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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6년 공백 깨고 ‘볼링 인생 2막’ 시작한 김효미

등록 2018-05-2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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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9년, 아시안게임 2연속 금메달 후 돌연 은퇴

2016년 프로전향, 메이저대회 부산오픈 우승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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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프로볼러 김효미
【서울=뉴시스】오종택 기자 = 대한민국에서 볼링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스포츠다. 도심 곳곳에 다양한 콘셉트의 볼링장이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동호인 활동도 활발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스포츠다.

대표팀은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갖췄고, 선수층도 두텁다. 아시안게임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수확한 효자 종목이다. 실업팀은 물론 국내 몇 안되는 프로 스포츠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도 볼링을 인기 스포츠라고 말하지 않는다. 볼링을 전문적으로 하는 선수들이나 대회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각종 매체에서도 볼링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 오랜 기간 국가대표를 거쳐 6년이란 공백을 깨고 프로 선수로 볼링 인생 2막을 연 선수가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출신 여자 프로 볼러 김효미(37·타이어뱅크)다.

 ◇화려한 아마추어 기록…2009년 돌연 은퇴

중학교 3학년 때 가족들과 우연히 볼링장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됐다는 김효미는 누구 못지않게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있기보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어요. 운동도 곧 잘해서 육상부를 하기도 했죠. 볼링공을 처음 잡을 때부터 재미를 느꼈고 아버지 친구분 딸이 볼링 선수를 하고 있어서 선수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볼링 선수의 꿈을 안고 볼링부가 있는 경기여고에 입학해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운동 신경이 좋았고, 승부욕이 강해 실력이 쭉쭉 늘었다. 볼링공을 잡은 지 불과 3년 만인 고교 3학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양궁과 비슷하게 볼링도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바늘구멍과 같은 대표선발전을 통과해야 했다. 김효미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실업팀에 입단해서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무려 9년 동안이나 국가대표를 지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5인조 금메달, 마스터스 동메달에 이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3인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게 선수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2009년 돌연 볼링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다른 종목에 비해 선수 생명이 길다면 긴 종목인데 20대 중반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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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7 태백산컵 여자프로볼링대회에서 데뷔 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김효미. (사진=한국프로볼링협회 제공)
“오랜 국가대표 생활을 하면서 합숙을 하고 짜여진 틀에 갇혀 지내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볼링 선수로서 충분히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했고, 선수 김효미가 아닌 인간 김효미로 살고 싶었어요.”

은퇴 후 그간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만끽했다.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취미 활동도 즐겼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20대의 마지막을 보냈다. 볼링장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30대에 접어들고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뒤 왜인지 모르게 삶이 무기력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그때 불현듯 볼링이 떠올랐다. 우연찮게도 선수 시절 함께 했던 지인들로부터 프로 전향을 권유 받았다.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은 아니었어요. 단지 내가 가장 열정적이었던 순간이 언제인지 돌아봤고, 레인 위에 서 있는 제 모습이 가장 나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아마추어 시절 많은 도움을 주셨던 진승무역 전진표 대표님이 복귀를 적극 독려해주셨죠.”

 ◇지난해 11월 4수 끝 프로 첫 우승

그렇게 볼링장 문턱을 다시 넘었다. 2014년 복귀 준비를 했고, 이듬해 프로테스트를 통과해 9기 프로가 됐다.

2016시즌부터 본격적인 투어 생활을 시작했다. 6년이란 공백이 무색하게 첫해 준우승을 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단체전에서도 팀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우승은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데뷔 후 1년여 동안 3차례 결승 무대를 밟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오랫동안 볼링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은 있었어요. 하지만 꾸준히 활동한 선수들을 한 순간에 따라 잡는다는 생각은 오만이었죠. 아마추어 때는 누구보다 강심장이었는데 복귀 후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의욕이 앞서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 실력 발휘를 못했어요.”

패배는 약이 됐다. 지면서 배운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6년의 공백을 받아들이고 조급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우승의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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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김효미. (사진=선수 제공)
지난해 11월 시즌 마지막 대회인 '태백산컵'에서 감격적인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4수 끝에 얻은 결과였다.

“당시 결승전 경기를 100번도 더 돌려 본거 같아요. 마지막 챔피언샷을 준비하면서 이미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어요. 가관이었죠. 협회 분들이 우승도 하기 전에 우는 선수는 처음 봤다면서 아직도 놀려요. 그렇지만 제 볼링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수차례 경험해본 우승이기에 태연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면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김효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또 한 번의 변화를 택했다. 볼링 용품이나 관련 업체의 스폰서가 대부분인 분위기 속에 타이어뱅크가 볼링단을 창단하면서 김효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전 소속팀인 ‘팀 스톰’을 떠나 신생팀 ‘타이어뱅크’의 창단 멤버가 됐다.

“다시 볼링공을 잡게 된 계기도 그렇고, 이전 소속팀(팀 스톰) 대표님에게 오랜 기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새로운 팀으로 옮기는 것을 많이 망설였는데 흔쾌히 제 입장을 이해해주셨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둥지를 떠나 새로운 비행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언제나처럼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타이어뱅크는 여느 인기 프로 스포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연봉을 지급하고 훈련과 장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 프로 볼링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김효미는 볼링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국민 스포츠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에서 12년 만에 펼쳐지는 메이저급 대회 ‘2018 PBA-WBT 부산컵 국제오픈볼링대회’은 이러한 바람이 현실에 가까워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산오픈은 한국을 포함해 18개국 1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총 상금 2억3000만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22일부터 본선 경기가 치러진다.

새로운 볼링 인생을 시작한 김효미는 곧 있을 부산오픈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자신의 커리어 한 페이지를 장식하려 한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하는 큰 대회에서 외국 선수가 아닌 우리 선수가 정상에 서는 모습을 보여주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나 정상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꼭 제가 아니더라도 동료 선수들이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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