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급식부터 독서실까지 '성적순'…도 넘은 성적 줄세우기

등록 2015-10-27 08:53:13   최종수정 2016-12-28 15:48:27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1. 우리 학교에선 전교 20등 안에 드는 아이들은 점심 급식 때 줄을 서지 않고 먼저 배식을 받아요. 다른 아이들은 줄을 늦게 서는 날이면 5분 만에 밥을 먹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수업을 받아야 해요. 공부 못한다고 밥도 늦게 먹으라는 건 너무한 것 같아요. (울산 지역 학생)

 #2. 성적 우수자만 사용할 수 있는 자율학습실에 가면 카펫이 깔렸고, 정수기도 따로 있어요. 공부 못하는 애들은 자습실 근처로 가면 교실로 돌아가라고 해요. 수행평가에서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건들지 말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은데 박탈감이 드는 게 사실이에요. (경기 수원·용인 지역 학생)

 #3. 과학탐구대회라는 게 있었는데 학교에서 성적으로 참가자를 제한했나 봐요. 아이가 과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데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못했어요. 아이가 점차 자신감을 잃고, 관심 있던 분야까지 흥미를 잃을까 걱정돼요. (서울 강서·양천 지역 학부모)

 성적지상주의에 아이들이 멍들고 있다. 상위권 학생에게만 시설 좋은 독서실을 제공하고 기숙사를 성적순대로 자르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입학식, 졸업식 등 학교 행사에서 다수의 학생이 소수 성적우수자의 들러리를 서는 장면도 익숙하다. 학교·학원에서 명문대 합격생의 이름을 적은 현수막을 내걸어 다수 학생에게 좌절감을 심어주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엔 상위권 학생에게 급식을 먼저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들어는 보셨나요? 수박반, AFG반…“특혜 몰아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과 일선 학교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교육현장의 ‘줄 세우기’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한 것은 ‘우열반’이다. 성적우수자를 특별반, 심화반, 영재반으로 분류하고 각종 특혜를 준다. 핵심인재반, 인재스쿨, 명품반, 국제유학반, 큰빛반, 솔로몬반, AFG(All First Grade), CAP(Course for Advanced pupils) 등 이름도 다양하다. 광주에선 ‘심화반’이라는 명칭을 금지하자 ‘수박반’(수능대박반)으로 이름만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우등반에 들면 여러 혜택이 있다. 시설 좋은 독서실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1대1 멘토링 학습, 주요 과목 특강 등을 해준다. 강원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소수의 성적우수자를 위한 학습관을 설치하고, 사설 입시학원 강사를 초빙해 수업하기도 했다. 명문대 출신 교사들과 함께 해당 대학을 방문하는 것도 우등반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울산 지역 한 고등학생은 “교장 선생님이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애들 이름을 책상에 붙여놓고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직접 등을 토닥여주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위화감이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수원·용인 지역 학생은 “상위권과 중하위권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어느 순간 유령,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경쟁 교육을 부추기는 학교 간 성적 비교, 성적우수자 공개 시상, 변칙적인 석차 성적표 및 시험 등의 행태도 여전하다. '학원형 방과 후 교실'이나 '강제 자율학습'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송화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줄 세우기 교육방지캠페인 팀장은 “학교 현장에서 성적으로 학생들을 서열화하고, 한정된 자원을 소수 성적우수자에게만 특별 편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성적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대다수 학생에게는 좌절감과 박탈감을 심어주는 비교육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기숙사도 성적지상주의의 온상이 됐다. 교육부는 2008년 기숙형 고교 선정 사업을 시작하면서 ‘원거리 통학자’‘기초생활보장수급자, 한부모가정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 일정비율 포함’을 입주자 선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선 강원과 세종을 제외한 전국 15개 교육청 지역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입주시키거나 성적 제한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입주 대상자가 되려면 ‘교내·외 경시대회 입상자’‘상위 1% 이내’‘전교 4등 이내’ 등의 타이틀을 달아야 했다.

 ◇친구 고발하면 상점…폭언도 심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인격 모독과 비하 발언, 폭언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서울 노원·중랑 지역 한 학부모는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너희는 빨갱이보다 못한 놈들’이라고 했대요. ‘거지 같은… 걸레 같은…’이라고 욕설하면서 진짜 걸레를 던졌다고 하더군요. 애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자기 머리를 쥐어뜯었어요”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가 ‘엄마, 우리 반은 찍혀서 선생님들이 쓰레기 반이라고 얘기해. 설명도 대충 해줘’라고 하는데 억장이 무너졌어요”라고 토로했다. 대전에선 입시강사가 학부모 총회 강의 도중 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돌고래 아이큐 학생들’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친구를 고발하면 상점을 주는 비교육적인 사례도 전국적으로 만연했다. 학생생활평점제는 체벌 없는 학교문화 조성 등을 위한 2009년 도입됐는데 지금은 ‘벌점을 주기 위한 상점제’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일부 교육청 생활평점제 매뉴얼에 따르면, ▲외부인 교실 무단출입 ▲비품·공공기물 고장·훼손 ▲흡연 또는 음주 ▲학교폭력 ▲귀중품 또는 현금 습득 등 신고 시 상점을 주도록 했다. 송 팀장은 “‘친구 고발 상·벌점제’는 교육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않다”며 “준법·신고·고발 등 벌을 주기 위한 상점보다는 선행·봉사·효행·환경·국위선양·절약 등 상을 주기 위한 상점 기준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별은 아이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적은 곧 학부모의 계급이 되기도 한다. 서울 강남 지역 고교생 학부모는 “어머니 봉사활동 단체에 들고 싶었는데 딸의 성적이 좋지 않아 가입할 수 없었다”며 “그 이후로는 아예 관심을 끊고 산다”고 말했다.

 송 팀장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만 몰아주는 것이 문제”라며 “교육기관인 학교가 공부를 못한다고 아이들을 투명인간이나 죄인처럼 취급하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에서 초·중·고교생 세 자녀를 키우는 김춘희씨는 말한다. “얼마 전 KTX를 탔는데 문득 ‘국민행복 코레일’이라는 문구가 보이더군요. 기차를 한 번 타더라도 '행복'하게 하겠다는 거잖아요.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났어요. 하루에 16시간씩 머무르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 철학이 투영되고 있는가 생각하고 있자니 서글퍼 지더군요." 우리 아이들도 묻고 있는 듯하다. “누구를 위한 줄 세우기인가요?”

  jwshin@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최신 포커스

텝진으로 위클리 기사를 읽어보세요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