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의 스크리닝]'싱글라이더', 인생은 홀로 여행하는 거라지만…
지난해 '밀정'(감독 김지운)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워너브러더스가 여세를 몰아 내놓은 두 번째 한국 영화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는 2월22일 개봉해 35만 명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남겨둔 채 지난달 중순께 소리 없이 극장가를 떠났다. 초강력 티켓 파워를 가진 이병헌과 '호감도 만점'의 공효진이라는 걸출한 두 톱스타가 남녀 주인공으로 포진했지만, 손익분기점인 150만 관객의 약 5분의 1 정도를 들이는 데 그쳤다. 상영 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지만, 반전이 사실상 전부인 영화라 꾹 참고 기다려왔다. ( 물론 지금도 IPTV 등에서 상영하고 있으니 앞으로 이 영화를 볼 계획이라면 이 칼럼을 덮기 바랍니다.) 영화는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증권사 지점장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던 ‘재훈’(이병헌)이 순식간에 몰락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재훈은 아내 ‘수진’(공효진)을 보호자로 삼아 어린 아들을 호주 시드니로 조기유학 보내고,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서 홀로 살며 최고급 수입차인 포르셰 카이엔을 몰며 럭셔리하게 산다. 그러던 중 회사 지시에 따라 판매한 투자 상품이 수잖은 피해자를 양산하면서 그는 코너에 몰린다. 상처를 입고 고심하던 재훈은 홀연히 호주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 그가 꿈꿔온 '행복한 나의 집'은 없었다. 그저 충격적인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가 이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겠다며 아들의 현지인 친구 아빠와 사랑에 빠져 있던 것. 이를 목격하고도 달려가 화도 내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의 앞에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던 한국인 여대생 ‘지나’(안소희)가 나타난다. 그는 수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간신히 번 돈을 귀국 직전 높은 환율로 바꿔준다고 접근한 교포 일당에게 모두 빼앗긴 뒤 거리를 헤매다 재훈을 만난 것, 지나의 거듭된 도움 요청을 계속 뿌리치던 재훈은 결국 함께 일당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도주한 뒤였다. 그 와중에 재훈은 수진이 현지인과 외도하는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 분노한 그는 몰래 집에 들어가 잠든 수진을 죽이려 하나 결국 용서하고 만다. 집을 나선 재훈은 다시 만난 지나를 교포 일당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 집은 앞서 들렀을 때와 달리 경찰로 가득했다. 지나가 그 집에 들어가자 일당 중 한 명이 수갑을 찬 채 서 있었고 그 앞의 파헤쳐진 구덩이 안에 한 한국인 여대생이 암매장된 상태로 누워있었다. 그랬다. 재훈은 서울에서 자살한 뒤 영혼이 돼 시드니로 와 그곳에서 교포 일당에게 유인돼 살해된 지나와 만난 것이다. 영화가 끝나 엔딩타이틀이 올라갈 때도, 집에 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기자는 계속 마음이 무거웠고 기분이 떨떠름했다. 어째서였을까. 재훈과 지나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두 사람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안타까워하다 허를 찔려서였을까. 그들이 떠안은 슬픔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해 가련하게 느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욱 기자를 그렇게 만든 것은 어쩌면 두 사람이 처한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흔히 접할 수 있는 좌절이고 실패이며 낙오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성공을 향해 줄달음치다 일순간 부와 명예를 모두 잃고, 심지어 가족까지 상실하고 만 40대 가장. 흙수저 인생을 살다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낯선 땅,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다 끝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만 20대 젊은이. 두 사람의 비극이 왠지 남의 인생 같지 않은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