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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동이사 22인의 도전기…노조 한계 경영참여로 극복

등록 2018-07-01 06:00:00   최종수정 2018-07-10 09: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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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시에는 근로자(노동)이사 22명이 활동하고 있다. 나름의 이유로 노동이사에 도전한 이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노동이사제가 서울시를 넘어 우리나라 기업문화 전반에 새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사례집 '근로자가 직접 뽑은 이사님 이사님, 우리 이사님'에 따르면 서울시의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 1~2명이 기관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는 제도다.

 관련 조례에 따라 정원 100명 이상인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은 의무적으로 노동이사를 둬야 한다. 노동이사는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노동이사는 비상임이사로 임기는 3년이다.

 '노동의 경영 참여'를 핵심으로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시작한 노동이사제는 2014년 11월부터 도입이 추진됐다. 시는 1년8개월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해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2016년 9월29일 제정했고 이듬해 1월 국내 1호 노동이사가 탄생했다. 올해 3월 120다산콜재단을 마지막으로 서울시 16개 의무도입기관에서 모두 노동이사 선임을 완료해 현재 22명이 활동 중이다.

 노동이사중에는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한 이들이 많다. 노조활동중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다.

 박원준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사안에 따라 한계가 있었다. 노조 입장에서는 선명성을 보여야하다보니 현안을 해결하는데 있어 노사가 강대 강으로 나가다 풀기 어려워지는 일들을 경험했다"며 "직접 경영에 참여해 제도를 잘 정착시켜서 현실을 극복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관수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는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노동자의 권익이나 복지, 임금향상을 위한 활동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며 "노동이사 제도가 생기면서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주택도시공사 노동이사는 "전임 사장 재임기간 동안 노사 간에 소통이 원활치 않았다. 회사 실익 추구라는 미명 하에 노조를 무시하고 노사협의 없이 사장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일들이 잦았다"며 "우리 공사에는 3개 노조가 있지만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진석 서울에너지공사 노동이사는 "1985년 설립된 에너지관리공단 집단에너지본부가 2016년 서울에너지공사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노조와 서울시간 입장차를 극복하는 소통이 부족했고 역할 구심점도 없다는 것"이라며 "결국 노조는 직원들의 고용과 근로조건 승계를 지켜내기 위해 단체행동으로 대응하는 등 불가피한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활동과 별개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동이사가 된 이들도 있다.

 김남희 서울의료원 노동이사는 "23년 동안 간호사로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직군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며 "직원들의 목소리를 경영진에 좀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조영화 세종문화회관 노동이사는 "세종문화회관 본연의 기능인 예술단 중심의 공연문화를 도외시하고 경영효율성을 강요받는 상황"이라며 "노동이사로 출마해 이런 문제들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경은 120다산콜재단 노동이사는 "경영이나 조직운영에 경험이 없는 일반 상담사임에도 출마를 결심한 것은 상담사들의 근무 현실을 경영진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일반기업과 달리 재단은 24시간 체제로 움직이지만 행정은 주간 위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곽승란 서울시립교향악단 노동이사는 "그동안 단원들이 목소리를 낼 채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며 "상임지휘자 채용 문제, 객원수석단원 임금 형평성 문제 등 단원들을 위해 반드시 관철시켜야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 도입된 제도라 선례가 없어 혼란을 겪는 노동이사들이 있다. 노동이사와 노조위원장 사이에 어떤 역할 분담이 있어야하는지도 아직 정립이 돼있지 않다. 이들은 앞으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노동이사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한성남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는 "직원들이 노동이사에 거는 기대가 노조위원장보다 높은 것 같아 부담도 크다"며 "주어진 역할에 비해 기대치가 커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긴다. 말만하면 다 실현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변춘연 서울농수산식품공사 노동이사는 "노동이사는 직원들이 선출한 이사로서 경영진의 입장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사회 안건을 바라봐야한다"며 "노조교섭 시보다는 좀 더 큰 틀에서 유연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미래지향적 자세를 갖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와 노조간부간 차이점을 인식하고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경표 서울의료원 노동이사는 "노동이사는 노조가 가질 수 없는 이사회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노조는 노동이사가 가질 수 없는 단체교섭권 등을 가진다"며 "노조의 추천을 받긴 했지만 무조건 노조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면 노동이사로서 바른 역할이 아니다. 병원이 발전해야 노조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준식 서울연구원 노동이사는 "노동이사라고 해서 이사회에서 무조건 반대 목소리만 내는 존재가 아니다. 본인의 생각만 믿고 함부로 자기주장을 펼쳐서는 안 된다"며 "직원 신분이라고 해서 직원의 이익만 대변하고 관철시키려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이사들은 직무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지만 제도 정착을 위해 개선해야할 점을 벌써부터 발견하고 있다. 이들은 관행과 제도 측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시와 경영진에 개선을 요구했다.

 장지현 서울시복지재단 노동이사는 "노동이사는 근로자이면서 이사다. 하지만 근로자로서 업무와 이사로서 업무가 한꺼번에 요구됐을 때 어떤 결정을 해야 하나 고민이다. 이중적 자격 때문에 두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며 "이사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원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조직적·제도적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안미영 서울문화재단 노동이사는 "부서장의 지휘 감독을 받고 있는 현 제도 하에서는 노동이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상당한 고충이 있다"며 "임원과 직원신분의 겸직 문제는 이른 시일 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의 권한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박희석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2018년 예산과 사업계획을 검토하는 데 사업계획 476쪽에 예산이 350쪽이 넘는다. 이 방대한 내용을 아우르는 안건을 2시간 이사회를 통해 의결한다. 노동이사들이 내용을 이해하고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노동이사가 이사회 안건 생성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안 되면 어렵게 도입한 노동이사제도가 경영의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박현석 서울주택도시공사 노동이사는 "이사회 안건들이 보통 7일 전에 전달되는데 예닐곱건 정도다. 하루에 1건 검토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안건을 면밀하게 검토하려면 정보열람권이 중요하다. 정보열람권이 주어진다면 틈틈이 열람하며 경영자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지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준식 서울연구원 노동이사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기관에서도 운영내규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내규가 명문화돼야 노동이사들이 본격적인 사내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와 노조간부간 갈등 역시 향후 제도 운영과정에서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박희석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비노조 출신 노동이사가 있는 일부 기관에서는 노조와 노동이사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노동조합이 가진 힘의 일정부분을 노동이사에게 뺏긴다고 생각하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동이사제가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는 사외이사제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경계심도 있다.

 박원준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사외이사 제도는 1998년 당시 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도입됐다. 20년째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이사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관적"이라며 "노동이사가 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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