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독한 치매 노인 앤서니 홉킨스 존재감…'더 파더'
[서울=뉴시스] 김지은 기자 =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인의 고독한 감정만으로도 스크린을 꽉 채운다. 영화 '더 파더'는 완벽했던 삶이 무너지며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된 치매 노인의 심리 드라마다. 치매 환자와 가족, 주변 인물들이 겪는 일들을 다루지만 감상적이지 않다. 80대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는 은퇴한 뒤 런던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무료한 일상 속 그를 찾아오는 건 유일한 가족인 딸 앤(올리비아 콜맨) 뿐이다. 그런데 앤이 갑작스럽게 런던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 순간부터 앤이 내 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는 딸도 집도 그리고 나 자신까지 낯설게 느껴지고 기억이 조각나고 뒤섞인다. 인물과 사건은 물론 시간의 순서도 제멋대로 느껴져 혼란스러워진다. 영화는 비슷한 상황의 단순한 반복처럼 느껴진다. 앤서니는 매번 손목시계를 어디에 뒀는지 잊고, 딸이 결혼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도 헷갈린다. 앤은 그런 아버지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를 돌볼 간병인을 찾는다. 그러나 순간과 순간이 각자의 기억 속 다른 파편들을 만나 밀도 높은 심리극을 선사한다. 가장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공간인 집이 때로는 차갑게 느껴지고 돌연 낯설어 지는 등 주인공을 둘러싸고 계속해서 변화한다. 집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앤서니는 자신의 세계가 변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나이 듦과 인생에 관한 통찰도 묵직하다. 평생 믿어왔던 모든 것이 흔들리는 것에 혼란을 느끼는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나약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딸의 이야기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자식이 부모의 보호자가 되고, 부모가 자식에게 의존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담담하게 전한다. 실명 그대로의 캐릭터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의 존재감은 러닝 타님 내내 압도적이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디멘시아(치매)를 겪고 있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심리를 품격 높게 소화했다. 80대 노인부터 7살 어린아이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연기력은 거장 배우의 저력을 체감하게 한다. 콜맨도 나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며 가족과 자신의 삶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앤'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두 배우는 모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유력 후보로 꼽힌다. 2012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동명 연극이 원작이다. 4월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