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놓치고 '찔끔 응답'만… 박 대통령, 위기 자초했다

등록 2016-12-06 11:00:00   최종수정 2016-12-28 18: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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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2016.11.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야권은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여야 합의로 자신의 퇴진 일정을 결정해달라는 대국민 담화에 대해 “공을 국회로 넘긴 정치적 꼼수”라고 비난했다. 야권의 요구는 자진 하야인데 박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고 국회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야권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박 대통령에게 권한 이양이나 하야를 위한 갖가지 압박을 해왔다. 지금은 세 야당이 공히 하야를 주장하고 있지만 불과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다양한 요구를 쏟아낸 것을 알 수 있다.

 ◇‘촛불 민심’ 흐름 제대로 못 읽어

 ‘책임총리를 뽑아라’, ‘총리에게 권한 이양하고 2선으로 후퇴하라’, ‘김병준 총리 카드를 철회하라’, ‘군 통수권도 넘겨라’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구사항이 바뀌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 때마다 이른바 ‘찔끔 응답’으로 변죽만 울렸을 뿐 단 한 번도 야권 요구를 통 크게 수용한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국회가 결정하면 퇴진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는데도 야권에서 꼼수란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일 박 대통령이 첫 담화 때인 10월25일 지금과 같은 퇴진 의사를 밝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촛불민심이 지금처럼 수백만 명에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최소한의 임기 보장도 약속 받았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은 야권 요구에 ‘통 큰 화답’대신 ‘찔끔 응답’으로 현재의 위기 상황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박 대통령의 정무 감각도 문제거니와 이를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청와대의 참모진 기능에 대해서도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첫 대국민담화를 한 10월25일 이후 야권은 박 대통령에게 탈당과 내각 총사퇴 후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을 요구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1월1일 문 전 대표는 다시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야 하고 박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재차 압박했다. 당시로서는 박 대통령의 모든 내치 권한을 총리에게 넘기되, 외치 권한은 어느 정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11월2일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국민안전처 장관에 대한 경질을 발표하고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 내정자를 내정했다. 야권은 이에 김 후보자의 내정 절차, 탈당 거부 등을 문제 삼으며 김 후보자 지명 철회와 함께 박 대통령의 2선 퇴진 등을 재차 요구했다. 문 전 대표도 11월7일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와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요구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11월9일 국회를 방문,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앞서 야당이 주장해온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한다는 것으로 풀이됐다. 김병준 내정자의 철회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새 총리 추천 시 자연스레 교체되는 것으로도 인식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회가 거국중립내각 총리를 추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 총리에게 외치의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표는 특히 군 통수권 등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여권은 발끈하며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반발했고 청와대도 야권 주장을 외면했다. 화를 부른 셈이다.

 11월12일 100만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여론이 박 대통령의 퇴진·탄핵으로 쏠리자 야당은 총리 추천 제안을 거부하면서 민주당을 마지막으로 야3당이 모두 ‘박 대통령의 퇴진’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문 전 대표는 11월15일 기자회견을 갖고 “퇴진 선언할 때까지 전국적 운동에 들어갈 것이고 박 대통령의 하야 후 과도내각에 대한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후 야권 주자들은 11월20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야권 요구 갈수록 수위 높아져

 종합해보면 거국내각 구성과 탈당, 총리의 국회 추천, 2선 후퇴, 군 통수권 이양 등으로 야권의 요구 수위가 높아지다 결국 탄핵과 하야로 귀결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박 대통령이 11월29일 “국회가 결정해주는 대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것마저도 야권이 수용하기에는 너무 때가 늦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요구 중 즉각 하야와 탈당 등은 수용하지 않았지만 김병준 총리 후보자 철회와 거국중립내각 구성, 질서있는 퇴각 등은 뒤늦게나마 어느 정도 받아들인 셈이 된다.

 하지만 정치적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고 역으로 ‘통 큰 화답’을 제시할 줄 아는 정치력 부재로 인해 지금과 같은 위기에 몰린 것이다. ‘어차피 수용할 것을 선제적으로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물음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도 역시 박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1일 전격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의 퇴진 시점에 대해 논의했으나 합의를 보지 못했다. 추 대표는 내년 1월까지 즉각적인 퇴진을 주장한 반면, 김 전 대표는 내년 4월말까지 박 대통령이 퇴진하면 된다고 맞섰다.

