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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매케인의 죽음을 애도하나 …트럼프 시대 ‘보수의 양심’

등록 2018-09-0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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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 27일 아침 미국 연방 의사당 프런트 지붕 위에 이틀 전 타계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추모하는 성조기가 반기로 게양돼 펄럭이고 있다. 고인의 관은 수천 ㎞ 떨어진 애리조나주에서 31일 워싱턴으로 옮겨져 이 돔 아래의 원형 로비인 로툰다에 안치돼 조문객을 받는다. 9월2일 수도와 가까운 애나폴리스 해사 묘지에 안장된다. 2018. 8. 27.
【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미국이 뇌종양으로 사망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한마음으로 애도를 보내고 있다. 베트남전 영웅이자 미국 보수의 양심, 때론 '독불장군(매버릭)'으로 불렸던 매케인이 분열과 갈등의 미국을 모처럼 하나로 모으는 모양새이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매케인이란 존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매케인의 삶을 되짚어 본다.

◇”국가를 위해 봉사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매케인의 유해가 2일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 묘지에 안장된다. 그는 이날 자신이 생전 소원했던 대로 해군사관학교 동기이자 평생의 친구였던 척 라슨의 옆자리에 눕는다. 묘비명은 “그는 국가에 봉사했다(He served his country)”이다.

 지난 8월 25일 뇌종양 투병 끝에 81세를 일기로 사망한 이후 약 일주일 동안 애리조나와 워싱턴 등에서 지속된 매케인의 장례 절차는 이날 해군사관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매케인이 평생 보여준 미국을 향한 헌신의 시작점과도 같은 곳이다.

 1936년 미시시피의 해군 4성 장군을 2대에 걸쳐 배출한 명문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958년 졸업 후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1967년 비행기 추락으로 5년 간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포로 생활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관을 지낸 매케인의 아버지가 월맹군 측에서 조기 석방 제안을 받고도 다른 포로 사병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미국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그에게 ‘전쟁 영웅’이라는 칭호를 달았다.

 1981년 퇴역한 매케인은 이듬해인 1982년 애리조나 제1선거구의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연임했다. 1986년에는 애리조나주 상원에 입성해 1992년, 1998년 , 2004년의 선거에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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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5일 밤(현지시간) 숨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추모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자는 보좌관들의 권고를 물리치고 간단한 트윗 발표로 대체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26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 의원과 심한 갈등을 빚었었다. <사진 출처 : CNN> 2018.8.27
2004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의 후보였던 존 케리 전 미국 국무장관이 매케인을 러닝메이트로 영입하고자 했으나 이념의 차이를 들어 거절하면서 대쪽같은 면모를 과시했다.

 매케인의 이같은 성향을 보여주는 또 다른 별명은 ‘매버릭(독불장군·개성 강한 사람)’이다. 조지 W 부시 정부와 이라크 전 등을 둘러싸고 갈등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미군증파를 의회에 요청했을 때 그는 모두가 외면한 부시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때 그는 “조국이 전쟁에서 지는 것보다 내가 선거에서 지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2008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패했다. 그럼에도 매케인은 지난해 7월 뇌종양 수술 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ACA) 폐지에 반대하는 표를 던지기 위해 의회에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당론이나 개인적인 감정에 구애받지 않고 옳은 의견에 힘을 보태는 매케인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치자금 규제법인 '매케인-파인골드'법안을 민주당 소속 러셀 파인골드 상원의원과 함께 입안해 '돈 정치'를 차단하고자 나섰던 것 역시 대표적인 예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25일자 칼럼 ‘존 매케인,우리가 배울 수 있는 매버릭’을 통해 “나는 매케인과 많은 사안에서 의견이 달랐지만, 그의 배짱과 열정, 도덕적 신념을 따르는 확고부동한 태도는 진심으로 존경한다"며 "그의 죽음은 워싱턴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게 됐다"고 추모했다.

 매케인은 사망 전 미국인에게 남긴 유언을 통해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 살다가 간다”며 “미국은 현재의 시련을 거쳐 이전보다 더 강한 국가가 될 것이니 어려움에 절망하지 말고 언제나 미국의 약속과 위대함을 믿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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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 뇌종양 치료 부작용으로 재입원 하기 전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지난 1일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매케인 상원의원은 17일(현지시간) 지역구인 애리조나행 항공편에 올랐다. 이번주에 있을 세제개편단일안 표결에는 참석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017.12.18.
◇이어지는 추모 행렬, 트럼프는 예외?

 매케인의 사망에 미국 정계가 여야를 막론하고 일제히 애도의 목소리를 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있었지만 “매케인과 보다 숭고한 것, 수세대에 걸친 미국인과 이민자들이 싸우고, 전진하고, 희생했던 이상을 향한 신의는 공유했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 “매케인은 올곧은 신념을 가졌던, 신뢰할 수 있었던 동료”라며 “당파를 넘어 국가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던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매케인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절절한 추모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지난 28일 상원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당분간 외로운 여행을 하게 됐다”며 “매케인의 사망으로 생긴 빈 공간은 내가 채울 수 없는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국제사회의 지도자들도 애도를 표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만 뜨뜻미지근한 입장을 냈다. 매케인의 사망 직후 트위터를 통해 짧게 유가족에게 유감을 표한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이 지난 27일에야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정치적 견해차는 있었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한 매케인을 존중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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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 미국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2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대체하는 법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매케인 의원이 지난 6월 27일 워싱턴에 있는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9.23
또 매케인을 추모하는 의미의 백악관 조기 게양을 이틀 만인 27일 원상복구했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게양 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이에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복수심 가득한 철부지”라고 비판했다.

 이는 매케인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 오랜 감정의 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매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 백악관과 갈등을 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2015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공화당 내 경쟁 후보감으로 꼽히던 매케인을 향해 “포로로 붙잡혔다는 이유로 매케인을 전쟁영웅이라고 하는데,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매케인은 전쟁영웅이 아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매케인의 일침은 유언에서도 계속됐다. 매케인은 유언에서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으 추진하는 멕시코 국경 강화 등의 민족주의 정책을 겨냥해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분노와 증오, 폭력의 씨앗이 된 종족주의와 애국심을 혼동할 때 위대함은 약해진다”며 “벽을 무너뜨리지 않고 벽 뒤에 숨을 때, 우리의 이념이 변화를 위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믿기보다는 이를 의심할 때 우리는 약해진다”고 꼬집었다.

◇매케인이 남긴 말, 말, 말

-“오늘 밤의 실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우리는 실망감을 넘어 나아가 우리의 나라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함께 일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싸웠다.”(2008년 대선,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 후 승복연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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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차미례 기자 =서거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의석 책상위를 덮은 검은 천 위에 27일(현지기간) 장미 꽃이 놓여있다.  매케인의원은 오랜 암투병 끝에 25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면서도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비즈니스 잡지 ‘패스트 컴퍼니’의 ‘8분 읽기’에)

-“우리에게는 언제나 미국인이 가장 우선이자 마지막이다. 우리의 견해차에 대해 논의하자. 그러나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자. 우리는 진정한 적과의 전쟁에서 동지이고, 우리의 군사적 우위는 이념의 우위에서 나온다는 것에서 용기를 얻자” (2004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나는 불만이 없다. 단 하나도. 내 삶은 일종의 라이드(ride)였다. 나는 미국의 역사에, 이 시대의 역사에 나 자신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회고록 ‘쉼 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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