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간호사들만 '태움'?…직장 내 '똥군기 문화' 도처에

등록 2018-02-25 12:50:00   최종수정 2018-03-05 09:38:29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사회 각계에 하급자 부당하게 괴롭히는 갑질 횡행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경험 73%…월 1회 이상 47%
회식 자리서 특히 빈번…술 강요, 성희롱 등 다반사
퇴근 이후나 주말 등 업무 외 시간 침해 스트레스
회사 아닌 대학가에서도 선배들의 군기잡기 예사
"사회 전반에 억압적 군대 문화…수평적 체질 개선"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서울아산병원의 한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에 '태움'이라는 간호사 사회 특유의 악습이 있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많은 직장인들이 공분하고 있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유래한 태움은 주로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을 가르치거나 길들이는 방식을 지칭하는 은어다.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사회 각계에서 조직 내 '똥군기'가 만연해 이번 사건에 감정이입을 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한국판 위키피디아인 나무위키에 따르면 똥군기란 소위 갑질로 불공정한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하급자를 부당하게 괴롭히는 행동이나 이를 강요하기 위한 것을 말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직장 내 갑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군기 문화는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1월1일부터 지난 1월 20일까지 제보를 받은 결과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제보는 석달만에 5478개나 들어왔다. 청소, 김장, 장기자랑 등 개인적인 일을 시키는 기타 잡무가 15.2%,나 됐고 직장 내 따돌림도 15.1%에 달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김정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에게 의뢰한 '우리 사회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최근 1년 동안 한 번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직원이 73.3%로 집계됐다. 피해 빈도는 월 1회 이상이 46.5%, 주 1회 이상 25.2%, 거의 매일 12.0%로 심각한 수준이다.

 괴롭힘의 형태는 각양각색이지만 회식 자리에서의 술 강요가 그중에서도 단골이다. 체질적으로 술이 안 받는 사람에게 술을 억지로 먹도록 하거나 권위적인 회식 문화로 젊은 직원들의 기를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A씨(36)는 "회식 자리에서 서열 순으로 술잔을 돌리는데 부서원이 30명이라면 신입사원은 29명에게 잔을 돌려야 한다"며 "만약 술잔을 다 못 돌리고 회식이 종료됐을 경우 그 다음날부터 갈굼이 시작된다"고 토로했다.

 A씨는 "첫 부서 회식 때 신입에게 건배 제의를 시키는데 버벅대거나 목소리가 작으면 몇 년간 이를 안주 삼아 비웃어 대기도 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임들이 건배사를 미리 교육시키고 적어서 외우게 하곤 했다"고 전했다.

 술자리에서는 성폭력 문제도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신체 접촉이 이뤄지지는 않더라도 젊은 여직원들을 언어적으로 희롱하는 일은 다반사다. 성폭력도 권력 관계에 기반한 직장 내 갑질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B씨(29·여)는 "회식 자리에 젊은 여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좋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남성이 많은 집단이라 그런지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사가 흔하다"며 "선배들이 일부러 나를 과장님이나 국장님 옆에 앉히는 일도 허다하다"고 하소연했다.

 업무 외 시간을 침해하는 것도 대표적인 똥군기에 속한다. 퇴근 이후 저녁 시간에 술자리를 강요하거나 '단합'을 핑계로 주말에 모임을 갖는 것이다.

 B씨는 "체육행사 명목으로 주말 1박2일을 통째로 바치기도 한다"며 "윗선에서 번개를 치면 본인 일정이 있어도 무조건 참석해야 하고, 약속이 있다고 하면 '조직 사회에서 뭐가 중요한지 모르나. 알아서 하라'는 답을 들을 뿐"이라고 말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지난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로 발견된 가운데 간호사가 신입을 교육하는 '태움' 관행이 논란이 되고 있다. hokma@newsis.com

 직장이 아닌 학교에서도 군기 문화는 존재한다. 몇 년 먼저 학교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깍듯한 대접을 바라거나 특정 호칭을 강요하는 경우다.

 3수를 하고 대학에 입학한 C씨(35)는 졸업한 지 한참이 됐지만 아직도 선배들이 요구한 호칭에 어리둥절하다. 그가 다닌 대학에서는 선배를 선배라고 부르는 것이 엄격히 금지됐다.

 C씨는 "입학이 늦어 22살에 대학 새내기가 됐는데 장수생들에게도 선배를 '언니, 오빠, 누나,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더라"며 "22살인 내가 21살인 선배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냥 선배라고 부르고 싶다고 하니 한 선배가 화를 버럭 내면서 '나이를 항문으로 먹었느냐.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고 폭언을 쏟아내는데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멍했다"고 떠올렸다.

 이 같이 사회 도처에 군기 문화가 퍼져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군대 문화가 한 몫 한다고 평가한다. 남성 대부분이 군 복무를 통해 철저한 서열 문화와 권위주의를 체득하게 되고, 군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주변 영향을 받거나 대중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군대 문화가 퍼져 억압적 조직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 때문에 직장 내 갑질이 횡행하는 것"이라며 "상명하복식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꾸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조직을 수평적 방향으로 체질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ashley85@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최신 포커스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