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1천조 시대] 슬그머니 무너진 '부채 마지노선'…문제는 속도다
정부, 코로나19 위기 과감한 재정 투입…국가채무 급증IMF, 韓 성장률 日·獨·伊 보다 높아…확장재정 기조 효과회복 불가능한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재정 여력 충분"빨라도 너무 빠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잠자는 재정준칙
[세종=뉴시스] 오종택 기자 = 지난해 코로나19 위기가 촉발하며 세계 경제는 급격히 위축됐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와 마이너스 성장은 주요 선진국을 주저앉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수 침체는 물론 고용, 수출 등 국내 실물경제에 파장이 커지자 정부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감한 재정 투입을 시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가 엄습한 지난해 5월 정부의 살림살이를 논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이 당면한 경제 위기의 치료제이면서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제체질과 면역을 강화하는 백신 역할까지 해야 한다"며 재정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코로나19 위기는 여전하지만 정부의 과감한 확장 재정 정책 덕에 경제 회복의 가능성은 앞당겼다. 다만, 그사이 급격히 늘어난 나랏빚은 재정건정성 악화라는 또 다른 불안 요인으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위기 유례없는 나랏돈 투입…경제 충격 최소화 철저한 방역체계와 과감한 재정 투입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갔다. 한국 경제는 작년 하반기 재유행의 위기에도 뚜렷한 수출 회복으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빠르게 정상화를 향해 내달렸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는 역성장(-1.0%)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그 타격 정도는 가장 적었다.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6%로 상향했다. 불과 두 달 사이 0.5%포인트(p)를 올렸다. IMF가 지난 1월 발표한 주요 7개국(G7)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와 비교해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3.1%), 이탈리아(3.3%), 독일(3.5%)을 웃돌고, 캐나다(3.6%)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이들 국가의 작년 성장률은 바닥을 쳤다. 우리나라가 비교적 선방(-1.0%)했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긍정적 평가인 셈이다. IMF는 작년 4분기부터 이어진 수출 호조세를 후한 평가의 배경으로 꼽았다. 여기에 최근 국회를 통과해 집행 절차에 들어간 추경이 전망치를 0.2%나 끌어올리도록 견인했다. 그러면서 IMF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해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 확대와 공공투자에도 속도를 붙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와 여당이 견지한 확장재정 기조가 지금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적합한 처방이라는 데 힘을 실을 것이다. IMF의 호응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목표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며 "세계경제의 '업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코로나19 위기를 가장 먼저 탈출하는 선도그룹에 서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회복 불가능한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재정 여력은 충분" 현 정부 출범 후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경제,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 운용은 급격한 재정 지출 증가를 불러왔다.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예기치 않은 전염병 사태까지 겹치면서 지출 규모는 봇물 터지듯 폭증했다. 펜데믹에도 정부가 찍어낸 적자국채가 버팀목이 되어 안팎의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평가와 함께 코로나 이후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지출 증가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위기 속 정부의 과감한 확장 재정 드라이브가 경기 회복의 선순환으로 이어졌다는 대외적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유례없는 과감한 나랏돈 투입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사회적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아니냐는 위기감 역시 팽배하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내수 침체, 고용한파, 양극화 등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다는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다.
단순히 국가채무가 1000조에 육박하고, 채무비율이 증가한 데 따른 위험 부담은 지금의 재정여력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IMF 자료를 토대로 OECD 회원국의 GDP 대비 순부채비율을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2019년 11.5%에서 작년 18.0%로 상승했지만 건전성 순위는 5위에서 4위로 오히려 상승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국가채무가 증가했지만 다른 나라의 재정 지출이 더 커 건전성 순위가 되레 상승한 것이다. 빨라도 너무 빠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잠자는 재정준칙 우려스러운 점은 국가채무 증가 속도다. 이전 정부까지 30%대를 유지하며 완만하게 관리해오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현 정부 들어 급격히 요동쳤다. 2017년 36.0%에서 최근 추경을 포함하면 48.2%로 5년 새 무려 11.3%p가 치솟았다. 40%대에서 50%대로 증가하는 속도는 더 가팔라졌다. 홍 부총리는 "48%라는 국가채무비율 수준은 선진국이나 OECD 회원국 평균 대비 현저히 낮다"면서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재정 여력이 상당하다고들 한다. 다만 국가 채무가 증가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과 당분간은 그런 상승 폭을 해소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관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가 침체됐을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국민소득 증가분이 재정지출 증가분보다 더 커진다는 주장을 폈다. 적기에 투입한 재정의 쓰임이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세수가 늘면 소비가 증대되는 연쇄효과가 발생해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이른바 승수효과를 내세웠다. 코로나19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다. 이는 앞으로 나랏빚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국회에서는 피해 보상 방안으로 손실보상제 논의가 한창이다. '확산세 진정'이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내수경기 촉진을 위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약속했다. 이렇게 되면 수십조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라 연내 1000조원 시대를 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현재와 같은 부채 증가 속도는 국가신용등급 하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지만 이를 억제할 재정준칙 논의는 뒷전이다. 정부는 지난해 국가채무비율 60%,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 3%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선을 설정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사실상 표류 중이다. 일각에서는 증세론에 불을 댕기고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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