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린지 "순간의 예술 뮤지컬, 항상 베스트 상태여야"
4월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영웅' 1막이 끝난 뒤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거명되는 인물은 설희다. 대다수의 관객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라는 이유 또는 안중근 의사 역을 맡은 정성화·양준모 때문에 '영웅'을 찾는다. 그런데 설희 역의 린지(30·임민지)가 재발견되고 있다. '설희 역이 누구야?'라며 인터미션에서 캐스팅보드를 확인하는 관객이 한둘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다룬 이 뮤지컬에서 명성황후의 죽음를 목도한 설희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린지 덕에 생명력이 가득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린지는 "뮤지컬여배우로서 탐나는 역이었는데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평소 역사에 무지했는데 점점 조국애가 생겨나고 있어요. 반성하면서 성찰하고 공부도 하고 있죠"라고 했다. 안중근을 비롯해 선 굵은 남성 캐릭터가 많은 '영웅'에서 설희는 균형을 맞춰주는 캐릭터다. 설희 자체도 복잡한 캐릭터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독단적으로 싸우면서도 극 전체와 어울려야 하고, 강단 있지만 여장부처럼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아니고 가녀리지만 연약한 모습은 또 아니다. "설희는 극을 중화시키는 역이에요. 안중근을 비롯해 남성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만들죠. 그런 부분들이 어렵지만, 제가 잘 표현하면 많은 분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린지는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배우가 아니다. 그룹 '피에스타' 메인보컬 출신이다. 2012년 아이돌 그룹 중 손꼽히는 데뷔곡으로 통한 '비스타'로 데뷔한 피에스타는 업계 관계자와 팬들 사이에 '안 뜨는 이유가 무엇일까'가 화두가 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던 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팀이 해체됐다. 특히 린지는 피에스타 데뷔 전 대형 기획사 유명 걸그룹 최종 후보로 지명될 정도로 실력 있는 아이돌로 통했다. 연습생 시절만 5년을 겪었다. "외모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죽을 만큼 노래하고 춤 췄다.
그런 뮤지컬 무대는 린지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피에스타에 몸 담았던 2013년 '하이스쿨 뮤지컬'에서 샤페이 역을 맡아 뮤지컬에 데뷔했는데 이 역으로 뮤지컬 신인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후 서태지 노래를 묶은 주크박스 뮤지컬 '페스트'의 '타루' 역으로 주역급으로 성장했고, 이후 '오! 캐롤' '광화문 연가' '삼총사'에 잇따라 출연하며 뮤지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작곡가 이영훈이 작곡한 노래들을 엮는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젊은 수아'는 린지를 재조명하게 만든 배역이다. 애초 '국민 첫사랑' 같은 분위기를 풍긴 배역이었다. 그러나 이지나 연출이 강조한 '신여성' 느낌을 린지가 잘 해석해 소신이 분명하고 강단 있는 캐릭터로 거듭났다. "수아를 만나면서 조금 더 당당해진 것 같아요. 이번에 설희 역시 그렇고. 뮤지컬이 자기표현의 통로가 되고 있어요. 제가 평소 말하지 못했던 응어리를 푸는 행복한 시간이죠." 스케줄이 바쁘더라도 중요한 뮤지컬은 빠짐없이 챙겨보는 린지는 맡고 싶은 배역이 많다.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위키드'의 글린다. '아이다'의 암네리스 등이다. 지금의 성장세라면 모든 배역이 가능해보인다. 린지는 '핑클' 출신 옥주현, 'SES' 출신 바다에 이어 여성 아이돌 그룹 출신 뮤지컬배우의 계보를 이을 적임자로 평가 받는다. "시작이 다를지언정, 뮤지컬배우분들과 어울렸을 때 부족한 면이 없었으면 해요"라고 바랐다.
린지는 "마음을 열고 넓게 보는 관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제한된 공간과 환경에서만 행복을 찾지 말고, 분야를 넓혀서 도전하는 마음이 중요해요"라는 얘기다. "아이돌이 대중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관심이 커진 만큼 상처를 받을 일도 더 많아졌거든요. 게다가 평가를 받기에는 어린 나이이고요. 조금 더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해요. 본인이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했다 소신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쉬지 않는 노력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오랫동안 뮤지컬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최정원이 롤모델. 그녀에게 뮤지컬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재방송도 없고, 같은 작품과 같은 배우라도 똑같은 장면을 절대 볼 수 없잖아요. 그레서 매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그런데 달리 말하면 '매순간이 기회'라는 거잖아요. 처음 오는 관객들이 '베스트'를 볼 수 있도록 저 역시 항상 '베스트'가 돼야 하겠죠."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