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신세계]공급망 재편 나서는 강대국…'GVC 지각 변동' 오나
트럼프, 국방물자법 발동 의료 자급화 나서코로나19로 美 산업 재건 정책에 힘 실린다美, 해외 진출 기업 '유턴 유인책' 적극 시행中, 최대 516조 국채 찍어 기업 지원 등 나서日·獨, 각각 아세안·유럽 연합서 GVC 블록화"해외 법인 설립…현지 생산 강화해야" 제언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업계에서 일어날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글로벌 밸류 체인(GVC·세계 공급망) 재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보호 무역주의의 바람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타고 그 세를 키우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을 보유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GVC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세계의 굴뚝'으로 불릴 만큼 각국의 생산 공장들이 대거 진출했던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최초 발생한 여파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무역 분쟁 우려 등으로 GVC 재편을 주저하던 국가들이 공급망 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선두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겠다"며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겼던 기업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다가, 이제는 의료 산업까지 자립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특별 국채를 찍고 재정 적자율을 높이는 등 자금을 투입하고, 기업 지원 방안을 포함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 정책, 코로나19로 가속화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 시각) 행정 명령을 통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미국 기업에 마스크·인공 호흡기 등 의료 물자 증산을 강제하고, 연방 정부가 의료 물자의 가격과 공급을 관리하는 것. 전날 미국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7만5000명을 넘기자 특단의 조처에 돌입한 셈이다. 앞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차례에 걸쳐 "중국에 부과했던 7.5%의 고율 관세를 50여 의료 품목에 한해 오는 9월1일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이 미흡하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중국에 자국 내 의료 물자 공급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닥치자 DPA를 발동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는 의료 산업 자립화다. 코로나19와 같은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언제 다시 창궐할지 모르니, 의료 물자 공급을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료 물자 조달 시 미국산 제품을 우대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행정 명령을 발동하는 방안도 고려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확산 대응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기치인 자국 산업 재건이 의료 분야로까지 확산한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GVC 재편은 더 빨라질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됐던 미국의 제조업 재건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한층 속도가 붙었다. 우선 '리쇼어링'(Reshoring·해외로 생산 시설을 옮겼던 기업을 자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 유인책이 더 강해졌다. 연방 정부가 미국에 20여개 혁신 산업 클러스터(Cluster·집적지)를 조성하고, 기업 생산 시설 자국 이전에 드는 총비용의 20%를 세액 공제 형태로 지원하던 기존 정책에 더해 법인세율 인하(35→21%), 미국산 제품 구매 우대, 미국인 고용 보조금 지급 등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뒤 시행됐다. 미국의 GVC 재편 프로그램인 첨단 제조업 파트너십(AMP)에는 미국 내 철강 공장 가동률 상향(73→80%), 나프타(NAFTA·미국-캐나다-멕시코 자유무역협정) 체결국 생산 자동차 부품 사용 비율 확대(62.5→75%) 등이 포함됐다. 미국에 수입되는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25%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물렸다. 그 결과 지난 2016년 267곳에 그쳤던 미국의 유턴(U-turn) 기업 수는 2018년 886곳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해외 기업도 미국 투자에 나섰다. 이탈리아 완성차 제조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SK이노베이션·롯데케미칼 등 기업이 미국 내 생산 설비를 증설하거나 공장을 새로 지었다. 2016~2018년 이렇게 늘어난 일자리 수는 44만7000개에 이른다. ◇이에 맞서는 中·日·獨…돈 뿌리고 'GVC 블록' 만든다 중국도 미국과 경쟁하기 위한 지원책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은 지난 3월 회의를 열어 특별 국채 발행, 재정 적자율 상향, 지방 정부 특수목적채권 발행 규모 확대 등을 결정했다. 금융권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특별 국채를 최대 3조 위안(약 516조원)까지 찍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기업 지원, 인프라 투자 목적이다. 중국 정부는 곧 구체적인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기업 지원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는 이 계획은 이르면 오는 5월로 예상되는 전국인민대표회의 연례회의 개막식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높은 임금, 고령화 등으로 내재화가 어려운 일본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 국가 연합)과 공동체를 결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태국 등 국가를 자동차 생산 거점으로 삼아 생산 시설을 대거 이전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PTPP)을 통해 GVC 블록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 3위 수출국인 독일은 여전히 자유무역주의를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중국의 공세에 유럽 연합(EU) 내 결집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제조업 스마트화로 개발도상국과의 생산 비용 격차를 줄인 뒤, 해외 생산 설비를 EU 안으로 옮기거나 공장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독일 기업의 해외 생산 비중을 점차 낮춰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국에 공장을 신설한 SK이노베이션·롯데케미칼에 힌트가 있다. 해외 기업에도 열려 있는 미국 리쇼어링 유인책에 편승해 트럼프 대통령의 GVC 재편을 새 기회로 이용하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거시경제 담당 연구원(이코노미스트)은 "미국은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통해 자국으로 들어오는 해외 기업에 당근을 주고 있다"면서 "해외 법인을 적극적으로 설립해 현지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도 미국 주도의 GVC 재편에 따른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선 수출 기업에 36조원 이상 금융을 지원하고, 화물 노선을 증편하는 등 실질적인 애로 사항 해소에 나섰다. 대외 경제 정책 방향도 정비한다. '포스트 코로나19 대외 경제 정책 방향 수립' 연구 용역을 발주, GVC로 대변되던 국제 분업 체제의 약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