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뮤지컬 '드라큘라' 임혜영 "15년차, 두려움이 더 생겨"
4년 만에 다시 출연…공감 연기로 호평작년 '안나 카레니나' 부상 이후 컴백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지킬앤하이드'의 엠마 역을 맡으면서 '공주과(科)'로 여겨졌다. 커다란 눈망울, 주먹만 한 얼굴 등 청순가련한 이미지가 앞세워졌다. 성악 전공자로 발성도 우아했다. 하지만 임혜영이 출연한 작품 목록만 톺아봐도 얼마나 다양한 결을 선보여 왔는지 깨달을 수 있다. 밝고 사랑스런 '그리스'의 '샌디', 헌신적인 '투란도트'의 시녀 류, 싱그러움과 씩씩함을 잃지 않는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페기 소여', 애절한 사랑 연기를 선보인 '미스사이공'의 킴, 점차 단단하게 성장해가는 '레베카'의 '나'와 '팬텀'의 '크리스틴', 일제에게 온갖 치욕을 받지만 언제나 꿋꿋한 뮤지컬 '아리랑'의 '수국'이 보기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미나'(엘리자베스) 역도 그만큼 다채로운 결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허점에도 400년의 세월 동안 한 여인 미나만을 사랑한 '드라큘라' 이야기에 감정이 요동치는 이유 중 하나는, 드라큘라에게 점점 빠져드는 미나 캐릭터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뮤지컬스타 김준수·류정한·전동석이 나눠 연기하는 드라큘라는 400년간 기다려온 미나를 위해 그녀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자신의 그 심장에 칼을 꽂는다. 칼은 비수(匕首)가 아니다. 비수(悲愁)다. 슬퍼지는 이유다. 드라큘라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제서야 완전한 사랑으로 귀결되니 비애로 가득하다.
최근 성수동에서 만난 임혜영은 "미나가 느끼는 갈등이 좀 더 명확하고 다양하길 바랐다"면서 "갈등이 쌓인 상황에서 선택의 문제에 처할 때 좀 더 경계를 많이 열어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임혜영의 해석은 일부에서 서사가 약하다는 '드라큘라'의 단점을 무색하게 만든다. 드라마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관객의 이해를 가져올 수 있다. 임혜영은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내공을 키워왔다. 2017년 소극장 2인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 역을 맡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16년 국내 초연 당시 호평을 들었던 작품이지만 '대극장 뮤지컬 배우'로 각인된 임혜영이 소극장, 그것도 재연에 합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임혜영은 당시 스스로 한계에 다다랐고, 바닥이 드러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제루샤 덕에 많이 배우고, 많이 채워졌어요. 그런데 작품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산이었어요. 하지만 관객 눈높이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 참 즐거웠죠. 초연이 너무 좋은 평을 받아, 재연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지만 연기가 더 재미있어졌고, 표현하는 것이 더 자유로워졌어요."
스스로도 "제가 섹시함이 가능할 지 의문이 들었었다"고 걱정했지만 임혜영은 능청스럽게 이 역을 소화했다. 평소 카랑카랑한 보컬을 자랑하며 고음을 맡아온 그녀가 알토 파트를 맡아야 하는 배역이기도 했다. 덕분에 저음도 단단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5~7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키티'를 맡았을 때 위기에 처했다. 스케이트 타는 장면을 위해 따로 연습을 하다가 부상을 당한 것이다. 오른쪽 발목 뼈가 두 동강나는 큰 부상이었다. 공연을 진행해야 하는 수밖에 없어 철심을 박는 수술을 급히 받은 뒤 뼈가 50%만 붙은 상황에서 공연을 끝내야 했다. 공연이 끝난 뒤 그해 9월 말이 돼서야 뼈가 완전히 붙었다.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스케이트 연습을 많이 할 수 없어서 괴로웠어요. 그 때 여러가지로 참는 것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이후 회복을 위해 쉬었을 때도 힘들긴 했지만, 확실히 쉴 수 있어서 목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덕분에 임혜영의 목소리는 다양한 결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애초 2016년 김준수 드라큘라와 연기할 때 그의 분명한 '철성(鐵聲)'과 자신의 선명한 목소리가 부딪힐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 캐릭터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큰 시너지를 냈고 이번에는 조합이 더욱 단단해졌다.
임혜영은 매번 출연한 회차를 모니터링하는데 "드라큘라뿐 아니라 루시, 조나단 등 다른 배역을 만날 때마다 정서적으로 톤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면서 "높은 톤과 낮은 톤을 유연하게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감정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드라큘라' 미나에 한몸이 돼 공연을 이끌어가는 와중에 공연계뿐 아니라 사회적인 위기가 닥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다. 이 여파에 따른 선제적 초치로 '드라큘라'는 지난달 1일부터 공연을 중단했고, 20일 만인 같은 달 21일부터 공연을 재개했다. "미나는 4개월의 여정이 예정돼 있었는데 3주를 쉬니, 시간이 더 빨리 간 것 같아요. 사실 미나를 아직 보내줄 준비를 못하고 있는데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까 더 아쉬워요. 미나 때문에 좀 더 마음이 아파도 된다고 생각하니 더 간절해지더라고요." 자가격리를 하고 무대에 다시 오는 순간 묘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긴장감은 첫 공연인데 몸은 익숙하니까 묘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매 공연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어요. 어젯밤 공연이 하루 아침에 마지막 공연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더 조심하면서, 공연과 관객의 소중함을 더 인식하고 있습니다.
"언제 (배우 생활을) 스톱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생겼죠. 지금은 답을 찾는 과정이에요. 제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얼마나 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죠." 그것은 결국 다양한 해석을 열어주는 미나의 개방성과 연결이 됐다. 다양하게 넓게 볼 수 있는 배우는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드라큘라'는 다음달 7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