신지)의 ‘스페셜 에피소드’ 국내 최초 상영을 비롯해 ‘스페셜 코스 요리’ 제공, 요괴워치 캐릭터 인형 증정 등으로 이뤄진 이 행사의 참가비는 어린이 7만원, 어른 9만원에 달했지만, 무려 500명 가까이 참가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이날 눈에 띈 것은 아빠, 엄마가 아닌 삼촌, 고모, 이모와 함께 찾은 어린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부모가 바빠서 함께 못 와 ‘대타’로 나선 경우도 있었지만, 아예 예약할 때부터 ‘조카 선물’임을 밝힌 경우도 여러 건 있었다는 것이 호텔 측 전언이다.

 #2. 미녀 배우 한지민(33)은 지난 5월20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조카를 소개할게요! 520(사랑해)”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사진 속 한지민은 한 남자 어린이로부터 볼 뽀뽀를 받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520’은 중국어로 ‘우 얼 링(五二零·Wu er ling)’이라 발음된다. 이는 “너를 사랑해”라는 뜻의 ‘워 아이 니(我爱你·Wo ai ni)’와 발음이 비슷해 중국에서 ‘사랑해’라는 뜻으로 쓰인다.

 특히 5월20일은 중국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신종 기념일’인 ‘고백데이’였다.

 아직 미혼인 데다 남자친구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한지민이 사랑 고백을 조카에게 한 셈이다.

 앞서 1월 한지민은 MBC TV '섹션TV 연예통신'에 출연, 자신이 전속모델인 한 보디케어 제품 CF에 함께 출연한 어린이 모델이 자신의 조카임을 밝히고 “정말 예쁘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조카 바보’가 늘어난다. 왜?

 조카를 친딸,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이모, 고모, 삼촌 등 ‘조카 바보’가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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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3일 오후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를 방문한 시민들이 장난감 및 완구 등을 살펴보고 있다. 2015.05.03.  [email protected]
 2010년 11월 한 언론의 연예 뉴스 제목을 통해 대중 앞에 처음 등장한 조카 바보는 이제 외국산 신조어인 ‘골드 안트’(돈 잘 버는 미혼 이모·고모) ‘골드 엉클’(돈 잘 버는 미혼 삼촌)을 밀어내고, 자신의 언니, 형, 오빠, 심지어 남동생 또는 여동생의 딸, 아들을 대상으로 부모 못잖은 무한 사랑을 베푸는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중·후반까지 미혼 남녀들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작금의 조카 바보 급증 이유로 만혼(晩婚)이나 비혼(非婚) 경향을 꼽는다.

 결혼 적령기가 됐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못한 미혼 남녀가 본능적으로 간직한 자신의 혈육을 향한 애정을 가장 가까운 혈육인 형제·남매·자매의 혈육인 조카를 대상으로 쏟으면서 대리 만족한다는 얘기다. 이는 이성 친구나 반려동물에 대한 그것과 종류가 다른 사랑이다.

 여기에 최근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고, 보육 대란이 겹치면서 어린 자녀를 친가나 외가에 맡기는 경우가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자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어린 조카를 친자식처럼 챙기게 된다.

 본인이 외아들이나 외딸인 경우 절친한 선·후배나 친구의 자녀를 대상으로 애정을 쏟는 경우도 드문 경우이나 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남녀 아이돌 그룹 멤버나 아역 배우들을 아끼는 ‘삼촌 팬’ ‘이모 팬’들도 조카 바보 심리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MBC TV ‘일밤-아빠! 어디가?’,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TV ‘오! 마이 베이비’ 등 지상파 방송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인기 스타들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나 어머니 못잖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시청자의 조카 바보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통업계, “반갑습니다, 조카 바보님”

 조카 바보가 급증하면서 쾌재를 부르는 것은 유통업계다. 가뜩이나 극심한 내수침체에 처해 있던 차에 아들, 딸도 아닌 조카를 위해 지갑을 여는 ‘바보’들이 대거 등장했으니 기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혼인 조카 바보는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들과 달리 전월세난, 생활비 급증 등에 시달리지도 않아 지갑을 여는 폭도 크고, 횟수도 많다.

 실제 SK텔레콤이 통해 5월5일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4월의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어린이날 키워드는 ‘조카’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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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민호 기자 = 조카 가진 미혼남녀 300명 대상 설문 조사. (자료 제공=결혼정보회사 선우) [email protected]
 4월 한 달간 어린이날 관련 버즈(미디어 사용자가 생산하는 정보)량은 3만1999건으로 전년(1만6933건) 동기보다 두 배가량 늘었는데 이 중 조카와 관련된 언급이 129%나 늘어났다. ‘아들’(95%), ‘아이’(80%), ‘어린이’(72%), ‘자녀’(30%) 등을 압도했다.

