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탐구생활②]"준비 없는 미래 불안하지 않으세요?"
단 한 번뿐인 인생, 미래보다 현재를 즐기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짧은 머리에 단단한 어깨를 지닌 서명한(35)씨는 자신을 이런저런 잡일을 전전하는 '자발적 프리랜서'라고 소개했다. 강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인터뷰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반들거리는 건물 담에 기댄 골목 귀퉁이 작은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부속품처럼 사느니 적극적인 한량으로 현재를 즐기며 살고 싶다"며 짧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서씨는 처음부터 자발적 프리랜서가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유학까지 다녀와 남부러울 것 없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인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입사 4년 차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습관적으로 한숨을 내뱉는 일이 반복됐다. "그럴싸한 출입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빌딩 숲을 누비는 상상이 현실이 됐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공허하고, 무기력하더라고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뭐든 게 다 귀찮았어요." 켜켜이 묻어둔 기억을 애써 끄집어낸 탓일까. 그는 목이 몹시 마른 듯 연거푸 물을 마셨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 작은 떨림이 오롯이 전달됐다. "제 겉모습만 보고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소모품에 불과했어요. 매일 아침 출근해 밤늦게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고, 매일 밤 피곤해 지쳐 쓰러져 잠들었어요. 반복되는 일상에 몸도 마음도 방전된 채 영혼 없이 살았어요. 그때는 불행하다는 생각이 한순간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답답해지더라고요." 주위 사람들에게 "한숨 좀 그만 쉬라"는 핀잔까지 들은 그는 지칠 때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 지친 마음과 몸을 돌보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단 한 번도 정상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는 몇 달을 고민한 끝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계획에 없던 적극적인 한량으로 변모했다. "처음 사표를 낼 때는 정말 두렵고,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하더라고요. 그래도 여행을 다녀보니 보이지도 않는 막연한 미래보다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됐어요." 그는 영혼 없는 회사 생활보다 적극적인 한량 생활이 훨씬 낫다고 평가했다. 그는 "스스로 일 할 날과 쉴 날을 결정하고,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며 "한숨을 쉰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못 할 만큼, 마음껏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금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힘줘 말했다. 정상 궤도를 이탈한 그는 정말 자유로울까. 그에게도 걱정은 있었다. "사표를 내고 나니 부모님께서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어요. 또 5년 넘게 만난 여자 친구 부모님께서 당장 헤어지라고 하셔서 끝내 이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부모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음 한구석에 부모님께 미안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는 자타공인 적극적 한량 예찬론자다. 어디선가 돈이 되는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달려간다는 그는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번역 일을 주로 한다. 틈틈이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기도 한다. "아무리 욜로족이라도 하더라고 돈의 압박감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처음에는 사표를 내고 수입이 확 줄어들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느끼고 있는 행복과 만족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연출된 사진을 찍고, 자랑하듯 SNS 올리는 게 거북스럽단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관심이 필요로 합니다. 제 행복과 자기만족을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서 얻고 싶지 않아요. 진짜 욜로족이라면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포장된 행복이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 스스로 만족을 느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행복이 아닐까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남들 눈에 볼 때는 철없는 한량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크게 개의치 않아요.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살고, 현재의 만족한 삶을 산다면 내일도 분명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