 추 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사퇴는 늦어도 1월말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김 전 대표에게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는 박 대통령이 내년 1월 퇴진을 약속한다면 야당의 탄핵추진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김 전 대표는 “4월말 박 대통령의 퇴임이 결정되면 굳이 탄핵을 하지 않고 그것으로 우리가 합의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지만 추 대표는 1월말 퇴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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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추 대표의 발언이 마치 탄핵을 포기하는 것처럼 비쳐지자 민주당은 부랴부랴 긴급회의를 열고 발언 내용을 수정했다. 추 대표는 이날 다시 기자들과 만나 “(김 전 대표에게) 지금 탄핵을 발의하면 늦어도 1월말까지 탄핵 심판이 종료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탄핵소추와 동시에 권한이 정지되는 것이고 1월말까지는 박 대통령이 사퇴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래서 (김 전 대표가 제시한) 4월30일 (대통령 하야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추 대표가 이어 “김 전 대표에게 우리는 그런 식으로 대통령의 임기연장에 동의할 수 없다. 또 야3당 대표가 만나서 임기 단축에 대한 접촉과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며 “제1당 대표로서 4월30일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국민정서상 맞지 않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김 전 대표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또 “비박이 탄핵에 참여할 것처럼 하지 않았느냐,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꾸느냐 입장을 바꾼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며 대화 중 김 전 대표를 비난했다고 밝혔다.

 추 대표는 그러면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에게 ‘비박의 뜻은 탄핵에 9일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그러므로 야3당만이라도 2일 탄핵안을 발의할 수 있게 하자’고 말했다”며 “오늘 우리는 지도부 의논을 모아서 2일 발의하는 것으로 준비 완료했기 때문에 국민의당도 참여하게 해 달라고 (박 위원장에게) 말했다”고 2일 탄핵안 표결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의당과의 협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야, 진통 끝 3일 탄핵 발의…9일 표결

 그러나 국민의당은 발끈했다. 자신들을 제외하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만남을 갖고 대통령 퇴진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 때문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늘 탄핵안을 제출하자고 했지만 제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탄핵안을 발의하면 가결이 어느 정도 담보가 돼야지, 부결될 걸 뻔히 알면서 발의하면 결국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에 면죄부를 주고 국민만 혼란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국민의당은 의원총회를 갖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5일 실시하기로 확정했다. 이날 야3당이 탄핵안을 공동 발의하고, 오는 2일 본회의에 보고한 뒤 5일 별도로 본회의 일정을 잡아 표결하자는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여러 안이 충돌하다가 결국 당론으로 5일 표결할 수 있도록 가급적 오늘 발의하자고 두 야당에 제안하기로 했다. 당론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여당이 합의해 의사일정이 합의되면 5일 처리도 가능하다”며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이같이 말한 뒤 “제반 절차는 지도부에 위임한다”고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 대변인은 “국민의당이 의총 결의를 통해 5일 본회의를 전제로 탄핵소추안을 함께 발의하자고 제안한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탄핵소추안에 야3당이 함께 하는 것은 정말 국민이 바라는 방식이다. 관련 절차가 빨리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국민의당의 5일 탄핵안 표결 당론에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새누리당 비박계는 2일 야당의 5일 탄핵 표결 요구를 정면 거부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모임 비상시국위원회 간사 황영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야당의 5일 탄핵 표결 제안에 대해 “저희들은 여러 사안을 고려해 일관되게 9일 처리가 좋겠다고 요구해왔다”며 “그래서 5일 본회의 일정은 예정되지 않은 날짜에 무리하게 탄핵소추안을 상정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5일 탄핵 표결을 거부했다.

 황 의원은 “예정대로 9일 탄핵 표결 상정 일정을 잡고, 7일까지 최선을 다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야당에 박 대통령 퇴진 협상에 응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박계는 박 대통령이 7일 오후까지 퇴진 시점을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비박계는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 탄핵 표결에 참여치 않고, 이를 거부하면 탄핵에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자 야3당은 2일 다시 회동을 갖고 최종적으로 2일 탄핵안 발의와 9일 표결로 정했다. 이후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이 처리된 직후인 새벽 4시10분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과 무소속 의원 171명은 민주당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등 야3 원내대표의 대표발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8일 본회의에 보고한 뒤 9일 표결에 부친다.

 이에 따라 비박계가 요구하는 7일까지 퇴진 여부를 밝히는 것이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련의 과정에서 결정적 타이밍을 놓쳐온 박 대통령의 선택이 마지막에는 빛을 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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