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베를린 구상'은 DJ '베를린 선언'의 확대 버전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통일 독일의 상징인 구(舊) 베를린 시청 청사(Altes Stadthaus)에서 열린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을 통해 베를린 구상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상당히 오랜기간 베를린 구상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부터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으며 거듭해서 다듬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강력히 밝히고 이를 관철시킨 이후, 그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해 북한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3월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천명한 이른바 '베를린 선언'을 통해 3개월 뒤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듯,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기를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울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독일 순방 직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발사하면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파격적인 메시지가 연설문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문은 상당부문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문 대통령 역시 이날 연설에서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분단과 전쟁 후 60여년간 대립하고 갈등해 온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대전환을 이끌어 냈다"면서 "앞선 두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북미, 북일관계 개선을 약속하고, 중단된 남북철도를 연결하겠다는 점,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점 등이 닮아있다. 무엇보다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을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힌 점은 김 전 대통령의 구상을 토대로 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합의가 어려운 정치적 분야부터의 출발이 아닌 비정치적인 분야이면서 기능적 분야인 경제·사회·문화·기술·인도적 차원의 협력부터 시작해 종국적으로는 정치적 통합을 모색한다는 신 기능주의 통합이론에 기반한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해 통합의 축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기능주의 통합 이론에 입각한 전두환 정부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차별성이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특히 이날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참가를 공식 제안한 것은 비정치적 교류협력을 앞세운 김 전 대통령의 단계적 접근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군사 영역이 아닌 스포츠·문화 부문부터 협력교류한 뒤 북한과의 접점을 점점 넓혀 경색된 국면을 풀고자 한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수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