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위기인가 기회인가①] 제4차 산업혁명이 뭐길래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산업' 주제 정책 토론회 개최(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2월1일 국회) "혁신주도형 경제를 위해 국가의 연구·개발(R&D)와 교육, 대학 정책을 혁신해야 한다. 과학기술과 높은 수준의 국민 노동력에 기반을 둔 혁신주도형 경제로 갈 때야만 추격자를 따돌리고 21세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어낼 수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 1월13일 대구 수성호텔 ‘아시아포럼21 초청 토론회’)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차기 대통령은 단순히 보고서만 갖고 참모들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도 과학자와 토론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안철수, 1월24일 광주 북구 광주과학기술진흥원)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 혁명' 저자 슈밥을 자택에서 만나 차 한잔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려면 분권이 선행해야 한다.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1월25일 관훈토론회) 국회 탄핵 가결로 국정에서 손을 뗀 대통령도, 유력 차기 대선 주자들도, 대권 도전을 중도 포기한 전직 '세계 대통령'도 모두 '제4차 산업 혁명'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산업혁명은 익히 아는데 도대체 제4차 산업혁명은 무엇인가. 언제 제2,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화두로 들고나올 정도로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가. 온갖 미디어가 매일 이런저런 명목으로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기사를 보도하고 '원조' 격인 슈밥의 저서를 필두로 제4차 산업혁명을 다룬 책들이 서점가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제4차 산업혁명의 정의조차 확실히 알지 못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위기'로 받아들이는 측에서는 그 시대가 도래하면 자칫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제4차 산업혁명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사이에 실업자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도대체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를 찬찬히 살펴보자. ◇제1차부터 제3차 산업혁명까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은 1784년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1736~1819)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것을 계기로 시작한 기계를 이용한 혁신과 그로 인해 일어난 사회, 경제 등의 큰 변혁을 일컫는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약 100년 뒤인 1879년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이 전기를 발견하면서 대량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 변혁이 일어난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18세기 산업혁명을 '제1차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산업혁명을 '제2차 산업혁명'으로 구분해 일컫게 됐다. 다시 약 90년 뒤인 1969년 미국 국방부는 '알파넷'을 선보였다. 컴퓨터 여러 대를 하나로 연결한 네트워크로 '인터넷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군사용'으로 처음 출발한 인터넷은 서서히 민간으로 확산했고, 이미 한참 전에 군사용에서 민간용으로 변신한 컴퓨터와 어우러지며 산업 제(諸) 분야에서 '자동화'를 이룩해 생산성을 더욱 향상했다. 이를 기존 제1, 2차 산업혁명에 빗대어 '제3차 산업혁명'이라 일컫게 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제3차 산업혁명이 사회에 얼마나 큰 변혁을 야기했는가는 우리에게 IMF 외환위기의 충격이 생생히 남아있는 1997년부터 오늘날까지, 지난 20년 세월을 돌이켜보면 잘 알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그렇다면 최근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된 '제4차 산업혁명'은 무엇인가. 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서 의장인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드 슈밥(79)은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고 일하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기술 혁명 직전에 와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그 속도와 파급 효과 측면에서 이전의 혁명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이다"고 역설했다. 슈밥이 창시한 이 이론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기술,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등이 주도하는 새로운 산업 혁명을 뜻한다. 단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 이룩한 자동화는 앞서 제3차 산업혁명을 통해 이뤄진 자동화와 180도 다르다.
