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에너지 독립" 선언에 OPEC "석유 팔 곳 많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이 앞으로 해외 원유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정책기조를 밝혔는데도 산유국들은 "미국이 안 사주면 다른 곳에 팔면 된다"면서 콧방귀를 뀌고 있는 모양새다. 블룸버그통신의 2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은 하루 전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를 접한 뒤 “석유는 세상 어디든 흘러 돌아다닌다. 미국에서 팔지 못하면 다른 시장에서 팔면 된다”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산유국 회의에 참석 중인 알-알리 장관은 “세계 에너지 시장은 긴밀하게 서로 연관돼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은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넬슨 마르티네스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세계 최고의 원유 소비국에 원유를 안정적으로 수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원유 수입 중단이 베네수엘라 원유수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우리의 원유 수출 물량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에너지 세계는 서로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에너지 수출을 유지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일일 평균 108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베네수엘라와 이라크는 각각 하루 73만3000배럴과 40만 배럴을 각각 수출했다. 20일 출범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기존 에너지 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해제할 방침임을 밝혔다. 백악관은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America First Energy Plan)’을 통해 미국 땅에 묻혀 있는 50조 달러(약 5경8800조원) 규모의 셰일 석유 및 가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해 생산하고, 오랫동안 침체돼 있었던 석탄 산업 역시 다시 부흥시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개발을 통해 얻어진 수익은 도로와 학교, 다리 등 인프라(사회간접자본)를 건설하는 데 충당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자신의 선거 공약이었던 1조 달러 인프라 건설 재원을 에너지 개발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의 에너지 산업은 너무 오랫동안 무거운 규제에 얽매야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행동 계획(The Climate Action Plan)' 등 유해하고 불필요한 정책들은 폐지할 것이다. 이 같은 규정폐지하는 미국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향후 7년 동안 300억 달러 이상의 임금 인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대통령이 OPEC에 대한 석유 의존을 끊겠다고 말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 이래 역대 미국대통령들은 외국산 원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공언해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미국이 “석유에 중독돼 있다(addicted to oil)”면서 중동산 석유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미국에 대한 OPEC의 원유 수출 물량은 되레 10%나 늘었다. 모함마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트럼프 신임 미국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장관 내정자인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가 취임하기를 기다린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페리 장관 내정자는 2010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워싱턴에서 미국을 구하기’에서 인류의 활동이 기후변화를 유발시켰다는 주장은 작위적으로 꾸며진 거짓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해도 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누레딘 부타르파 알제리 석유장관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OPEC은 지금 미국을 돕고 있다. 국제유가의 회복은 미국 기업들과 미국 산업, 나아가 미국경제를 돕고 있다”라고 말했다. 13개 OPEC 회원국과 11개 비OPEC 국가들은 지난해 말 극적으로 합의했던 원유 감축 목표량을 순조롭게 달성하고 있다. OPEC은 지난해 11월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총회에서 원유 감산에 극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올해 1월1일부터 14개 회원국이 일일 최대 산유량을 3250만 배럴로 한정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기존 생산량보다 하루 120만 배럴(4.5%) 줄어든 물량이다. 러시아와 멕시코 등 11개 非OPEC 산유국들도 지난해 12월 10일 일일 원유 생산량을 55만8000배럴 감축키로 합의했다. OPEC 회원 산유국이 하루 평균 120만 배럴 줄이기로 한 데 이어 비회원까지 가세하면서 하루 감산규모는 180만 배럴에 이른다. OPEC과 비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원유생산 감축에 합의한 것은 2001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산유국들의 감산 목표치인 180만배럴 가운데 150만 배럴을 이미 달성했다고 밝혔다. 석유 감산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국제 유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1.05달러(2.04%) 상승한 배럴당 52.42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1.33달러(2.46%) 오른 배럴당 55.49달러에 장을 마쳤다. 지난해 말 산유국들 간 원유 감산 합의 이후 국제유가는 20% 정도 올랐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