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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곧 과거다"…영화 '침묵의 시선' 오펜하이머 감독

등록 2015-08-26 18:29:35   최종수정 2016-12-28 15: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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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1965년 인도네시아에는 군부 정권이 들어선다. 이 정권은 그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산당으로 몰아 학살했다. 이 때 죽은 사람이 자그마치 100만명. 살인자들은 여전히 인도네시아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공포에 떨며 살고 있다.

 그 때의 그 끔찍한 사건으로 형을 잃은 아디. 50여 년이 지난 후 피해자의 가족인 그가 가해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때 왜 그러셨습니까?'

 이 대담한 시도를 한 사람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41)다. 2012년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으로 전 세계적인 찬사를 이끌어낸 그가 이번에는 '침묵의 시선'을 들고 한국에 왔다.

 26일 서울 중구 한 극장에서 열린 '침묵의 시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미국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과거는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라는 말로 입을 뗀 뒤 '침묵의 시선'을 "누구도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곧 과거입니다. 과거는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고 과거와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오펜하이머 감독의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의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이 과거의 악행을 재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면 '침묵의 시선'은 고통을 안으로 삼킨 채 살아가는 사건 피해자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두 영화를 비교하며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과거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그들 스스로 만든 판타지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 작품이라면, '침묵의 시선'은 대학살 이후 남겨진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인터뷰를 통해 가해자가 느끼는 공포의 심연을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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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여다보려 했다"는 오펜하이머 감독의 말은 아디의 직업과 맞물리며 더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아디는 안경사로 일한다. 그는 렌즈를 통해 사람들의 시력을 교정해준다. 그의 고객 중에는 자신의 형을 죽인 살인자도 있다.

 가해자들은 과거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고, 대학살이 일어났던 한 강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이미 지난 일이야"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말로 아디의 질문을 피해간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렌즈를 통해 시력을 교정하는 행위는 끊임없이 자신을 속이고, 도덕적 의미를 왜곡해 스스로 맹인이 된 가해자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는 뜻의 은유"라고 짚었다.

 이어 "가해자들이 '과거는 묻어두라'고 말하는 건 결국 과거가 과거가 아니라는 의미"라며 "이 과거는 아물지 않은 상처이고, 누군가는 이 상처를 들여다보고 처치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역사를 반드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일어났던 학살은 비단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건 그 사건과 똑같은 양상의 일이 1947년 제주에서, 1980년 광주 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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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펜하이머 감독은 이날 검은색 티셔츠에 노란색 리본을 달고 자리했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고 말한 그는 "침묵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떤 것이든 의심할 수 있을 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사람들이 화해만 한다면 이들이 다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한 오펜하이머 감독은 "우리의 침묵으로 인해 다음 세대 또한 똑같은 공포를 안고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침묵의 시선'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국제비평가상, '인권의 밤'상, 골든마우스상, 유럽비평가협회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평화영화상 포함 37개의 상을 받았다.

 '액트 오브 킬링'은 세계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으며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70여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독특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연출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을 깊게 응시하는 오펜하이머식(式) 다큐멘터리는 이 장르의 격을 한 단계 높여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침묵의 시선'은 다음 달 3일 국내 개봉한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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