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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해례본에 보이는 두 종류의 ‘爲(위)’

등록 2020-04-2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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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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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1>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爲(위)’는 평성과 거성의 두 종류가 있다. ‘어제훈민정음’ 1장 앞면의 권점 있는 ‘爲’자는 거성으로써 ‘위하여’를 뜻하고, ‘훈민정음해례’ 3장 뒷면의 ‘爲’자는 평성으로써 ‘되다’를 뜻한다.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제목 글자 포함하여 가장 많이 쓰인 글자는 무엇일까?

音(음)자일까? 총 80번 쓰였지만 아니다. 字(자)일까? 총 108회 쓰였지만 그것도 아니다. 聲(성)자일까? 무려 210회나 쓰였지만 최다 글자는 아니다. ‘聲’은 두 번째로 많이 쓰인 글자이다.

가장 많이 쓰인 글자는 ‘爲(위)’자로, 총 234회 쓰였다.

중국 명나라의 홍무정운(1375)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바른 한자음에 대한 영원한 지침서인 동국정운(1447)에서는 소신 있게 爲(위)의 초성을 꼭지 있는 동그라미인 ‘ㆁ[ŋ]’으로 기재했다. 그것이 ‘爲’자가 생겨날 때의 본래 초성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꼭지 없는 동그라미인 ‘ㅇ’ 초성의 ‘위(爲)’는 변음이자 명나라의 정음이다.

동국정운에선 ‘爲’자의 성조에 대해 ‘평성(平聲)’과 ‘거성(去聲)’ 두 종류를 기록했다. ‘爲’는 평성일 때와 거성일 때의 의미가 다르다. 평성일 때는 주로 동사로써 ‘일하다(作,造)→하다, 짓다, 되다(to become)’ 등을 뜻하고, 거성일 때는 주로 전치사로써 ‘위하여(←위하다=돕다: 助)’의 뜻을 나타낸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서 234회 등장하는 ‘爲’는 딱 한 차례만 거성 ‘위하여’의 뜻으로 쓰였고, 나머지 233회는 주로 평성 ‘되다’의 뜻으로 쓰였다. 이 두 종류의 ‘爲’를 시각적으로 구별시키기 위해, 세종과 8학자들은 동그란 4성 권점을 동원했다.

<사진1>에서 보듯, ‘爲’가 일반적 평성으로 쓰일 때는 글자 주위에 권점을 찍지 않고, 특별히 거성일 경우에만 글자의 오른쪽 윗부분에 반달 같은 권점을 찍어 거성임을 나타냈다. 이는 <사진2>에서처럼 정인지를 위시한 8학자가 모두 참여한 ‘용비어천가(1447)’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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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2> 용비어천가(1447) 또한 훈민정음해례본(1446)과 마찬가지로 ‘爲(위)’자가 거성일 경우엔 글자의 오른쪽 윗부분에 4성 권점을 찍었다. 권점을 찍지 않은 ‘爲’자는 평성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딱 두 번 쓰였으나 성조와 뜻이 다른 두 ‘便(편)’자의 경우엔 便이 평성으로써 ‘편안하다(安)’를 뜻할 때는 4성 권점을 찍었고, 거성으로써 ‘짝맞다=알맞다=마땅하다’를 뜻할 때는 4성 권점을 찍지 않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용비어천가를 제작 시 어떤 글자가 보편적 의미를 나타낼 때는 4성 권점을 찍지 않고, 주의해야 할 의미일 경우엔 4성 권점을 찍어 읽는 이의 오해를 방지코자 했음을 알 수 있다.

‘爲’자의 자원에 대해서는 그간 오해가 있었다. 후한의 문자학자인 허신(許愼)은 서기 100년부터 121년까지 약 22년에 걸쳐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었는데, 거기에서 ‘爲’에 대해 어미원숭이(母猴)를 상형한 글자라고 설명했다. 권위자가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후 약 2천 년간 ‘爲’가 원숭이와 관련된 글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1899년 갑골문이 발견되고 나서 ‘爲’에 대한 진상이 드러났다. ‘爲’는 어미원숭이가 아니라 코끼리와 관련된 글자였다. 갑골문에서 ‘爲’는 왼손 또는 오른손을 그린 又(우) 또는 손가락의 방향을 아래로 한 爪(조)와 象(코끼리 상)의 합자이다. 은나라 때 ‘又’는 ‘돕다(右, 佑)’의 뜻을 나타냈고, ‘爪’ 또한 ‘시경’의 문구 “予王之爪士(여왕지조사: 나는 왕을 돕고 지키는 근위병)”에서처럼 ‘돕다’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爲’는 ‘象(코끼리 상)’과 ‘爪(도울 조)’의 합침으로, 코끼리가 코를 손처럼 사용하여 일을 하거나 사람들의 일을 도와 노역하는 모습에서, ‘노역하다·일하다→하다, 짓다→이루다→되다’ 및 ‘돕다=위하다→위하여’ 등의 뜻을 나타낸다.(해석: 박대종)

오늘날 태국에서도 1/4에 해당하는 약 4천 마리의 코끼리들이 노역에 동원되고 있다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작업 시에도 코끼리의 ‘爲’자가 가장 많이 쓰여 세계적인 문자·문화 공사를 이루어내는데 크게 조력했음에 감사를 표한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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