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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미투 하고 싶지만"…'평범한 소시민'에 당한 피해자들

등록 2018-03-08 09: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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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서지현 검사에서 시작된 한국판 미투 운동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7일 오전 서울 도심의 한 공사장 외벽에 미투 운동(# Me Too)을 의미하는 그라피티(graffiti)가 그려져 있다. 2018.03.07 [email protected]
사회적 유력인사에게 당한 피해 사례만 관심 집중
'절대자'만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착시현상 불러
가해자가 평범한 인물이면 고백해도 주목도 낮아
연대·지지 기대 어렵고 자칫 조직 내 낙인만 찍혀
"핵심은 젠더 권력…미투가 빙산의 일각만 건드려"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바라보는 A(28·여)씨의 마음은 복잡하다.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A씨는 유부남인 팀장으로부터 셀 수 없이 성폭력을 당했다. '서비스로 허벅지 한 번만 만지게 해달라'는 등의 말을 들었고 유머를 가장한 음란성 카카오톡 메시지도 수차례 받았다.

 A씨는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이 나서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지만 한편으론 미투를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며 "일개 중소기업 팀장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해봤자 누가 관심을 가지겠느냐"고 털어놨다. 

 미투로 사회 각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A씨와 같이 '평범한 소시민' 가해자로부터 당한 피해자들에겐 미투도 남의 이야기다. 용기를 내서 고백해도 주목도가 낮아 연대와 지지를 기대할 수 없어서다. 

 가뜩이나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피해자 입장에선 섣불리 나섰다가 자칫 조직의 배신자나 트러블 메이커(문제를 만드는 사람)로 낙인만 찍힌 채 홀로 싸우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한달 넘게 '나도 당했다'는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의 관심은 특정 분야의 유명인사 또는 권위자, 권력자에 의한 피해 사례에 쏠려 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연극연출가 이윤택씨, 배우 조재현·조민기씨, 감독 김기덕씨,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은 사회 유력인사다. 피해자들은 이들 가해자를 묘사하면서 '이 세계의 왕', '무조건 따라야 하는 사람' 등의 표현을 썼다. 

 이들은 집단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변태적 성욕을 충족한 인물로 회자됐다. '권력형 성폭력'이란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정치권이 내놓는 대책도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권력자의 성폭력 방지와 처벌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같은 논의 방향에 대해 '절대자'만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폭력에서 가장 주요한 권력관계인 젠더권력은 논의에서 제외된 채 사회·정치 권력의 전횡을 둘러싼 분노와 자극적 호기심만 남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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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미투 운동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켜봐 온 회사원 박모(30)씨는 "일상에 난무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막아야 하는데 권력에만 초점을 맞추면 자칫 가해자가 누구인지에만 관심이 쏠릴 것 같다"고 밝혔다.

 회사원 김모(29·여)씨는 중학교 시절 남학생들이 여교사에게 '성관계는 해봤느냐'고 묻거나 여교사의 다리 사이에 거울을 놓고 키득대던 모습을 회상하며 "보통 학생-교사의 관계에선 교사가 권력자라고 하겠지만 여교사와 남학생 간 관계에선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젠더권력이 불균형한 상태에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권력의 핵심은 젠더권력이고 그 위에 사회적 지위 등 다른 권력이 얹어지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성폭력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계속 (유명인 사례를 중심으로) 빙산의 일각만 건드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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