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귀국도 전에 '의혹'…조기대선, '네거티브'도 조기 점화
【서울=뉴시스】홍세희 기자 = 19대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약 2억8000만원)를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선 주자 간 네거티브전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는 분위기다. 반 총장에게는 아직 귀국도 하기 전에 검증 국면을 맞은 것이다. 시사저널은 박 전 회장의 지인 등 복수의 관계자 증언을 통해 “반 총장이 2005년 외교부 장관 시절 20만 달러,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7년에도 3만 달러를 수수했다”고 보도했다. ◇“박연차에게 23만 달러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반 총장은 외교부 장관이던 2005년 5월 방한한 응우옌 지 니엔(Nguyen Dy Nien) 베트남 외교부장관 일행을 위한 환영만찬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20만 달러가 담긴 쇼핑백을 받았다. 박 전 회장은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반 총장은 또 2007년 1월에도 유엔 사무총장 취임 축하 선물로 뉴욕의 한인식당에서 박 회장으로부터 3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직은 한쪽의 주장일 뿐이지만 반 총장측은 즉각 반발했다. 반 총장 측 핵심 인사는 당장 언론에 해명자료를 내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한 주간지의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반 총장측은 “2005년 5월 베트남 외교장관이 방한했을 때, 외교부 장관이던 반 총장이 한남동 공관에서 환영 만찬을 열었고, 이 자리에 박 전 회장도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자격으로 초청받아 참석했다”면서도 “박 전 회장은 이날 만찬에 늦게 도착했으며, 만찬이 끝난 뒤 일행 20여 명과 함께 돌아갔다. 반 총장은 이날 행사 중 박 전 회장과 따로 만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반 총장측은 “반 총장은 이날 전까지 박 전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박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며 “반 총장은 공직자 재임 중에 어떤 금품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 전 회장측도 “돈을 건넨 적이 없다. 수많은 인원이 모이는 이런 만찬석상에 1시간 정도 일찍 갈 수도 없는 것이고 이런 자리에서 그런 현찰을 줬다는 내용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다른 장소에서도 준 적이 없다. 따라서 검찰에 이런 얘기도 한 적이 없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시사저널은 더 나아가 2009년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에서도 반 총장의 금품수수 사실을 인지했지만 중수부가 이를 덮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면서도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냐’는 질문에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모른다는 것”이라고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한편 반 총장의 금품 수수 의혹은 일단 반 총장 측의 발 빠른 대응으로 더 이상 확산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반 총장은 해당 언론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공세를 이어 가고 있어 향후 이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불거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믿으면 좋고, 안 믿어도 괜찮아 이번 반 총장의 사례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역대 대선에서는 선거가 임박하면 후보들 간의 네거티브 캠페인(상대 후보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비난해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선거 운동)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반복되는 것은 단기간 펼쳐지는 선거에서는 네거티브 전략이 큰 효과를 본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효과를 노리는 후보 측은 네거티브 캠페인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강력했던 네거티브 캠페인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상대로 펼쳐졌던 ‘두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제기였다. 이 전 총재의 경우 대선에 2번 도전했지만 2번 모두 병역 비리 의혹에 발목이 잡혀 결국 낙선했다. 두 아들의 병역 비리는 무혐의 처리됐고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는 형사처벌까지 받았지만 대선은 이미 끝난 뒤였다. 이 때문에 이 전 총재 선대위에서는 상대의 네거티브 캠페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대선 패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네거티브 캠페인 전략을 수월하게 극복한 사례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당시 70대 초반의 상대적 고령이라는 이유로 상대측으로부터 치매에 걸렸다는 공격을 당했다. 당시 여당 소속 K의원은 1997년 11월 당원 필승결의대회에서 “국민회의 의원에게서 직접 들었는데 김대중 총재가 회의 도중 ‘신기하 의원은 왜 안 보이나’라고 묻는다고 하더라”라며 “괌에서 비행기 사고로 숨진 신 의원을 찾는 것으로 볼 때 김 총재의 정신이 예사롭지가 않다.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김 총재를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TV토론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는 패널들의 질문이 없었는데도 치매설을 먼저 거론하며 “내가 치매기가 있어 신기하 의원을 여러 차례 찾았다는데 그런 일 없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치매가 있는 모양”이라고 응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다른 토론에서는 “유세현장에서 바로 앞에서 나를 지켜보던 어떤 분이 ‘치매 걸렸다더니 멀쩡하네’라고 하더라”고 발언,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이후 치매설 공세는 잦아들었다. 