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ICJ 제소 수면 위로…한일 부담 속 회부 불투명
이용수 할머니 "국제법으로 일본의 죄 밝혀달라"정부 "ICJ 제소 신중 검토" 日 "언급하지 않겠다"ICJ 제소, 한일 양국 동의해야…"현실 가능성 낮아""文정부, 한일 갈등 관리 노력 속 전선 확대 우려"
그간 위안부 문제의 ICJ 제소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을 자제해왔던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일본은 "논평하지 않겠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ICJ에서 위안부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고 내다봤다. 오히려 ICJ 제소 문제를 논의할 경우 한일 갈등의 전선이 한층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법으로 일본의 죄를 밝혀 달라"…한일 정부 동의 필요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국제법으로 판결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금전적 배상이 아닌 과거 행위에 대한 사죄 및 책임 인정은 국내 소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취지다. 이 할머니는 "우리나라에서 재판도 했고, 미국에서도 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면서 "이제는 방법이 없다. 우리 정부가 국제법으로 일본에 죄를 밝혀 달라"고 주장했다. 이어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정과 사과를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ICJ 추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신희석 연세대 박사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단순 금전적 배상이 아니라 과거 행위에 대한 사죄 및 책임 인정, 역사교육 등을 원하는데, 이는 국내 소송을 통해서 실현하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다"며 ICJ 소송이 필요성을 설명했다. 유엔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간 분쟁을 법으로 해결하는 유엔의 사법기관이다. 하지만 한일 정부 어느 한 쪽이 합의하지 않으면 제소가 불가능하다. 한국 정부가 ICJ의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지 않고 있어 일본 정부가 제소를 추진해도 한국이 불응하면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이 제소하는 경우에도 일본의 동의가 필요하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ICJ에 제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일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큰 데다 ICJ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하더라도 쟁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할머니들의 고통은 이해하지만 한일 정부가 ICJ 제소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한국 입장에선 그간 일본이 요구했던 독도, 징용 문제의 ICJ 회부와 선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일본도 1965년 청구권 협정,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으로 끝났다고 주장한 상황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를 다시 키우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이 할머니의 공개 요구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 등의 입장을 조금 더 청취해 보고자 한다"며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는 신중하게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 동안 정부는 일본의 ICJ 제소 움직임에 대해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다가 이번엔 검토 입장을 보인 것이다. 최영삼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왔다"며 "앞으로도 위안부 피해자 등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원만한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가 회부될 경우 재판 과정에서 외교문서나 변론 등이 모두 공개되는 만큼 일본 전쟁 범죄의 실상을 국제사회에서 다시 공론화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ICJ가 UN 산하기구로, 과거 UN인권위원회가 두 차례 걸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위안부가 군사적 성노예 시설'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승소 가능성도 있다. 다만 위안부 문제를 ICJ에 제소할 경우 일본이 그간 요구해 왔던 독도 영유권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까지 ICJ 회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국제법적으로 한국 고유 영토인 독도 문제가 국제무대에서 분쟁화되는 것은 물론 징용과 관련해 식민 통치의 불법성 문제를 놓고 재판관들이 한국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정부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삼각 공조 강화 움직임에 따라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ICJ 제소가 갈등 해결은커녕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ICJ에 제소하더라도 어떤 쟁점을 가져가느냐가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합의할 가능성이 적다"며 "ICJ 제소 과정과 재판 결과의 수용 가능성, 외교 공백에 따른 정치적 부담 등 파장을 고려했을 때 한일 간 문제를 풀기보다는 오히려 불협화음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도 ICJ 제소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전날 도쿄 외무성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떤 의도, 어떤 생각으로 발언한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논평을 삼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 자민당 일각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한 한국 법원의 판결에 맞서 ICJ 제소 등을 언급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일본은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로 배상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 온 데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ICJ에 회부될 경우 재판 과정에서 전시 성폭력이라는 비인도적 범죄가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공론화될 수 있는 만큼 가급적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 자민당에서도 ICJ 제소 이야기가 나왔지만 공세 차원이지 진정성 있는 제안이 아니었고, 한국 정부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며 "정부가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과거사에 대해서는 로키로 접근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전선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