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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김리회, 워킹맘의 좋은 선례···발레리나의 임신과 출산

등록 2019-08-11 13:39:57   최종수정 2019-08-26 10: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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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아기를 낳은 후 근육이 많이 굳은 거예요. 근력이 없으니, 물통 하나 들기가 버겁더라고요.”

무용수의 근육과 뼈는 악기와 같다. 연습을 단 하루만 쉬어도 티가 팍팍 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김리회(32)는 임신과 출산으로 작년 5월 ‘돈키호테’ 이후 1년가량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서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무대에 오르지 못했을 뿐, 출산 2주 전까지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토슈즈를 신고 클래스(무용수들이 본격적인 연습이나 일정 소화 전에 몸을 풀고, 신체를 만드는 시간)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석 달이 넘게 토슈즈를 신지 못하니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보통사람보다 섬세한 근육을 갖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이래, 부상으로 3개월 쉰 것이 전부였고 매일 같이 연습했던 김리회다.

김리회는 “일상생활도 안 되는데 발레 동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들었어요. 발레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털어놓았다.

김리회가 화려한 복귀의 날갯짓을 한다. 국립발레단이 28일부터 9월1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치는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오딜로 관객과 다시 만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인 사업가 강도한씨와 2014년 결혼한 지 5년 만인 올해 1월 딸을 낳았다. 4월 중순부터 국립발레단에 다시 출근,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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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자하로바 ⓒTimur Artamonov
“아기를 낳고 딱 100일째 되는 날 발레단에 출근했어요. 너무 설레고 행복한데 한편으로는 아기를 두고 가려니까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날 눈물까지 났어요.”

앞서 발레리나가 출산 후 무대에 복귀한 적은 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국립발레단 단장을 지낸 최태지(60) 광주시립발레단 단장,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지낸 임혜경(48) 등이다.

상당수 발레리나는 전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엄마가 되는 것’을 미룰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은 뒤 찾아오는 신체적인 변화가 발레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수진(52)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김리회의 복귀를 적극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유다. 엄마가 되는 것을 미룰 수밖에 없는 발레리나에게 좋은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리회는 “외국에서 활약하신 강 단장님이 출산과 복귀를 한 무용수들을 많이 봤다고, 이런 저런 사례를 알려주시고, 응원도 해주셨어요”라고 했다.

이달 말 ‘백조의 호수’로 내한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 시어터의 수석무용수 이리나 콜레스니코바(39)는 다섯 살짜리 딸을 뒀는데 왕성하게 활약 중이다.

대표적인 발레리나는 세계 정상급 발레단인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 겸 이탈리아 라 스칼라 발레단 에투알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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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안드레이 클렘(Andrey Klemm.왼쪽) 교수와 제1무용수인 발레리나 박세은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드레이 클렘과 박세은은 2019 한·프발레예술협회 워크숍에 함께한다. 2019.07.29. [email protected]
173㎝의 키, 긴 팔다리, 작은 얼굴로 ‘신이 내린 몸’이라는 평을 받는 그녀는 2011년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49)과 결혼, 딸을 낳은 뒤에도 이 천상의 몸을 유지하고 있다. 현란한 테크닉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뼈를 깎는 듯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발레는 육체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종의 육체노동이고, 운동선수에 가깝게 운동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출산 후 복귀를 위해서 발레리나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용수들이 몸 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제도도 중요하다.

최근 발레리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KBS 2TV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에서 과거 촉망받는 솔리스트였으나 임신과 출산으로 6개월 간 공백 뒤 복귀, 치열하게 사는 무용수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공연평론가 김태희씨는 “여성이 임신, 출산 뒤 다시 직장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일반 회사에서도 편한 루틴이 아니다”라면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은 무용계에서는 더 그렇다”고 짚었다. 

발레리나 박세은(30)이 제1무용수로 있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임신과 출산을 대하는 모범사례 발레단이다. 최근 6년간 연애한 남자친구와 결혼한 박세은은 당장 아이를 낳을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무용수로서 출산도 고려하고 있다. 출산과 복귀가 쉽지 않은 한국 무용계와 달리 프랑스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박세은은 “파리오페라발레의 서른 서너살부터 아홉살까지 무용수들의 상당수가 아이를 한두명 낳아요”라면서 “아이를 낳고 다시 복귀를 해도 같은 포지션을 맡을 수 있죠. 그것이 당연하다고 인식이 잘 박혀 있어요”라고 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클래스를 담당하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클렘(52) 교수는 “아이를 많이 가지면 더 좋다. 더 강한 여성이 되고, 아이를 낳은 뒤 합류하면 더 가족 같이 느껴진다”면서 “무용수 아이들을 위한 리허설도 하고 발레단 자체가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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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공연평론가는 “해외에서도 처음부터 보편화돼 있는 것은 아닌데 무용수, 발레단이 서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면서 “최근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 연습실에서 발레리나가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단원들이 이를 축하하는 영상이 게시되기도 했다. 임신을 자연스럽게 환영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무용수가 출산을 잘 할 수 있게 지원을 해주고 복귀를 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면서 “무용수들이 출산 후 재활 등 몸 관리를 할 수 있게 돕는 단체의 필요성도 강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리회는 ‘무용수 워킹맘’의 좋은 선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요즘 무용수들도 일찍 결혼을 하는 추세인데, 임신과 출산 뒤에도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면 한다”면서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고, 얻는 것도 더 많아요. 정말 소중한 일이잖아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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