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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6년 김정은號 어디로 가나⓵]장성택 제거하고, 시장개혁 '속도전'

등록 2017-12-19 05:01:00   최종수정 2017-12-19 09: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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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13일 북한 장성택 사망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북한은 지난 12일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으며 노동신문을 통해 재판 장면을 공개했다. 2013.12.13. (사진=서상기의원실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대장 군복을 입고 등장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상중이던 지난 2011년 12월 25일이었다.  일주일 전 타계한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하나 뿐인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에게 보위부, 보안서 등을 관할하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지만, 군부의 대장 직급만은 끝내 주지 않았다. 권력의 저울추가 한 사람에게 쏠리는 것을 경계한 결과였다. 하지만 장성택은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생전에 쳐놓은 ‘금기’를 간단히 허물어버렸다. 대장 계급을 단 장성택의 모습은 김정일 사후 북한을 다스리는 실질적 통치자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듯 했다. 

 북한의 젊은 통치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011년 12월만 해도 최약체 지도자로 비춰졌다. 그는 부친이 타계하며 엉겹결에 권좌에  오른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에 비유됐다.  반면, 고모부 장성택은 친화력이 뛰어난 인물로 조카의 보위를 언제든지 위협할 '권신'으로 주목받았다.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이 통치하던 지난 2004년에도 이미 '붕당' 혐의로 권력의 중심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난 바 있다.  대학시절 아코디언을 능숙하게 연주하고 춤도 잘 추던 그는 사람을 잘 모았다.  김정은은 김일성 밑에서 후계자 수업을 20년 이상 받은 아버지에 비해 권력 기반이 극히 취약했다. 북한 군부부터 저잣거리의 촌로에 이르기까지 김정은을 지도자로 인정하는 이들이 드물었다. 파탄 직전의 경제와 국제사회의 제재도 그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였다.


◇ '핵-경제 개발 병진노선 발표 뒤 장성택 제거…권력기반 공고화

 '핵-경제 개발 병진노선(2013년 3월31일 발표)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였다.  김정일 집권기는 군의 전성시대였다.  김정은이 내건 병진노선은 비대해진 군이 주도해온 ‘제2경제(군수경제)’에 쏠린 정책의 무게 중심을 서서히 당이 지도하고 내각이 관할하는 제1경제(비군수 부문)로 옮겨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로였다. 그는 앞서 2012년 6월 28일 국유기업을 비롯한 경제단위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6.28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2013년 10월에는 14개 개방구 지정을 완료하는 속도전을 펼쳤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절, 동력이 다한 사회주의 경제에 시장의 숨결을 불어넣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중국에 치우친 대외 무역의 기반도 다변화 해나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뒤 세계를 경악하게 한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 이어졌다. 

 이 희대의 살인극에는 ‘12.12 종파사건’이라는 기묘한 이름이 붙었다.  종파사건은 연안파 등 정적을 겨냥해 할아버지 김일성이 주도한 숙청 작업을 떠올리게 했다.  불과 2년 전 군복을 입고 어깨에는 대장 견장을 단 채 등장해 세력을 과시하던 장성택의 가족들은 그의 시신 조차 수습할 길이 없었다. 처형 집행은 잔인했다. 뉴욕타임스(NYT)등 일부 언론이 시신을 개에게 먹였다는 일부 보도를 확인해보라는 지시를 한국 특파원들을 상대로 내렸다.  숙청의 총대는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노선 발표 이후 기득권의 상당부분을 내각에 내준 북한 군부가 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신 조차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한 처형 방식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북한 사회를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김정은 정권이 이미 갈 때까지 다 간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북한 붕괴론이 이번에도 다시 맹위를 떨쳤다.


