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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술 주(酒)자의 기원

등록 2023-09-16 06:00:00   최종수정 2023-09-16 10: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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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 추석을 앞둔 12일 울산시 남구 롯데백화점 지하1층 추석선물셋트매장에 고객들이 와인 선물셋트를 살펴보고 있다. 2023.09.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술 주(酒)자는 3200년 전 상나라 시대의 갑골문자가 기원이다. 처음에는 술을 담는 토기를 형상화 한 다음, 한 일(一)자를 넣은 유(酉)자가 술을 의미했다. 한 일(一)자는 토기에 술이 담겨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중국에서는 1만5000년 전에 이미 액체를 담는 토기를 만들었다. 유(酉)자에서 한 일(一)자가 빠지면 서녘 서(西)자가 되지만, 이 글자는 곡물을 담는 바구니 모습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서쪽은 가을이나 수확을 의미하기도 한다.

갑골문에 나타나는 최초의 유(酉)자에는 좌우에 물결무늬 같은 두 획이 보이는데, 이는 술이 흘러넘치는 모습이다. 상나라 시대의 다른 갑골문에는 유(酉)자의 왼쪽에 물이 흐르는 하천을 묘사한 형상이 붙어 있다. 양조장이 주로 하천 옆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나라 시대의 상형문자인 금문(金文)에는 변이 붙지 않은 유자만 썼다. 진(秦)나라 때 소전체(小篆體)에는 다시 왼쪽에 하천 모양이 붙었다. 삼수(氵)변이 붙은 술 주(酒)자는 한나라 시대 예서체(隸書體)에 처음 나타난다.

수천년 전 술이 액체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1976년 하남성 안양(安陽)시 류가장(劉家莊)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주전자(盒, 합)에는 3200년 전 상나라 무정(武丁)왕 시대의 술이 3분의 1 정도 남아 있었다. 수수로 빚어 국화를 넣은 국화주였다.

1997년 하남성 녹읍(鹿邑)현 장자구(長子口) 무덤에서 나온 3000년 전 서주 시대의 청동 술병에도 술이 남아 있었다. 쌀로 빚어 삼나무 잎, 쑥, 국화 등을 넣은 약주였다. 2003년 시안에 있는 진시황제의 무덤에서는 2200년 전의 술통이 봉인된 채 발견됐는데, 그 안에는 26리터나 되는 술이 남아 있었다. 액체 상태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와인은 고대 로마 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1700년 된 것이다.

상나라에서는 약초를 넣어 기장으로 빚은 약주를 ‘창주’(鬯酒)라 불렀다. 주나라 시대(기원전 1046~기원전 256년)의 관제를 기록한 ‘주례(周禮) 춘관(春官)’편은 기장으로 창주를 빚는 사람을 ‘창인’(鬯人), 약초인 울금초(鬱金草)를 술에 섞는 사람을 ‘울인’(鬱人)이라 하는 등 직무를 구분해 불렀다.

창주는 주로 국가 제례에 사용했다. 조선 시대 ‘국조오례의’도 종묘 제향에 울창주(鬱鬯酒)만을 사용하게 했는데, 이로부터 유래했다. 3000년 전의 술이 2500년 세월을 넘어 조선 시대 국가 행사에도 쓰인 것은 ‘주례’(周禮)가 주요 유교 경전 중 하나로, 고려 중기 이후 국가의 공식 교육기관에서 가르친 책이 때문이다. 주례는 일본의 양조 역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례는 국가 제례에 사용할 술의 종류를 청탁과 숙성 정도에 따라 ‘범제’(泛齊), ‘예제’(醴齊), ‘앙제’(盎齊), ‘제제’(緹齊), ‘침제’(沈齊) 등 다섯 가지로 나눠 ‘오제’(五齊)라 했다. 여기서 제(齊)는 제사에 올리는 곡물이라는 뜻이 있다. 제(齊) 대신에 주(酒)자를 붙이기도 한다. 범주와 예주는 거르지 않은 술이고 앙주·제주·침주는 거른 술이다.

범주는 누룩과 쌀을 사용해 빚었고 계절에 따라 10~25일 숙성했다. 막걸리를 뜻하는 ‘료’(醪)라 부르기도 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범주와 료가 같은 것이라 했다. 료는 일본어로 ‘모로미’라고 부른다.

예주는 하룻밤 묵힌 술이다. 발효가 덜 돼 잔당이 남아 맛이 달고 알코올 도수가 3% 내외로 낮다. 맥아나 누룩을 모두 사용했는데, 후에 맥아를 사용한 지금의 식혜만 예주라고 했다.

조선 영조 31년(1755년) 9월14일자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을 보면, 영조는 ‘예기’(禮記)를 인용해 “예주는 ‘하루 묵은 술(酒一宿日醴)’이니 미리 빚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본어로도 ‘일야주’(一夜酒, 히도요자케)라고 부른다. ‘삼국유사’와 ‘세종실록’에도 나오는 ‘요례’(醪醴)는 술과 단술이라는 뜻 외에 단맛이 나는 술을 일컫는다.

범주를 거르면 앙주가 된다. 술이나 간장을 거르는 기구인 용수를 사용했다. 제주는 범주를 좀더 숙성해 붉은 빛이 돌 때 거른 술이다. 술지게미가 가라앉은 후 맑은 윗부분 술은 침주라 불렀다. 동동주와 비슷하다. 범주와 침주의 알코올 도수는 10~15% 정도이다. ‘국조오례의’에는 ‘현주’(玄酒)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술이 아니라 술 대신 올렸던 맑은 물을 이르는 것이다.

중국의 고사성어를 살펴보면 그 시대에 사용한 말이 보인다. 유교(劉交, ?~기원전 178년)는 한나라 고조 유방의 막내 동생으로, 초왕(楚王)이었다. 그는 재사 목생(穆生)을 아꼈는데, 목생이 술을 마시지 못해 연회에서는 단술(예주)을 따로 대접했다. 그런데 유교가 죽은 후 왕위를 물려받은 아들 유무(劉戊)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술 대접을 중단했다. 이에 목생은 신임을 잃었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나중에 유무는 전쟁에 패해 자결했고, ‘예주불설’(醴酒不設)이라는 말이 생겼다. 각별하게 대하다가 후에 박대하는 것을 뜻할 때 사용된다.

‘단료투천’(簞醪投川)이라는 고사성어는 진나라 말기 ‘삼략’(三略)의 ‘상략’(上略)편, ‘여씨춘추’(呂氏春秋) ‘순민’(順民)편, 남북조시대 양나라 소명(昭明)태자의 ‘문선’(文選), 서진의 장협(張協)이 지은 ‘칠명’(七命) 등에 나온다. 장수가 술 한 동이를 강물에 풀어 병사들과 함께 마셨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장수가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대의 리더에게도 여전히 유용한 말이다. 중국 감숙성에 있는 ‘주천’(酒泉)이라는 지명도 한무제 2년(기원전 121년) 흉노 정벌에 나선 곽거병(霍去病, 기원전 140~기원전 117년) 장군이 한무제에게 하사 받은 술을 강물에 풀어 병사들과 함께 마셨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진나라 말기와 한나라 초기는 비슷한 시기이다. 2200년 전쯤 장수가 강물에 푼 술, ‘료’(醪)는 막걸리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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