네거티브를 웃음으로 돌파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정면 돌파를 통해 네거티브 캠페인 공세에 대응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최태민과의 사이에 딸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당시 “정말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 나에게 애가 있다는 얘기까지 한다. 애가 있다는 근거가 있으면 데려와도 좋다. DNA검사라도 해주겠다”고 받아쳤다. 이후 딸 출산 의혹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7년 대선 당시 BBK 주가 조작 사건 관련 의혹에 휘말렸지만 법적 대응에 나섰고 결국 당선됐다. 박근혜 후보 측이 이 전 대통령을 상대로 BBK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후 파장이 확산되자 이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준 BBK대표를 국내로 송환하는 데 동의하겠다면서 강수를 뒀다. 검찰은 대선을 2주 앞두고 이 전 대통령을 무혐의 처분, 이 전 대통령은 당선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이 같은 역대 사례를 볼 때 반 총장을 상대로 제기된 금품수수 의혹은 네거티브 캠페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귀국을 앞둔 반 총장이 이 같은 공세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주목된다. 반 총장의 대응과 이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내년 대선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일 가까울수록 더욱 극성 네거티브 선거전은 역대 대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 바 있어 이번에도 여야 각각 내부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대선은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비롯되는 만큼 후보 간 경쟁이 본격화되면 이와 관련한 각종 의혹 제기도 나올 수 있다. 개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관련한 법안을 제출하거나 제도를 개선해 대안마련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들의 경우, 자신의 면책특권을 이용해 앞다퉈 의혹을 제기한 뒤 선거가 끝난 뒤 나 몰라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최근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짧은 시간에 진행되는 선거가 사상 최고의 네거티브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은데, 결선투표제가 시행된다면 네거티브 선거는 힘들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홍철호 새누리당 의원도 최근 선거일 전 120일부터 신고·진정·고소·고발 등 조사 또는 수사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 그 죄에 대해 공소가 제기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공표할 수 없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관계 입증 전에 해당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도록 처벌 규정도 포함됐다. 특히 투표일에 가까워질수록 네거티브 선거전은 더욱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투표일 전에 검찰 수사가 완료되지 않은 채 정치적 합의로 처벌이 유야무야 되는 일이 없도록 모욕죄나 무고죄 규정을 엄격하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측의 설훈 민주당 의원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20만 달러 수수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 폭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사면됐다. 당장 야권의 검증시험대에 오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측은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알고 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 측은 최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수억원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법적 대응을 경고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내부의 1, 2위 주자들도 네거티브 대응책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 전 대표 측의 경우 캠프 차원의 움직임 보다는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흑색선전을 제보 받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시장 측 관계자는 “허위사실 유포나 거짓말로 비방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내 경선에서도 네거티브 공격이 올 수 있지만, 경선이 끝나면 다 같은 팀 아니냐”며 “강하게 대응하되, 그 대응에서조차도 감정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해서 조심스럽다”고 토로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이 같은 네거티브 선거전과 관련, “사실 네거티브전은 어디까지가 합리적인 의심인지, 유언비어인지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선거 때는 사실관계 확인보다 조장된 의혹이 굳어져 해명이 잘 되지도 않는 게 현실”이라며 “그게 효과가 있다 보니 후보들이 유혹 당하기가 쉽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후보들이 법적대응을 한다고 해도, 사실관계가 금방 확인되는 것도 어렵고 해석도 각 진영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며 “결국 네거티브전이 유권자의 반응, 역량과 비례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유권자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전적으로 유권자가 판단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