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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사람들③]배움에는 진짜 '나이'가 없네

등록 2016-01-01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6: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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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대구내일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할머니들 <사진=대구시 교육청 제공>
[편집자 주] 2016년 병신(丙申)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뉴시스는 신년 기획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우리 사회의 진정한 ‘위인’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락을 벗어나 장엄하게 부활하지도, 화려하게 복귀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는 이도 있고, 이제 간신히 첫걸음을 뗀 이도 있습니다.

 억대 연봉자(2014년 소득 기준)가 52만6000명이라는는 지난해 12월30일 국세청 발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성공한 사람, 업적을 쌓은 인물이 수두룩한 우리 사회에서 낙오됐던 그들이 뜻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뉴시스는 절망 속에서 움트는 희망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숭고하다고 믿기에 과감히 지면을 할애하려 합니다. 그들의 가쁜 숨소리, 진한 땀내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서울=뉴시스】이재은 기자 = '그 날만은 학생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 육십에 국민 체조를 하니/마음에 눈물이 흐른다/학생으로 운동장에 섰다는 생각만 해도 그날은 내 인생에 최고의 날이다'(최분식 할머니의 시 '내 인생에 최고의 날')

'이젠 학생이 되어/ 동생이 아닌 책가방을 메고/어린 시절 서러움을 지우며 학교에 다닌다'(김순향 할머니의 시 '맏딸' 中)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시들은 지난 9월 대구내일학교를 졸업한 할머니들이 졸업시화전에 제출한 작품이다.

 이 학교에서는 사회적·경제적 사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중·노년층들이 학구열을 불태우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90세 할머니 한글 공부 "부끄러웠다…우리글 잘 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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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분식 할머니의 시 <사진=대구시 교육청 제공>
 이 학교를 찾는 만학도는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다. 올해 입학생 중 최고령인 조남애(90)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5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난 조 할머니는 소학교 분교에서 일본인 교사에게 일본어를 조금 배운 것이 학력 전부다. 당시 한국 처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가는 분위기라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조 할머니는 산골에 숨어 살다 일찍 결혼했다.

 조 할머니는 "우리글을 배운 적이 없어 소리 나는 대로만 적을 수 있었다"며 "주변 사람들이 글을 모른다고 수군거릴 때마다 매우 부끄러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나이는 많지만, 계속 공부해 우리글을 바르게 잘 쓰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70대 김재호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부모를 잃은 뒤 집이 너무 가난해 중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에게는 중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사실이 평생 한으로 남았다. 김 할아버지는 올해 4살 많은 친누나와 함께 중학과정에 재학 중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어 매일 행복하다"는 김 할아버지는 졸업 후 대학교까지 가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대구내일학교 재학생은 대부분 60대 이상이지만, 다소 특이한 이력의 학생도 눈에 띈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찾아오는 30대 결혼이주여성 김하은씨다.

 베트남 출신인 김씨는 10년 전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대구에서 살게 됐다. 10년 동안 한글을 몰라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독학으로 한글을 어렵게 배워나가던 김씨는 지난해 9월 내일학교에 입학했다. 두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자는 마음이었다.

 현재 김씨는 아이들 숙제를 자신 있게 돌봐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행복하다. 또 같은 반 어르신들로부터 삶의 지혜와 한국 예절,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즐겁다. 그녀는 앞으로 고등학교, 대학교도 진학해 교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키워가고 있다.

 ◇만학도의 배움터…대구내일학교  

 대구내일학교는 2011년 대구교육청에서 설치한 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이다. '문해'란 '문자해득(文字解得)'의 줄임말로 단순 글을 쓸 줄 아는 능력이 아나라 모든 교육의 토대가 되는,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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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대구시 교육청은 매년 9월 늦깎이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졸업시화전을 개최했다. <사진=대구시 교육청 제공>
 이 학교는 개설 당시 초등과정만 운영했다. 그러다 만학의 꿈을 이루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자 2013년 중등과정을 신설하는 등 확대했다. 현재 초등과정 4개교(명덕·달성·성 서·금포초), 중학과정 1개교(제일중) 등 총 5개 학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별도 진단평가를 거쳐 초등과정은 1년, 중학과정은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다. 과목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등으로 편성돼 있다. 주 3회, 하루 2시간씩 수업하며, 교육비는 대구시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전액 무료다. 배움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지난 4년 동안 이 학교를 거쳐 졸업장을 손에 쥔 이들은 초등과정 403명, 중학과정 52명으로 총 455명이다. 올해는 초등과정 주간반 142명, 초등과정 야간반 11명, 중학과정 120명 등 총 273명 만학도가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평균연령은 초등과정은 68세, 중학과정은 64세다.

 졸업식과 세계 문해의 날이 있는 매년 9월 졸업시화전을 개최했다. 졸업생들이 평소 수업시간에 지은 시와 그림을 모아 책으로 묶고, 전시도 했다. 늦깎이 학생들이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은 시와 직접 그린 그림에는 세월을 담은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았으며, 총 147점을 전시했다.

 올해부터는 생업 등으로 주간시간대 학습이 어려운 만학도를 위한 야간반도 신설했다. 이 밖에도 컴퓨터, 악기 교육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컴퓨터 수업은 늦깎이 학생들 수준에 맞춰 컴퓨터 전원 켜고 끄기, 마우스 조작하기, 인터넷 검색하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순득(71)할머니는 "평소 컴퓨터는 손자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다 (여기서) 난생 처음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눌러 봤다"며 "혹시 잘못 누르면 고장날까 겁도 났다. 전원 을 켜고 끄는 연습을 몇 번 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대구내일학교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처음에 학교를 방문할 때는 글자를 잘 모른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매우 낮다"며 "점차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고 고등학교·대학교까지 도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밝혔다. 이어 "더 많은 어르신이 배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가족들의 애정 어린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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