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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세종이 ‘ㄱ’을 아음의 글자 만든 시작으로 한 까닭

등록 2020-08-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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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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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왼쪽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동상의 모습. 본래 ‘ㆁ’으로 써야 할 ‘왕’자의 초성을 ‘ㅇ’으로 새겼다. 이는 조선의 ‘동국정운’이 아닌 중국 명나라의 ‘홍무정운’식 표기임. 오른쪽은 2018년 11월27일자 <국어의 혼란스런 민낯,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글자체>에서 제시한 박대종의 교정안.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초성의 기본 5음은 아·설·순·치·후음이다. 전체적으로, 각 음은 느린 음을 기본 자형으로 하여 빨라질수록 가획을 하였다. 설음의 경우 느린 음이 ‘ㄴ’이며, 그보다 빠른 음은 획을 하나 더한 ‘ㄷ’, 가장 빠른 음은 획을 또 하나 더한 ‘ㅌ’이다(ㄴ→ㄷ→ㅌ). 순음 또한 소리가 점점 빨라짐에 따라 ‘ㅁ→ㅂ→ㅍ’, 치음은 ‘ㅅ→ㅈ→ㅊ’, 후음은 ‘ㅇ→ㆆ→ㅎ’의 순으로 자형이 발전하니, 자형간의 긴밀함과 체계성에 세계의 학자들은 경탄한다.

그러한 가획과 관련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ㅋ比ㄱ, 聲出稍厲, 故加劃。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ㅇ而ㆆ, ㆆ而ㅎ, 其因聲加劃之義皆同(ㅋ은 ㄱ에 비해 소리 나는 것이 조금 ‘厲(빠를 려)’한 고로 ㄱ에 획을 더하였다. ㄴ→ㄷ, ㄷ→ㅌ, ㅁ→ㅂ, ㅂ→ㅍ, ㅅ→ㅈ, ㅈ→ㅊ, ㅇ→ㆆ, ㆆ→ㅎ는 그 소리로 인해 가획한 뜻은 모두 같다)”. 위 문장 내 ‘厲(려)’자에 대한 보다 상세한 사항은, 2020년 1월29일자 <훈민정음 가획의 원리, ‘거셈’이 아니라 ‘빠름’>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런데 ‘아·설·순·치·후’ 중 ‘아음=어금닛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냐고? 훈민정음해례 18장에서는 5음의 완급을 거론하면서 “ㆁ을 빨리 발성하면 변하여 ㄱ이 돼 빨라지고, (반대로) ㄱ을 느리게 소리 내면 변하여 ㆁ이 돼 느려진다(ㆁ促呼則變爲ㄱ而急, ㄱ舒出則變爲ㆁ而緩)”고 하였다. 그렇듯 아음을 빠르기 순으로 나타내면 ‘ㆁ→ㄱ→ㅋ’이 되는데 글자모양이 이상하다. ‘ㄴ→ㄷ’, ‘ㅁ→ㅂ’, ‘ㅅ→ㅈ’, ‘ㅇ→ㆆ’과는 달리 ‘ㆁ→ㄱ’ 부분의 ‘글꼴 연결’이 이상하다.

‘설·순·치·후’와는 달리, 아음은 느린 ‘ㆁ’에서 그보다 빠른 ‘ㄱ’으로 넘어갈 때 글자의 생김새 면에서 둘은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ㄱ’은 ‘ㆁ’에서 선을 하나 더한 모습이 아니라 전혀 이질적인 자형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둘 다 같은 어금닛소리임에도, 세종께서 둘의 글꼴을 서로 다르게 만드신 까닭은 무엇일까?

느린 어금닛소리 ‘ㆁ’의 자형과 관련하여 훈민정음해례 3장~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唯牙之ㆁ, 雖舌根閉喉聲氣出鼻, 而其聲與ㅇ相似, 故韻書疑與喩多相混用, 今亦取象於喉, 而不爲牙音制字之始.(오직 아음의 ‘ㆁ’은 비록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아 소리와 기운이 코로 나올지라도 그 소리는 ‘ㅇ’과 서로 비슷한 고로, 운서들에서는 ‘ㆁ’과 ‘ㅇ’이 많이 서로 혼용되기에, 이제 또한 목구멍 ‘ㅇ’에서 그 글꼴을 취하였으니(자형 면에서 목구멍을 본딴지라), 어금닛소리의 글자 만드는 시초로는 삼지 않는다).”

‘ㆁ[ŋ]’이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으며 나는 콧구멍소리이기 때문에 목구멍 ‘ㅇ’에서 그 글꼴을 취했다는 설명은 매우 놀랍고도 명쾌하다. 콧소리(ㆁ)는 중국 전통성운학에서 분류한 것처럼 ‘어금닛소리’가 맞지만, 얼핏 들으면 목구멍소리와 유사하여 서로 혼동된다. 그러한 혼동은 일부 운서에서 ‘ㆁ’의 ‘ㅇ’화로도 나타난다. <사진>에서 보듯, ‘王’자에 대한 고대의 본래 정음은 ‘동국정운’ 권1, 43장에서처럼 그 초성이 ‘ㆁ[ŋ]’이 옳지만, 중국 명나라의 ‘홍무정운’(1375)에서는 ‘ㅇ’으로도 혼용되어 나타난다. 현재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에 새겨진 초성 ‘ㅇ’의 ‘왕’자는 우리말 정음이 아니라 현대의 변음이자 중국 명나라의 정음이다.

‘牙(어금니 아)’자의 정음은 ‘아’가 아니라 ‘ㆁㅏ’이다. ‘ㆁㅏ’는 ‘아’의 콧소리며, ‘아’는 ‘ㆁㅏ’의 변음이자 현대식 속음이다. 세종은 ‘ng[ŋ]’ 소리에 대해 그 자형에 있어선 어금니와는 무관하고 목구멍(ㅇ)과 유관한 글꼴 ‘ㆁ’을 창조해냈다. 대신, ‘ng[ㆁ]’ 소리를 빨리 하면 나는 ‘g[ㄱ]’ 소리에 대해서는, 2019년 1월15일자 <훈민정음 해례본에 오자, ㄱ을 ㆁ으로 정정해야 한다> 편 등에서 밝힌 것처럼, ‘牙(어금니 아)’의 금문 고전에서 그 글꼴을 취해 ‘ㄱ’을 아음의 글자 만든 시작으로 삼음으로써, 불멸의 문업을 이루었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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