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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선언 이면엔 전두환의 정권 재창출 계산"

등록 2017-06-08 15: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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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앞 시위현장에서 달아나는 시위대 위로 발사된 최루탄이 터지고 있다. (사진=정태원 제공)(* 위 사진은 재배포, 재판매, DB 및 활용을 금지합니다.)[email protected]
"전두환, 직선제 수용해도 '양김' 출마하면 이길 수 있다고 판단"
"6·29선언은 기획 상품···각본·감독에 전두환, 주연은 노태우"
"6·29로 항쟁 갑작스럽게 종결···이후 '불완전한 민주화'로 귀결"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로 꼽히는 6·29선언의 이면에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일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8일까지 이틀 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6월 항쟁 3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지배블록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인 데는 나름대로 직선제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계산이 있었던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정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직선제 개헌이라는 양보를 하게 된 이유로 경찰력만으로는 시위 진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군대 동원에 실패한 점, 직선제 개헌이라는 타협이 집권당으로서 차악으로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제도권 야당이 6·29선언을 받아들인 이유로는 제도권 야당과 사회운동세력에 의한 6월항쟁이 전두환 정권을 타도·전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정 교수는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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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6·29 선언은 집권세력이 야당과 중산층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타협적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며 "비민주적 잔재를 일소하지 못하고 구지배세력을 그대로 존속시킨 상태에서 권력의 극히 일부만 민주화세력이 차지하는 형태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러한 타협안은 물론 민주화를 요구한 국민의 참여와 요구에 밀려서 나온 것이었으나 제한된 민주화를 통해 집권세력의 지배를 지속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며 "민주주의 절차를 보장해 국민저항을 약화시키고 저항세력을 분열시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고 분석했다.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뿌리 깊은 경쟁이 지속되는 한 정부·여당의 막강한 자금·조직으로 대통령 직선 경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거리의 정치는 제도권으로 들어가게 됐고, 민주화를 향한 권력투쟁은 제도권 안에서의 선거경쟁으로 변화했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정 교수는 "야당의 지도자인 김대중과 김영삼이 동시에 출마한다면 집권 여당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프리미엄으로 분할된 민주화연합의 표를 누르고 승리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이 가능했다"며 "6·29선언의 내용에 김대중의 사면 복권이 포함된 것은 이러한 전략적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 대통령이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게 직선제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며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8개항의 특별선언을 지시한 사실은 최근 '전두환 회고록'에도 실린 바 있다.

 정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없는 국가안보'를 추구한 데 비해 전 전 대통령은 어쨌든 '민주주의를 무시할 수 없는 국가안보'를 추구해야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집권기간 내내 집권당(공화당)을 약화시키면서 후계자가 대두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반면, 전 전 대통령은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 대표를 일찌감치 전역시켜 다양한 공직을 섭렵하면서 후계자 수업을 시켰다. 나름대로 문민화(civilianizing)의 수순을 밟은 셈이다"고 두 대통령의 후계관리 차이점을 비교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군(軍)에서 전역한 다음 정무 제2장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조직위원장 등을 거쳐 전국구 의원으로서 민정당 대표 자리까지 오르며 꾸준한 '경력관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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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인기가 없기 때문에 직선제를 하면 야당이 이길 것이라 대부분 전망했지만 6·29선언을 통해 노태우는 자신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쇄신했다"며 "이전에 그는 전두환의 쿠데타 동지인 장군 출신 정치인에 불과했다. 6·29선언을 통해 그는 '노련한 정치인' 또는 '민주주의자'로 다시 태어났고 한국 시민들로 하여금 아직 검증된 바 없는 야당에게 국가경영을 넘길지 여부를 심사숙고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6·29선언에 대해 "일종의 기획 상품이며 각본과 감독에 전두환, 주연은 노태우였다. 노 대표는 발표만 했을 뿐이지만 모든 공은 노 대표에게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전 정권의 치밀한 각본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는 6월 민주항쟁으로 얻어낸 귀한 결과물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럼에도 정 교수는 "6월항쟁은 6·29선언에 의해 갑작스럽게 종결됨으로써 이후의 민주화가 '불완전한 민주화'로 귀결되는 한계를 안게 됐다"면서 "또 정치적 민주화에 몰두해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과제를 소홀히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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