◊파산직전 북한 경제, 김정은 집권 뒤 고속성장

 그로부터 4년후,  북한은 여전히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다스리고 있다,  김정일 집권기에 파산 직전이던 북한 경제는 지난해 3.9% 성장했다. 출범 이후 4차례 핵실험을 한 김정은 정권을 향해 옥좨오는 국제 사회의 제재를 뚫고 이뤄낸 성과였다.  같은 기간 한국 경제는 2.8% 성장했다. 양국 간 경제 규모 차이가 크지만, 성장률만 놓고 비교해보면 북한에 뒤졌다. 인민의 생활을 도외시 한 채 풍부한 석탄, 철광석 등 광물 수출을 대거 늘려 얻은 반쪽 자리 성장이라는 비판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난의 행군기에 무너져 내리며 유명무실해진 행정 체계도 김정은 집권 이후 상당부분 복구됐다.  공포정치가 주효했다.  그 불똥은 탈북자들에게 튀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인정 사정없는 반부패 드라이브에 가위 눌린 군인이나 관료들이 몸조심을 하면서 월경 수수료 또한 수백 달러 수준에서 2000달러로 급등하고 있다고 김영환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진단한다. 

 북한 경제가 독재자 김정은의 집권 이후 지난해까지 플러스 성장을 유지한 데는 시장 개혁이 주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획일적인 계획 경제의 유산을 딛고, 독립 채산제를 실시해 근로자들의 의욕을 고취했다. 아울러 집단농장을 이루는 개별 농가의 최소 단위도 대폭 줄이는 등 생산성을 전반적으로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한 결과라는 것이다.

 북한 사회의 풍경도 크게 변했다. 혁명의 성지 평양은 이제는 자본주의의 단 맛을 본 인민들이 돈을 좇는 욕망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장마당도 이러한 변화의 도화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공간에서 자본주의의 원리를 익히고, 독자 생존의 지혜를 체득하고 있다. 현재 북한 정부의 공인을 받은 이러한 장마당만 400개 이상에 달한다. 북한 주민들은 정부가 깔아준 멍석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거둔 소득의 일부를 국가에 사용료로 납부하고 있다.

 시장에서 돈을 번 신흥 계층도 세를 넓히고 있다.  일부 전주들은 장마당에서 번 자금을 종잣돈 삼아 금융업을 하거나, 유통업 등에 다시 투자하는 등 사업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전주들이 굴리는 돈은 적게는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초기 산업 자본 축적에 소요되는 자금 일부를 국내에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정일이 앞서 지난 2009년 11월 화폐 개혁을 단행한 것도 이들의 자금을 양성화해 산업화의 실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실패한 바 있다. 한국에서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 이후 화폐 개혁을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여전히 갈길 먼 김정은 정권…북핵 동결·경제개혁 어떻게 풀까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개혁은 거꾸로 북한이 가야할 길어 얼마나 먼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걷는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1978년 이후 인민공사를 허무는 작업에 돌입했다. 승포제가 대표적이다. 생산성이 극히 낮은 중국의 농촌에 묶여 있던 인력들은 이어 농민공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로 대거 옮겨왔다. 고향을 떠나 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는 이러한 농민공들이 무려 2억 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39년 전에 닻을 올린 농업 개혁 작업이 첫단추를 이제 채운 셈이다. 이 3대 세습 국가가 얼마나 낙후돼 있는 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농업개혁을 추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김정은이 직면한 최대 난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푸는 일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거듭되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도 커지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3년 2월 이후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 핵 실험을 했다. 북한이 건국 이후 지금까지 한 핵실험 6차례 중 4번이 김정은 정권 들어 이뤄졌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 후 얼마나 폭주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정권의 이러한 폭주는 '핵 방벽'을 세워 국가안보부터 지키고, 이어 경제개발에 '올인'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됐다.  김정은은 한국과 미사일, 탱크, 전투기를 늘리는 재래식 무기경쟁을 하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따라하는 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핵무기를 포기한 뒤 결국 내란에 휘말리며 목숨을 잃은 리비아 무아마르 가다피의 최후도 보았다.

 김영환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김정은 정권의 거듭되는 핵·미사일 도발이 트럼프 행정부와 핵동결을 담판 짓고 전면적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기 위한 전초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뚜렷한 타임 테이블이 있다”면서 “핵·미사일 개발을 빨리 끝내고 경제 개발에 집중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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