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폭락 진단]미, 추가 제재 압박…신흥국으로 위기 번진다

등록 2014-12-22 11:25:56   최종수정 2016-12-28 13: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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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AP/뉴시스】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시민들이 환전소에서 루블화를 달러로 바꾸려 줄지어 서 있다. 루블화는 이날 러시아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20% 떨어졌다. 2014.12.17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미국이 루블화 폭락으로 비틀거리는 러시아를 이번 기회에 굴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주 중 최근 의회가 통과시킨 ‘우크라이나 자유 지원 법안’에 서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도발에 나서거나 구소련 국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가스 공급을 줄일 경우 국영 에너지·방산 기업에 추가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내년부터 2년 동안 우크라이나에 대전차포, 방공 레이더, 전술 무인정찰기 등 3억5000만 달러 상당의 무기 제공 및 군사고문을 파견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당시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대러시아 전략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법안에 서명하기로 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다 선명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법안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는 유럽 국가들과의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 동안 신중한 행보를 보였지만, 루블화 폭락의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에 대해 보다 강력한 압박에 나서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러시아 경제는 푸틴의 손에 있다”며 “러시아가 국제 규범을 지킬 의지만 보여준다면 제재와 압박을 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러시아는 미 백악관의 추가제재 예고에 비난을 쏟아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는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해질 것”이라며 제재에 대해 “미 정부가 러시아 정권을 전복하려는 목적”이라고 비난했다.

 현재 러시아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혼란한 상황으로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하락과 서방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등 러시아는 가능한 경제수단을 모두 동원했지만, 루블화 가치가 회복되지 않자 신흥국을 넘어 제재를 가한 선진국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6일 “러시아 국민들이 루블화보다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TV나 노트북 등 가전제품 사재기에 나섰고 일부 은행들은 예금인출사태(뱅크런)에 현금이 바닥났다”고 보도했다. 일부 은행은 외화잔액이 100달러 밖에 남지 않았다. 휴지조각이 되는 루블화를 가진 시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환전소 앞에 줄을 서서 돈을 바꾸기 위해 자리싸움을 했다.  

 일부 외신에서는 러시아발 외환위기를 거론하고 나섰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의 경제 시스템 붕괴가 우려된다”며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 위기가 1998년과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가하락과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 미 연방준비제도의 긴축 국면 등이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지난 1998년 루블화 추락 때와 달리 이번 루블화 추락에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는 국제금융기관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계속 고립되면 일부 부채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하이프리퀀시이코노믹스의 수석 경제연구원 칼 웨인버그는 “푸틴 대통령이 잃을 게 없는 상황에 몰려 해외 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한 모든 제약이 사라지는 상황이 가장 우려스럽다”며 “이 상황이면 러시아 차용자들은 빚을 청산하거나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러시아에서 투자자 이탈이 촉발됐지만, 이러한 투자자 이탈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신흥국가 시장에서도 이어졌다. 아직 의견이 엇갈리지만, 지난 1997∼1998년 동남아에서 비롯된 외환위기 때와 같은 위기가 신흥국들에서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경제전문가 존 히긴스는 영향 받는 신흥국으로 터키, 브라질, 남아공, 인도네시아를 지목하면서 유가를 러시아 사태의 악화와 세계 금융시장의 여파의 정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기 시작한 지난 15일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달러당 1만2689루피아까지 떨어져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16일에도 장중 2% 넘게 급락했다.

 동남아에서 비교적 안정적 경제구조를 갖췄다는 태국도 15일과 16일 양일간 증시가 12%나 빠졌고 브라질 헤알화는 10년 만에 최저수준인 달러당 2.685헤알까지 떨어졌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금처럼 통화가치가 급속도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연준이 ‘금리인상’ 신호만 보내도 러시아 경제는 최악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세르게이 슈베초프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현 상황은 ‘위기’ 라고 말하며 “1년 전만 해도, 최악의 악몽으로라도 지금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위기가 더 커진다면 제재를 가한 서방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CNN머니는 “루블화 폭락은 러시아 기업들이 채무를 달러나 유로로 지불할 수 없게 만든다”며 “제재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러시아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경우 러시아와의 한해 무역액이 약 954억 달러(약 103조원)에 달한다. 이는 독일의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다.

 러시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애플은 러시아 내 온라인 매장 운영에 대해 제품 가격의 검토가 진행되는 동안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성명을 냈고 러시아 판매가 주력인 포드나 폭스바겐의 경우 올해 초부터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실적 하락세를 보였다.

 애플은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현재 러시아 온라인 매장의 가격 책정을 할 수가 없다”며 “불편을 끼친 데 대해 사과한다”고 판매중단 입장을 밝혔다.   

 ABC뉴스는 당시 “러시아 시민들은 루블화 가치폭락을 걱정하면서도 싼 값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애플 아이패드 에어2의 가격은 2만8490루블(1달러당 70루블 기준)로 달러로 환산했을 경우 세금 포함 400달러다. 그러나 이 제품은 미국에서 500달러(세금 제외)로 책정돼 관심을 모았다.  

 이외에도 스포츠웨어 아디다스는 일부 매장을 포함해 사업 확장 규모를 줄이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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