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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심리부검센터 "심리부검은 유가족의 마음 정리하는 작업"

등록 2015-06-15 08:57:53   최종수정 2016-12-28 1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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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한정선 기자 =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가 4월1일 서울 삼성동에 문을 열었다. 심리부검은 그 동안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개인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실시해 왔을 뿐, 정부 차원의 센터를 설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공고히 지키는 한국에서는 대단히 늦은 출발인 셈이다.

 심리부검은 자살 사망자 유가족을 면담, 사망에 이르는 순간까지 고인의 삶을 재구성해 자살 원인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심리부검은 유가족에게는 치유의 과정이 되고, 또 사례들이 모이면 자살에 대한 예방책도 도출된다.

 중앙심리부검센터 고선규(임상심리학 박사) 사무국장은 “유가족은 자살 사건 자체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해 본 사람이 별로 없는데 심리부검을 통해 고인의 죽음을 발견한 때로 돌아가 자세히 얘기하는 과정을 거친다. 죽음을 알게 된 시간이 언제이고, 어느 장소에 있었는지 등 그 당시로 완전히 돌아가 보는 것이다”고 말했다.

 심리부검은 ‘서랍장 정리’에 빗댈 수 있다. 고 국장은 “서랍 안에 물건이 엉망진창이 돼 있으면 열 때마다 심리적 고충을 느끼며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닫아버리기 일쑤인데 심리부검은 구획을 나눠 이 서랍장 안을 정리하는 것이다”며 “그것(자살사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나 서랍 안을 정리하면 처음보다 심리적인 고통은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애도는 종교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사회문화적 관습에 따라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다. 유가족은 이를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슬픔을 억누르게 하고, 표현하는 것을 막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애도가 이뤄지기 힘들다. 건강한 애도를 한 사람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힘들어 한 것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경감된다. 이와 달리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힘들 수 있다.

 가족의 자살에 대한 애도의 첫 걸음은 그 사건을 얘기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가족 대부분은 가족의 자살에 대해 특정부분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떠올리며 집착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전문가들 앞에서 사건을 정리하면 차분히 가족의 자살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심리부검은 바로 이 애도의 시작인 셈이다.

 그렇다면 심리부검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자살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이후 3년 미만인 유가족이라면 직접 센터(www.psyauto.or.kr, 02-555-1095)에 연락해 심리부검을 신청할 수 있다. 3개월 이하인 경우 사별 슬픔으로 인해 객관적 정보를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기간이 지나야만 심리부검이 효과 있다. 3년 이내로 한정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정보의 손실이나 왜곡 등이 발생할 수 있는 탓이다. 유가족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없다. 오히려 정보제공의 대가로 26만원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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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국장은 “정보제공은 또 다른 자살을 막기 위한 자료로 쓰일 뿐 면담은 비밀유지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면담기록과 자료는 인적사항과 개인 식별 코드 없이 통계자료로만 남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지난해에 보건복지부가 72건의 심리부검을 분석해 발표한 ‘2013년 자살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20대와 30대 자살자의 자살위험요인은 정신질환 유형은 몇 건, 만성스트레스 유형은 몇 건이었다’고 언급한 것처럼 통계치로만 남는 것이다.

 이런 자료의 구축을 통해 자살예방정책은 어떻게 추진될까. 예를 들어 요즘 중장년 남성들의 자살이 증가해 이 연령대 자살자들의 심리부검을 분석했다고 가정해 보자. 각 사례에서 명예퇴직이나, 가계부채 증가 등이 공통적으로 발생했다면 갑자기 빚이 늘어났거나 직장에서 해고된 중장년 남성을 자살 취약층으로 보고, 이들을 위한 심리 지원과 복지 혜택를 마련하는 식으로 정책을 세울 수 있다.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경찰이 조사에 나선다. 자살 유가족도 경찰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은 유가족에게 심리지원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유가족이 심리부검을 포함한 심리지원을 받겠다고 동의하면 유가족 연락처 등이 중앙심리부검센터로 넘어온다.

 그러나 이때는 유가족의 상태가 혼란스러워서 심리부검 면담에 응하기 어렵다. 심리부검센터는 유가족에게 연락해 심리상태를 살피고, 본인 의사에 따라 전국의 정신건강증진센터(자살예방센터) 등과 연계해 심리상담 지원 등을 제공한다. 이어 3개월이 흐른 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다시 유가족에게 연락해 심리부검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다. 유가족이 동의하면 심리부검이 실시된다.

 심리부검은 대략 3시간의 면담으로 이뤄진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는 정신건강전문의 1명을 비롯해 임상심리전문가 6명, 정신보건사회복지사 1명이 상주한다. 하루 3건 정도의 심리부검이 가능하다. 유가족이 원하면 이들이 자택을 방문하기도 하며, 서울은 물론 전국의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지난해 4월부터 심리부검 연구를 시작해 80여 건의 심리부검을 실시했고, 올해는 센터를 개소한만큼 200여 건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고 국장은 “심리부검 면담을 하고 나면 유가족은 특정한 한 가지 자살원인에 집착하지 않고 가족의 자살에 통합적인 관점을 갖게 되면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고 따뜻한 작별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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