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강력 범죄, 환자만의 문제 아니다
정부, 체계적 관리…치료 환경 개선 필요 #.1 지난달 29일 인천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는 한 여성을 어린 여자 아이가 따라갔다.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도 해당 여성과 아이가 함께 내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해당 여성과 아이는 이 아파트에 사는 A(17)양과 초등학교 2학년인 B(8)양. 이날 오후 1시께 B양 어머니는 B양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아파트 내 방송 요청은 물론 백방으로 아이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B양은 이날 오후 10시30분께 아파트 옥상 물탱크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15층에 살던 A양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서 내린 뒤 2개 층을 걸어 자신의 집으로 B양을 데려간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차 부검결과 사인은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졌다. A양은 B양을 살해한 뒤 시신까지 훼손하고, 유기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간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A양은 경찰 조사에서 태블릿 PC 전선을 범행 도구로 사용했다고 진술하는 등 살해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범행 동기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경찰이 A양의 진료 기록을 확인한 결과, 최근까지 조현병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망상이나 환청 등 정신 질환으로 인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또 지난 11일에는 범행을 도운 혐의로 또 다른 10대 청소년이 체포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신 유기 방법 등을 고려할 때, 과거 조현병 환자들이 저지른 ‘묻지마 범죄’와 양상이 다른 계획된 범죄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A양을 상대로 정밀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 울산에서 70대 노모를 살해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조현병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난 10일 오후 1시45분께 울산 북구의 한 상가. 어머니 C(71)씨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들 D(49)씨는 모친과 다투다 흉기를 휘둘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흉기를 들고 가게를 빠져나오던 D씨를 붙잡았다. 모친 C씨는 과다출혈로 숨졌다.
하지만 D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서 입을 닫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D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한 뒤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조현병 환자 전국 50만 명 추산…최근 강력 범죄 잇따라 인천에서 발생한 여자아이 살해 사건 등 최근 조현병 환자들이 저지른 강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는 일반 범죄에 비하면 미비한 수준이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전체 범죄 가운데 조현병 환자들이 저지른 범죄는 0.3%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신질환 관련 범죄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는 2006년 4889건에서 2015년 7016건으로 지난 10년 간 43% 늘었다. 한해 발생한 범죄도 2006년 182만 여 건에서 2015년 202만 여 건으로 10% 늘어났다. 이 수치는 보복운전 가해자를 ‘분노조절 장애’로 분류하면서 범죄 건수가 전체적으로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 가운데 살인이나 강도, 방화, 성폭력 등 흉악범죄 비율이 2006년 4%에서 2015년 11%로 늘어났다. 환청이나 망상 등의 증상으로 충동조절이 안 되는 정신 질환인 조현병. 이 병을 앓고 있는 일부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감정 조절을 못하거나 증상이 악화될 경우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인 피해의식이나 과대망상 등에 사로잡혀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현재 조현병 환자는 전국에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중 5분의 1인 10만 명 정도만이 실제 치료를 받고 있다. 자신이 정신과 질환이 있음을 알고도, 정신과 방문을 꺼려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탓이다. 내달부터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으로 정신병원 입원 기준이 더 엄격해진다. 개정안에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강제 감금되지 않도록 입원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정신병원 강제 입원요건이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 등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도록 명시했다.
또 개정안에는 '경찰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을 의사 등 의료 관계자에게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 등이 인권침해 소지와 전문성 결여 등의 문제가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전문적 지식도 없는 경찰이 자의적인 판단을 통해 환자를 가두고 수용하는 것은 예방 차원보다 인권침해 소지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또 강제 입원 진단을 담당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 가운데 1명 이상은 국공립병원 의사로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40여 명에 불과한 국공립병원 전문의들이 연간 23만 건에 달하는 강제입원 판단을 내리는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조현병 환자 잠재적 범죄자 취급 안 돼 일반인들에 비해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 빈도가 낮지만,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인권 보호와 사회 안전망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기보단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사회 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조현병 환자들을 일정 정도 격리할 필요성이 있지만, 개인 인권 침해 문제와 상충된다"며 "정신보건기관과 경찰 등 관계기관이 협력해 고위험군 정신질환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적절한 치료를 꾸준히 받을 수 있도록 치료 환경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용 나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병의 진행을 막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지만 상당수의 환자들이 아무런 치료 없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며 "방치가 아닌 적극적인 치료와 함께 가족과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박 과장은 "100명 당 한 명 비율로 앓고 있는 조현병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 환경이 마련될 수 있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