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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이땅의 여성들이 중첩된다, 연극 '인형의집 파트2'

등록 2019-04-14 06:07:00   최종수정 2019-04-22 10: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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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형의 집' ©LG아트센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노라'가 파트너를 바꿔가며 들려주는 격정적인 듀오 연주였다. 28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인형의 집 파트2'(연출 김민정)는 각성해가는 여성의 '파격적인 노래'다.
 
1879년 초연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인형의 집'은 사회가 요구한 역에 갇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 노라가 자신을 찾는 이야기다.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나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가 쓴 '인형의 집 파트2'는 입센 '인형의 집' 이후 15년을 상상한 작품이다. 자신이 떠난 후 남편 '토르발트'가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노라는 그에게 이혼장을 접수하라고 요청하기 위해 15년 만에 귀환한다.

하지만 지고지순하고 행복함을 연기한 예전의 노라가 아니다. 작가로 성공한 노라는 가족들과 각개전투를 벌인다. 

연극은 등장인물들의 설전에 기댈 뿐이지만, 대형 무대장치가 등장하는 연극만큼이나 스펙터클하다. 주장과 논박이 분명한 말들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라의 공격이 쉽지는 않다. 가족이 저마다 반박하는 이유와 입장 역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인물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과 입장의 층위는 저마다 공감를 산다.

노라는 자신을 어릴 때부터 키워온 유모 '앤 마리'에게 '당신도 나처럼 집을 떠나 자식을 버린 것이 아니냐'라고 비판하지만 마리는 부유한 가정의 노라와 달리 자신은 가난한 집안 출생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반박한다. 

성인이 돼 노라를 처음 대면하게 된 그녀의 딸 에미는 엄마와 성향이 정반대다. 노라는 관계에 구속되기보다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약혼을 해 결혼을 앞둔 에미는 안정된 울타리를 원한다.

성실하고 주변사람들에게도 친절해 지역에서 존경 받는 은행장인 토르발트는 노라를 인형처럼 대했지만, '남자는 그래야 한다'는 것과 가장이라는 굴레의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집을 떠나는 것이 노라는 해결책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인형의 집 파트2'에서 토르발트가 "같이 해결하는 것 대신, 당신은 도망갔다"고 비난하는 이유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연극이 마냥 어두울 거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블랙코미디의 요소도 강한 '인형의 집 파트2'에서 특히 토르발트는 풍자 요소가 짙은 캐릭터다.

명예와 위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토르발트는 노라가 가명으로 쓴 책에 자신이 나쁜 남자로 묘사된 것을 무엇보다 참지 못한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떠난 노라에게 쉽게 이혼을 해줄 수 없다고 선고했던 그는 이혼장을 접수했다면서 자신을 새로 묘사한 책을 쓰라고 노라에게 요구한다.

원작에서 노라보다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더 아꼈던 토르발트는 파트2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데 힘을 쓴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극 중 상당한 웃음 포인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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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형의 집' ©LG아트센터
다시 되돌이표를 확인한 노라는 재차 각성한다. 노라가 토르발트가 이혼장을 접수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쓴 책 때문에 아내에게 이혼 당한 판사가 그녀의 뒷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 판사는 솔로의 자격으로 결혼 제도를 비난해온 그녀를 사기꾼으로 몰았다. 신문을 통해 그녀가 그간 표명해온 입장을 부인하라고 협박했다.  

자신의 새 삶을 모두 부정당할 거라 생각했던 노라가 토르발트를 찾아온 이유다. 노라는 신문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로 한다. 하지만 판사의 협박에 굴복해서 내는 의견이 아니다. 필명이 아닌 실명으로 모든 것을 공개하겠다며 다시 인형의 집을 나선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현시점의 한국사회와 맞물리는 연극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시대에, 여성이 위기 상황을 남의 힘을 빌려서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하려는 이 시도는 작금의 분위기를 타고 조화로운 음을 낸다. 

 다른 캐릭터와 빚는 불협화음도 들을 만하다. 인생의 지난함들이 맞물려 내는 음들은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 음악이 된다. 삶에는 아름다운 음표만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대형교회를 화두로 다양한 논쟁거리를 던진 '크리스천스'로 유명한 네이스 작가는 노라의 귀한으로도 여러 고찰거리를 안긴다. 삶의 더께가 쌓일수록 약동하는 로라의 심장과 머리는 뜨거워서 중독적이다. 제2, 아니 제3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90여분간 밀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데는 배우들의 공이 크다. 노라 역에 서이숙(52)·우미화(45), 토르발트 역에 손종학(52)·박호산(47) 등 TV 드라마와 영화로 얼굴을 알리기에 앞서 대학로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은 토론 연극 수준의 작품에 유려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마리 역의 전국향, 에미 역의 이경미도 기꺼이 이들의 상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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