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재계, 새정부 '개혁적' 산업정책 드라이브에 긴장감 확산
"일방적인 '기업 옥죄기'보다 규제 개혁 우선적으로 필요" 기업 경영 자율성 침해해 일자리 축소·투자위축 우려 지적도 【서울=뉴시스】이연춘 오동현 유자비 기자 = "개혁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고, 새 정부의 주요 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일방적인 '기업 옥죄기'보다 규제 개혁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후보 때부터 내세운 재벌 개혁은 어떤 상황으로 흐를지 조심스럽다. 긴장 속에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재계 고위 임원들의 견해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건 일자리 확충과 비정규직 보호 강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재벌개혁을 본격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가 숨죽인채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재계는 이같은 정책에 대해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기업들 입장도 수용하며 단계적 시행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공격적 기업관련 정책이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주요 그룹을 정조준하는 것은 물론 기업전반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각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주요그룹들은 아직 대책회의를 여는 등 부산을 떨기보다는 향후 새 정부의 산업정책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를 장기적 관점에서 점검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당연히 재계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대그룹을 포함해 대기업 곳곳에선 새정부의 재벌관련 정책을 예의주시하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부 공약은 국회 입법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 달라지지 않겠지만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해 일자리 축소,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력한 일자리 확충 정책 맞춰 대응책 마련 나서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행보로 공약 했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 행보에 나서자 재계는 이와관련 '코드 맞추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다만 당장 신규채용 등을 크게 늘릴 수 없는만큼 기업환경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한 그룹 고위 관계자는 "기업이 활발한 경영을 펼쳐 수익을 창출해야 인력에 대한 투자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서 "현재 재벌개혁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투자와 채용 확대가 불가능해지고 채용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4차산업에 성장을 집중할거라고 말한만큼 일자리 늘리기 공약과 같이 간다면 장기적으로 인력채용이 늘수도 있겠다"며 "반도체 분야의 경우 대학이나 연구기관과 기업 간 산학협력 확대를 통해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를 채용으로 연결짓는 게 정부 차원에서 많아질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자리 확충 등 정확한 계획을 세운것은 없지만 향후 정부정책에 따라 협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판매가 늘고 물량이 증가하면 협력업체까지 일자리가 늘어난다. 향후 물량 증가시 생산인력도 충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지주사 요건 강화 추진에 현대차그룹과 SK그룹 등 '멈칫'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차가 보유 중인 기아차 지분 33.88%를 제외하곤 주요 계열사간 30% 이상 보유 지분이 없다. 현대모비스는 기아차와 정몽구 회장,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 특수관계인 지분 전체를 합쳐야 30%를 소폭 상회한다. 지주회사가 보유할 자회사 지분을 현행 20%에서 30%로 올리면 추가 지분 매입 혹은 교환비율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SK그룹 역시 주요 자회사 SK텔레콤과 손자회사 SK하이닉스 지분의 추가 매입이 필요해진다. 지난해말 지주회사 SK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은 25.22%,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20.07%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주사 요건 및 규제 강화 뿐만 아니라 재벌의 문어발 경제력 확장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추진된다. ▲자회사 지분 의무소유비율 강화 ▲일감몰아주기·부당내부거래·납품단가후려치기 등 재벌의 갑질 횡포 전면적 조사 및 엄벌 ▲금산분리 강화로 재벌의 제2금융권 소유 금지 등의 강력한 재벌규제안이 예고된 상태다. 이에 대해 재계는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경영권을 침해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대주주 일가를 위한 편법 경영을 방지한다는 방향성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아직까지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온것이 아니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내부거래, 상법개정 등 규제가 보다 더 강화될 것으로 보여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최저임금 1만원인상 등 압박에 부담 극심 재계는 특히 문 대통령의 노동 분야 공약 중 비정규직 축소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크게 긴장하고 있다. 일단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 시장과 경제에 부정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기업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해당 연령대의 고용이 줄어들거나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저숙련·취약계층의 노동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 고용이 감소하거나 숙련근로자로 대체할 유인이 높아져 피해는 저숙련·취약계층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B기업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의 임금 상승이 아닌 일자리 상실이나 물가상승에 따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은 완만하게 상승시키되 준수율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최저임금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차별금지특별법'과 '비정규직고용부담금' 도입 등을 통한 비정규직 보호 강화 정책 역시 기업 입장에서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새 정부 역시 투자 환경 조성 등 여건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비정규직 축소는 기업 입장에서 비효율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더 효율적일 수 있는 경영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라며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면 이에 따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비정규직 감축과 일자리 창출, 최저시급을 1만원 인상 등 방안을 모두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시 발생할 재원을 마련하려면 신규 고용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모두 해결하려면 정규직 임금 감축이 불가피한데, 노조의 극한 반발이 예상된다"며 "현재 상황에선 특별한 계획이 있진 않고, 향후 추이를 지켜보며 준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