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언 "빌보드 월드디지털송 1위, '이상한 세계관'에 입성한 듯해요"
방탄소년단 RM 피처링 '그러지 마'로 쾌거9년 만의 솔로 정규 2집 '프래질' 타이틀곡…"회복의 앨범"
싱어송라이터 이이언은 지난 2012년 버틸만큼 버텨서, 틈 하나 없는 정교한 건축물 같은 솔로 1집 '길트-프리(Guilt-Free)'를 만들었다. 흘려서 들을 음표·박자·사운드 하나 없는 이 음반은 철저한 감상용이었다. 뭐하나 놓칠까 골방에서 골몰하며 들어야 했다. '음악 너드'를 위한 음반이었다. 9년 만에 발매한 솔로 정규작인 2집 '프래질(Fragile)'은 여백의 음반이다. 생활·풍경과 상관 없이 시공간을 초월해 해당 배경에 녹아들어간다. 제목처럼 깨질 듯 연악한 평범함 속에서 반짝이는 위로를 길어낸다. 무엇보다 쉽고 간결하다. 첫 번째 트랙 '그러지 마'를 시작으로 마지막 11번째 트랙 '언제까지나 우린'을 단편소설집처럼 쭉 읽은, 아니 들은 이들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당연히 거기에 있는 밝은 빛을 마주한 된 느낌'이라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난 이이언은 "저는 이번 앨범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회복이었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우리는 이번 앨범뿐만 아니라 '뮤지션 이이언'을 잃을 뻔했다. 그는 지난 2018년 말부터 2019년 중반까지 공황장애를 앓았다. "음악이 내 능력밖의 일인 것 같으니, 그만두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음악을 하지 않고 살아갈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9개월을 쉬고 나니까 오히려 "제가 음악을 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음악에서 가장 멀리, 버리기 직전까지 가다보니까 오히려 음악을 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몽환적이고 어두우면서 깊고 섬세한 사운드는 벼락 같은 영감이 아닌, 치열하게 투쟁하며 계산한 산물이었다. 마이크로 단위까지 쪼개서 리듬을 만들었다. 새로운 소리를 위해 없는 장비도 직접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이이언은 "'집착' 대신 '정성'을 갖자는 생각으로" 임한다. "소모됐던 과정과 강박적인 방식을 내려놓았어요. 덕분에 이번 앨범 작업 과정은 편한 상태였죠. '프래질' 작업은 공황장애를 빠져 나온 기록이에요. 연약함을 겪고, 흔들리고 부서지는 마음을 갖은 채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 앨범이죠."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그의 삶에 '건강한 루틴'도 만들어졌다. 기상, 집안 청소, 커피 마시기 그리고 음악 작업이 일정한 시간에 맞춰 돌아간다. "사실 음악 작업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과정이 예전처럼 쫓기는 느낌이 아니에요. 그 작업물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느낌이죠." 이런 마음 덕에 '프래질'은 더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세계적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피처링한 타이틀곡 '그러지 마'는 미국 빌보드 내 월드 디지털송 세일즈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해당 차트 첫 1위다. 이이언은 "여전히 현실감이 없어요. 뭔가 이상한 설정의 판타지 영화에 속하거나, 이상하게 설정된 세계관의 유니버스에 입성한 듯합니다. 이이언이 빌보드 1위를 하다니"라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음악 자체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소셜 미디어의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DM)을 가득 채우은 다양한 피드백이 방증이다. 특히 한 독일 출신 팬은 자신의 아기가 매일 밤 이이언의 앨범을 자장가 삼아 잠든다고 했다. 이이언은 "음악의 힘을 새삼 실감해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전혀 다른 문화와 사회에 속한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다"고 했다. 앨범에는 RM를 비롯 평소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대거 힘을 실었다. 래퍼 스월비(Swervy)가 작년에 먼저 공개됐던 곡 '매드 티 파티'에, R&B 가수 제이클레프(Jclef)가 '눌(Null')에 목소리를 보탰다. 재즈 싱어송라이터 은희영(John Eun)도 '그러지 마' 등에 기타 연주로 함께 했다. 최근 급부상 중인 뮤지션 은희영은 이이언을 멘토로 삼고 있다. 그가 작년 11월에 발표한 싱글 '호프(Hope)'엔 이이언과 RM이 백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이언은 기존 마니아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그들의 존경도 받는다. 그가 교감을 즐거워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며 몸을 낮췄다. 그가 자신의 앨범 소개글에도 쓴 것처럼 오히려 더 본인이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됐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싫은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졌고, 저와 맞지 않은 것에서도 좋아할 이유를 찾게 됐다"고 했다.
앞으로 이이언의 삶은 더 활력으로 감돈다. '언니네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이능룡과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 '나이트 오프(Night Off)'로서 내달에 공개되는 드라마 OST에 참여한다. 8월엔 솔로 싱글을 내놓는다. 이번 앨범 발매 전부터, 계획했던 싱글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 대한 반응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어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청자들과 나눠, 더욱 커진 '회복의 기운'으로 무장한 만큼 길을 잃어도 상관없어 보인다. 10번 트랙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의 노랫말처럼, "너무 연약한 행복을 내려놓"고 "더 높이 높이 날아 날 잡"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서로를 지켜줄 거야 / 우리는 말 대신 노래를 할거야"라고 흥얼거리다보면, 청자는 저도 모르게 씩씩해진다. 이제 냉철한 건축가의 얼굴이 아닌, 해맑은 풍경화 화가의 얼굴이 된 이이언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정교한 신소재로 각종 기능이 담긴 건축물을 설계하고 싶었어요. 이제 같은 건축물이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미술 작품 같은 아름다운 집을 그리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