이와 달리 제4차 산업혁명의 그것은 AI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해당 시기에 최적의 제품 생산량을 결정하고 이를 사물 인터넷을 통해 생산 설비에 직접 지시해 제품을 자동으로 생산하도록 한다. 원료 공급 역시 사물 인터넷을 통해 로봇에 지시한다. 자원 낭비를 막고 재고 비용을 줄이는 부수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생산력 증대를 넘어선 산업혁명 하지만 이것이 제4차 산업혁명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번 산업혁명은 단순히 제품 생산에 국한하지 않는다. 별개의 여러 산업이 융합해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하는 단계까지 포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이다. 가전제품부터 발전기까지 수많은 제품을 생산해온 136년 전통의 미국 대표 굴뚝기업인 GE는 제프리 이멜트(61) 회장의 주도로 디지털 기업으로 상전벽해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산업용 인터넷 보안 기술 업체 월드테크, 2015년 알스톰의 에너지와 그리드 부문, 지난해 현장 관리 서비스 솔루션 업체 서비스맥스, 인공지능 스타트업 와이즈. 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비트스튜 등을 인수했다. GE는 이들 ICT(정보통신기술) 부문을 바탕으로 AI를 개발한 뒤, 전통적인 제조 사업 부문과 융합하는 '플랫폼 혁명'을 통해 기존 사업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관심을 두지 않는 '블루오션'을 선점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증한 '자율주행 자동차'도 좋은 예다. 사람이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차가 알아서 달리고 멈추는 자율주행 차량은 차량 기술과 AI·빅데이터·IoT 등 ICT 기술이 융합해야 비로소 현실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과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 소프트와 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 간 제휴처럼 자동차와 ICT 양 분야에서 각각 강점을 가진 업체 간 합종연횡이 봇물 터지듯 이뤄지며 신사업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
이는 두 산업혁명의 차이가 모호하기 때문에 나오는 지적이다. 실제 제3차 산업혁명은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72)이 지난 2011년 펴낸 '3차 산업혁명'에서 처음 규정됐다. 리프킨에 따르면, 각 산업혁명은 에너지원과 의사소통 방식 변화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은 '석탄 화력을 이용한 기계화 혁명'이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제2차 산업혁명은 '석유와 철강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전기 에너지를 이용한 대량생산 체제'다. 그가 주창한 제3차 산업혁명은 '정보기술(IT)과 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만들어진 자동화한 생산 체계'다. 에너지가 공짜가 되고, 물질 상품이 사라지는 대신 디지털 상품 서비스가 이뤄지는 시대로 전환하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라면 제3차 산업혁명은 아직 완성하지 않았다. 에너지는 아직 공짜가 아니고, 재생에너지도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은 한계가 있다. 디지털 상품 서비스는 새로운 서비스가 지속해 등장하고 일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물질 상품은 여전히 건재하다. 리프킨은 자신의 제3차 산업혁명 이론도 아직 실현하지 못 한 상태에서 제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부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그는 외신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기술 발전 속도, 범위와 시스템 파급력 관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현재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은 제3차 산업혁명인 정보화 혁명의 연장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제3차, 4차 산업혁명 모두 실은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가 2006년 주창한 ‘제3의 물결’의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토플러는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을 '제1의 물결'.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제2의 물결'로 각각 규정한 뒤, 컴퓨터와 인터넷 등이 세상을 바꾸는 '정보화 혁명'을 일컬어 '제3의 물결'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제3차, 4차 산업혁명은커녕 제2차 산업혁명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4차 산업혁명에 관한 다른 정의
이에 국내에서 '제4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통하는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의 이론은 특기할 만하다. 이 교수의 제4차 산업혁명론은 슈바프의 그것과 비슷한 듯 다르다. 그는 지난해 9월 싱크탱크 '안민정책포럼'(회장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안민 세미나'에 강사로 나서 자신의 제4차 산업혁명론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제1, 2차 산업혁명은 오프라인에서, 제3차 산업혁명은 온라인에서 각각 이뤄진 산업혁명"이라며 "제4차 산업혁명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이어 "IoT와 AI가 생산의 중요한 축으로 참여, 시장에서 제품이 필요한 순간 생산을 한다. 불량률이 0% 가까울 정도로 정교한 제조 시설 운영이 가능하다. 그래서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초(超)생산 시대'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재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 또는 선제로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제4차 산업혁명은 미국과 독일이 선도하고, 일본·유럽·중국이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며 "미국은 클라우드, 독일은 설비 단말, 일본은 로봇 기술, 중국은 정부 주도 기술 개발 등 각국은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도 스마트센서, 사이버 물리 시스템(CPS), 3D 프린팅, 에너지 절감,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홀로그램 등 '8대 스마트 기술'을 선택해 육성에 나선 상태다. 이 교수는 "제4차 산업혁명을 방관하면 19세기 구한말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며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거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한시라도 빨리 이 물결에 따라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다만 한국은 기존에 사용하던 추격자 전략을 버리고 가치 상승의 개척자 전략을 사용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개방하고 협력해야 한다"면서 "특히 한국은 현재 국가, 산업, 일자리, 공공조직 분야에서 위기가 나타나고,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비전과 혁신 부재·안전망 부재·분배구조 문제, 교육의 시대착오 때문에 위기가 발생하는 만큼 이런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혁신해야 (제4차 산업혁명에)성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