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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 녹음기·안경 몰카가 '호신용'이 되는 사회

등록 2016-12-13 08:16:23   최종수정 2017-01-09 10: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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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장남수 인턴기자 =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몰래카메라 부정수입 기획단속 결과' 기자회견에서 관세청 관계자가 압수된 안경형 몰래카메라를 공개하고 있다.

 관세청은 최근 발생한 '워터파크 몰카사건'으로 국민 불안이 높아짐에 따라 지난 7일 부터 집중 기획 단속을 실시했다.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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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피부과 의사 김지만(40)씨는 몇 달 전 볼펜형 녹음기와 단추형 몰카를 서울 용산에서 구입했다.

 우연히 알게 된 여성과 차 안에서 성관계를 가진 뒤 성폭행으로 고소를 당했으나 간신히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 계기다.

 당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 차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됐던 덕이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블랙박스 검증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면 전도유망한 의사인 그가 입었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소득 미혼남으로 평소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김씨는 블랙박스를 평소 휴대할 수 없기에 녹음기와 몰카를 유사시 블랙박스 대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녹음만 하다 필요하면 영상까지 촬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잃을 것 많은’ 남자들, 녹음하고 촬영한다

 ‘불신사회’의 여파로 말 한 마디 한 마디, 일거수일투족을 음성이나 영상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부와 명예를 가진 사회 지도층 40대 이상 남성들 사이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성추행이나 ‘갑질’의 장본인이 될 경우 많은 것을 한 번에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김씨는 “내가 만일 ‘꽃뱀’에게 성추행범으로 몰린다 해도 일단 남자라는 이유로 내 말을 믿어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상대 여성이 뻔뻔히 거짓말을 하는데도 처음부터 내가 그런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나를 대할 것이다”면서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그저 변명이나 발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장비를 갖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기록하면 나를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심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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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SK텔레콤 10일 편의성과 안정성이 대폭 개선된 T전화 2.5버전을 출시했다고 전했다.

 이전까지는 SK텔레콤용 안드로이드폰에 설치되어 출시되었으나, 이번 버전부터는 모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다운로드하여 설치할 수 있으며, 기존 스팸번호에 더해 사기피해 번호도 제공되는 등 안정성이 대폭 강화되었다. 2015.12.10. (사진=SK텔레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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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비 판매상도 이런 경향을 인정한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영상 음향 장비 판매를 하는 한 상인은 “과거에는 몰카 촬영을 할 목적으로 사는구나 싶은 20~30대 고객이 대부분이었으나 지난 여름부터는 40대 이상 남성 고객이 부쩍 늘어났고 용도도 달라졌다”며 “병원 진료실이나 교수 연구실, 기업체 사장실 등에 벽시계나 액자형 몰카를 설치해 달라는 주문도 부쩍 늘었다. CCTV를 드러낼 수는 없지만 촬영은 해야 한다는 것이 몰카를 찾는 이유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구입하는 24시간 녹음이 가능한 녹음기나 다양한 형태의 몰카는 과거 주로 도청이나 도촬 등 불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던 기기다. 그러나 이들은 호신용으로 용도 변경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자동 녹음 앱’ 다운로드 급증

 다른 사람과의 통화 내용을 모두 녹음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최순실 게이트’로 영어의 몸이 된 정호성(구속 기소) 전 청와대 비서관이다.

 검찰은 지난 10월29일 정 전 비서관 자택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 3~4대를 발견했다. 검찰은 여기서 정 전 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비선 실세’ 최순실(구속 기소)씨와 전화 통화한 내용을 담은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 휴대전화 자동 통화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녹음한 것들이다.

 구글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자동 녹음 앱은 수백 개다. 이 중에는 통신사가 직접 제공하는 관련 앱도 있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의 ‘T전화’가 독보적이다. T전화는 애초 SK텔레콤 가입자에게만 서비스했으나 지난해 말부터 KT와 LG유플러스 가입자에게도 서비스를 개방, 지난 8월 이용자 100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인기 높다.

 이에 질세라 KT는 ‘후후’에 자동 녹음 기능을 추가했다. 

 이런 앱들은 일일이 녹음 버튼을 누를 필요 없이 통화가 시작하면 자동으로 녹음이 시작하고 통화가 종료하면 녹음도 정지돼 편리하다. 다만 수동 녹음과 달리 네트워크 오류 등이 발생하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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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내에서 시판 중인 아이폰 통화 녹음기.
애플 아이폰의 경우 미국에서 통화 중 녹음을 금지하고 있어 수동 통화 녹음 기능이 없다. 같은 이유로 자동 녹음 앱 사용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이폰용 통화 녹음 외장기기가 출시돼 그런 한계를 넘어섰다.

 자동 녹음 앱이든 단말의 통화녹음 기능이든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대부분 메모 용도다. 정 전 비서관도 박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이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는 이 또한 호신용으로 사용한다. 자신이 상대방과 대화 중 말실수를 했는지를 확인해 성추행이나 갑질 논란 발생 시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이다.

 모 일간지 산업부 이모 기자는 “지난해 취재 차 한 업체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당시 상당히 정중하지만 냉철하게 취재원에게 캐물었는데 엉뚱하게도 내가 자신에게 폭언했다고 우리 데스크에게 항의해왔다. 그러나 당시 자동 녹음 기능을 통해 통화를 녹음한 덕에 위기를 모면하고 상대방의 사죄를 받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처럼 몰래 녹음했거니 촬영한 영상에 문제는 없을까.

 법무법인 수목 진영호 변호사는 “당사자끼리의 대화 등은 법정에서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면서도 “다만 외부 유출 시 오히려 초상권 침해나 명예훼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호신용이라고 해도 신중히 이용해야 한다. 호신을 목적으로 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녹음 등을 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넌지시 알려 문제 상황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짚었다.

 호신용 녹음이나 영상 촬영을 자기 스스로 자중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문화평론가 이호규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는 “녹음하거나 촬영할 때 자신의 말과 행동도 녹음되고 촬영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모든 것이 더욱 조심스러워질 것이다”면서 “CCTV의 대표적인 용도가 범인을 잡기 위한 것이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것부터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볼 때 같은 맥락에서 용도를 풀어갈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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