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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뮤지컬 '리지' 나하나 "센언니 캐릭터, 록음악으로 교감 통쾌해요"

등록 2020-04-15 09:07:52   최종수정 2020-05-04 1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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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에스비타운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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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뮤지컬 '리지' 나하나. 2020.04.15.(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배우 나하나의 무대는 밤에도 이어진다. 계속되는 커튼콜 또는 앙코르? 아니다. 침대가 그날 올랐던 무대로 변신한다. 공연을 녹음한 음원과 상상으로 당일 무대를 천천히 복기한다. 그렇게 무대는 연습에 의해서만 깨어나는 꿈이 된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나하나는 "잠들기 전에 그날 공연을 꼭 모니터링하고 잔다"고 말했다. '뮤지컬 블루칩'이라는 수식은 행운으로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나하는 작년과 올해 대학로 남녀 배우를 통틀어 가장 많이 성장했다. '시데레우스', '테레즈 라캥', '시라노', '빅피쉬', '비아 에어 메일(Via Air Mail)'에 연달아 출연했고, 현재 뮤지컬 '리지'의 타이틀롤을 맡는데 이르렀다.

나하나의 데뷔작은 2016년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당시 홍서영이 캐스팅된 '시빌 베인' 역의 커버이자 앙상블이었다. '리지'에서는 리지의 언니 '엠마' 역을 맡은 홍서영과 한 무대에 오른다. 

나하나는 요즘은 '리지' 꿈만 꾼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무대에 오르거나, 예정대로 사다리를 내려가지 못하는 꿈이 반복된다"며 불안을 내비쳤지만 나하나의 리지를 본 관객은 그녀에게 흠뻑 빠져들고 있다.

'리지'는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대저택에서 일어난 미제 살인 사건이 모티브다. 거부 보든 가(家)의 막내딸 리지가 자신의 부친과 계모를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지만,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실화를 자양분 삼았다

나하나의 리지가 놀라운 점은 '백지' 같은 매력으로 그녀에 대한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어도 무섭기보다는 안쓰럽고, 잔인한 짓을 저질러도 끔찍하기보다는 슬프며, 거짓말을 할 때 맹랑하게 보이기보다 가냘프다.

누군가는 나하나의 리지에 대해 '잔인한 캐릭터 중 가장 슬픈 몸짓과 표정을 지녔다'라고 표현했다. 사실 나하나는 여성스런 역할을 많이 연기해왔다. '빅피쉬'의 제니 힐, '비아 에어 메일'의 로즈가 대표적이다.

나하나는 "리지가 정말 센 캐릭터이거나 엄청 무서운 아이였으면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리지는 분노에 차 있지만 참혹한 일들을 견뎌온 사람이에요. 그것이 폭발하는 거죠. 지금 우리에게 멀기만 한 인물이 아니에요. 한 여성이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었죠." 이처럼 그녀는 작품의 맥락을 낚아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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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뮤지컬 '리지' 나하나. 2020.04.15.(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앞서 영화 '리지'(2018·감독 크레이그 맥닐) 등을 제외하고 '리지 보든 사건'은 주로 피상적으로 그려져왔다. 가부장적인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리지와 그녀의 언니 엠마는 불안으로부터 영혼이 잠식당한 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에서는 성적 학대 정황 등을 통해 강력한 권력의 은밀한 면을 더 드러낸다. 견고한 구조 속에서 행해진 이 억압은 동시대적 해석을 가져온다. 우리 사회가 맞서 싸우고 있는 것 중 하나인 디지털 성착취물의 '지배와 폭력'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로 인해 리지가 거침없이 욕을 내뱉고 소리치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공감하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슈에 대해 여성으로서 공감을 했어요. 소리를 쳐서 화를 내기에 어려운 분들이 아직 많잖아요. 대신 극장에 와서 같이 소리를 지르며 뭔가를 풀어낼 때 공감하는 것이 있죠. 극 속의 내용은 당연히 실제 행하면 안 되는 일인데 일상에서 벗어난 극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룰을 설정하고 무대 예술을 빌려서 허락된 상상이죠. 현실에서 벗어나 통쾌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요."