 조카는 선물 구매 관련 키워드와 연관돼 많이 검색됐고, 조카 나잇대는 4~7세가 가장 많았다. SK텔레콤은 “조카 바보가 현재 우리 사회 트렌드임이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이 운영하는 큐레이션 커머스 G9(지구·www.g9.co.kr)가 어린이날을 앞둔 4월29일부터 5월1일까지 삼촌과 이모·고모 5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6%는 “조카에게 선물을 사줄 계획이다”고 답했다. “아니다”는 답변은 4%에 불과했다.

 ‘조카에게 선물을 사주는 이유’에 관해서는 “진심으로 사주고 싶어서”(52%)가 가장 많았고, “그냥 넘어가기 양심에 찔려서”(21%), “조카의 애교”(19%), “조카의 강요”(4%) 등의 답변이 나왔다.

 ‘조카 선물 비용 상한선’으로는 “5만원”(38%)의 응답률이 제일 높았다, “3만원”(28%)과 “10만원”(25%)이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최근 조카를 가진 미혼남녀 300명(남 120명, 여 1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같은 경향을 보여준다.

 ‘자신이 조카 바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약 70%에 달하는 208명(남 86명, 여 122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 “주변 미혼 친구 중 조카 바보가 있느냐”는 질문에 역시 70%에 가까운 198명(남 84명, 여 114명)이 “있다”고 말했다.

 “조카에게 선물을 언제 사주느냐”는 질문에는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 사준다”는 응답이 53%로 가장 많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사준다”(37%)가 그 뒤를 이어 조카 바보들이 조카 사랑을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열고 있음을 입증했다.

 조카 바보를 자처한 208명에게 ‘조카를 왜 사랑하느냐’고 묻자 “조카가 예쁘고 귀여워서”(63%)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내가 아직 미혼이라서 대리만족하기 위해”(28%), “원래 애를 좋아하기 때문에”(8%) 등의 답이 뒤를 이었다.

◇조카 바보, TV 프로그램 단골 소재부터 행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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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온 국민을 조카 바보로 만들고 있는 배우 송일국의 아들 삼둥이(대한·민국·만세) 
 조카 바보가 2015년 우리 사회·문화적 대세인 것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미혼인 가수 겸 배우 엄정화(46)가 동생인 배우 엄태웅의 딸 지온을 끔찍이 챙기는 모습을 최근 방송했다.

 또 MBC TV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역시 미혼인 배우 양미라(33)가 축구선수 이호와 결혼한 여동생 양은지의 두 딸을 예뻐하는 모습을 최근 내보냈다.

 지난 1월 SBS TV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은 미혼인 배우 이서진(44)이 친누나의 딸인 조카 엘리의 응원에 힘입어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을 방송했다.

 방송가에서는 “이러다 조카 바보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그뿐만 아니다. 함소아 한의원이 지난 5월31일까지 연 ‘2015 함박 웃는 아이 선발대회’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18세 이하 조카와 함께하는 조카 바보 부문’이다. 애초 ‘0~3세 베이비 부문’ ‘4~9세 키즈&주니어 부문’ ‘10~18세 틴에이저 부문’만 있었지만, 5회째였던 지난해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이 부문을 추가했다.

 ‘조카사랑 지원금(50만원)’을 내건 조카 바보 부문에는 신설된 지난해 대회에 무려 300여 명이 응모했다. 올해는 그보다 늘어난 350여 명이 몰려 조카 바보 열풍을 방증했다.

◇조카 바보, 그래도 부모는 아니더라

 그러나 흥미로운 조사 결과도 있다. 앞선 큐레이션 커머스 G9의 설문 조사가 좋은 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조카에게 주려고 산 선물이지만, 그냥 내가 갖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탐낸 적 있는 조카 선물’은 남성의 경우 로봇(24%), 게임기/디지털기기(21%), 블록/퍼즐(20%), 작동/승용완구(18%) 순으로 나타났고, 여성의 경우 인형(29%), 패션잡화(22%), 게임기/디지털기기(16%), 작동/승용완구(11%) 순으로 조사됐다.

 또 ‘조카에게 선물을 사주는 이유’로 삼촌의 43%, 이모·고모의 54%가 “진심으로 사주고 싶어서”라고 답해 전체의 절반 이상(52%)을 차지했지만, “그냥 넘어가기 양심에 찔려서”(21%), “조카의 애교”(19%) 등의 답도 있었다.

 결국 조카 바보가 아무리 많다고 하지만, 일부의 마음 씀씀이의 경우 부모의 헌신적인 내리사랑만 못하다는 해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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