'리지'가 에너지를 분출하고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는 중요한 소통 수단 중 하나는 록 음악이다. 여성 배우 4인만 등장하는 록 뮤지컬은 이례적이다.

충남 서천 출신인 나하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달고 다녔다. 세 살 때부터 말은 못했어도 노래는 흥얼거렸다고 한다. 할머니로부터 '수덕사의 여승' '소양강 처녀'를 듣고 따라 불렀다.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나하나 보컬의 매력이다.

본인은 노래가 콤플렉스라 레슨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값지다. 그러나 록은 지금까지 그녀에게 먼 음악 장르였다. "'리지'에서 록 넘버를 소화하는 것이 최대 숙제예요. 제 톤 자체에 한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주로 제가 썼던 발성이 아니거든요. 극 중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이 가장 편해요. 호호."

그래서 '이영미 노래 교실'을 열심히 수강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영미는 '리지'에서 보든 가의 가정부 '브리짓'을 맡았다. 그녀는 '헤드윅' '밴디트' 등 다수의 록뮤지컬에 출연하며 탁월한 록 발성을 뽐내왔다. "'록 보컬의 대가'로부터 열심히 사사를 받고 있어요. 하하. 제가 폭발적으로 불렀다고 생각해도 다시 들어보면 아직 부드럽게 느껴지거든요. 평소 잘 듣지 않던 록 음악도 열심히 듣고 있죠."

노력 덕인지 나하나의 록 절창은 힘찬 밴드 사운드의 호위를 받으며 객석의 마음으로 진군한다. 그녀의 울부짖음은 얼음 비수처럼 차갑고 섬뜩하기보다, 뜨겁고 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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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뮤지컬 '리지' 나하나. 2020.04.15.(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나하나는 리지와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다. 겉으로 볼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알 수가 없고, 쉽게 파악하기 힘든 유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무엇이 있다는 점도 같다. "마그마를 품은 화산 같다고 할까요. 겉으로 볼 때 둔해 보일 수 있는데 생각도 많고 예민한 부분도 많아요."

나하나는 후배들에게 하나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할 태세다. 그녀는 깜짝 스타가 아니다. 뮤지컬 '인더하이츠' '빨래' '광화문연가' 등에도 나온 그녀는 오디션을 치르며 차곡차곡 작품 목록을 채워왔다. 그런데 나하나는 주변에게 공을 돌렸다. '인더하이츠' '광화문연가' '시라노'에 함께 출연한 육현욱, '빅피쉬'의 박호산 그리고 '리지'에 함께 출연 중인 배우들을 포함 지금까지 작품을 함께 한 배우, 스태프로부터 배웠다는 그녀는 '배움은 도처에 있다'는 자세다.

계속 다른 뮤지컬 넘버들을 들으면서도 노래도 공부하고 있다.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의 스티븐 손드하임의 광팬으로 유명한 나하나는 '하데스타운' '웨이트리스' '아멜리아' 등 국내에서 아직 공연하지 않은 해외 작품들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비아 에어 메일'의 경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참여한 채한울 작곡가의 작품이라 더 출연하고 싶어 했다.

나하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음악,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루한지 모르고 즐겁게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이라 느꼈다. 그래, 결국 뮤지컬은 사람이 만든다. 리지를 실존 인물처럼 아끼는 나하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훨훨 날아가라'라고 노래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녀에 족쇄에 묶이지 않고 날았으면 해요. 그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리지'는 6월 21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에스비타운에서 공연한다. 리지는 나하나 외에 유리아가 연기한다. 엠마 역의 김려원과 홍서영, 리지 친구 앨리스 러셀 역의 최수진과 제이민, 브리짓 역의 이영미와 최현선도 출연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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