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한계 다다른 징병제…모병제 전환 비용 4조 추산
여군 중사 사망 후 女징병제 명분 상실발전한 韓 사회 분위기 안 맞는 징병제진호영 "모병제 전환 비용 4조원 추산"모병제서 징병제 환원하는 나라 주목모병제 전환 전 군인 처우 개선 필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 안에서 여군의 지위가 낮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여성 징병제 내지 남녀평등복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됐다. 여성에 대한 처우가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성추행과 집단적 외면의 위험을 무릅쓰고 군복무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군을 뜯어 고칠 대안으로 모병제가 거론되고 있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함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 병역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성평등한 군대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5일 "과거 윤일병 사건, 최근의 변희수 하사의 죽음, 공군 이중사 사망 사건과 같은 군의 낙후된 병영문화와 지체된 인권의식, 그리고 성폭력 카르텔은 반드시 우선적으로 발본색원돼야 한다"며 "이러한 전제 하에서 저는 모병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복무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심 의원의 말대로 현재 우리나라 병역제도는 징병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복잡하다. 병은 징집을 통해 충원되지만 간부는 직업군인제라 모병제 성격을 띠고 있다. 여기에 병 전역 후 8년차까지 복무하는 예비역도 있어 우리 병역제도는 단순하지 않다. 결국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모병제란 병 징집 방식을 모병제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모병제의 장점은 곧 징병제의 단점이다. 징병제는 모병제에 비해 짧은 복무기간 탓에 전투기술을 완전히 숙달하기 어렵다. 복무 형태가 달라 병역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징병 시 개인 특성을 고려하지 못해 인적 자원 배분 상 비효율성이 나타난다. 징병제는 병역 기피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수반한다. 징병제는 현대전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현대전은 감시정찰, 지휘통제, 정밀타격체계가 갖춰지고 로봇, 무인기, 스텔스(저피탐) 장비, 인공지능, 초연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전쟁이다. 이런 전장 환경을 고려하면 국방 인력은 병력 중심에서 기술 집약형으로 전환돼야 한다. 사이버전과 첨단장비 운용을 위한 간부 위주 전문 인력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징병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인권 의식이 확산되고 탈 권위주의가 가속화되면서 대규모 인원이 합숙하는 병영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는 병사들이 입대함에 따라 징병제의 특성인 의무와 강제, 희생에 기반을 둔 지휘통솔이 한계에 도달했다.
진 준장은 병역자원 전망과 미래 전장환경, 병영환경, 병역의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모병제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진 준장은 상비군 30만과 의무 복무에 의한 동원군 40만명으로 군을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현역 50만명과 예비군 137만명으로 구성된 군을 현역 30만과 준현역인 동원군 40만명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진 준장의 구상에 따르면 상비군 30만명은 현 장교 6만3500명과 부사관 11만6300명을 현행대로 유지한 가운데 모병으로 충원한 병과 부사관 12만명으로 꾸려진다. 매년 1만5000명에서 2만명을 추가 모병하면 5년 후에는 병과 부사관을 20만명 이상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진 준장의 설명이다. 진 준장은 의무복무 동원군 개념을 제안했다. 의무복무 동원군은 3년간 매년 1개월 이상 소집해 훈련과 실제 근무를 한다. 3년차 이상 의무복무를 마친 동원군은 비상근 동원군(모병)으로 근무하거나 지역방위 예비군으로 편입된다. 비상근 동원군은 최장 6개월간 실제 부대에서 근무한다. 비상근 동원군은 재계약이 가능하며 현역으로 전환이 허용된다. 진 준장은 이 같은 모병제 전환에 추가로 4조원 정도가 투입된다고 추산했다. 그는 "현 징병제 하에서 병과 부사관 38만4610명의 인건비는 각 계급 평균연봉을 기준으로 약 10조5000억원이고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병과 부사관 23만6500여명에게 약 14조5000억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1973년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 사실상 미국의 패배로 끝난 베트남전 이후 미국에서는 징병을 통해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정예화된 소규모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임금 인상 문제를 들어 반대했지만 닉슨 대통령은 1973년 모병제를 도입했다.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징병제를 완성한 프랑스는 2001년 모병제로 전환했다. 냉전이 종식되자 1996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병력 규모 감축과 모병제 전환을 중심으로 한 국방개혁법을 공포했다. 병역 불공정성 문제가 군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킨 것도 모병제 전환을 도왔다. 당시 프랑스 국민 72%가 모병제에 찬성했다. 1990년대까지 최대 49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을 유지했던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군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옛 동독지역 징집대상자가 편입하면서 잉여 자원이 많아졌다. 병역대상자 증가로 입대자 비율이 현저히 낮아지자 대체복무자와 복무면제자가 증가하고 병역기피 사례가 급증했다. 2004년 독일 국방부는 2010년까지 병력을 25만명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했고 감축이 완료된 2010년 12월15일 독일 국방부는 의무복무정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1963년도에 모병제를 도입한 영국은 지난해부터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의 입대를 허용할 만큼 모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은 2011년 모병제를 시행했지만 심각한 병력 부족 탓에 징병제 환원을 검토하고 있다. 대만은 2018년 모병제 시행 후 지원병 충원율이 8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일본의 자위대 충원율도 77% 수준이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에서도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10개국이나 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는 인접한 러시아의 안보 위협 때문에 징병제를 운영하고 있다. 사이프러스 섬을 두고 분쟁 중인 그리스와 터키도 징병제다. 또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을 계기로 모병제를 폐지하고 징병제로 다시 돌아간 우크라이나(2014년)와 리투아니아(2015년), 노르웨이(2016년), 스웨덴(2018년) 사례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동북아에 위치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병제의 단점은 ▲전쟁이나 국가 긴급사태에 대비할 상비군과 예비전력을 보유하기 힘들다는 점 ▲임금 부담으로 무기체계 개발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 ▲국방비 부담이 커진다는 점 ▲군의 대표성이 약해지고 국민 일체감이 저하된다는 점 ▲사회 빈곤층이 과다 지원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전문가들은 모병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군 인력 구조 개편과 군인 처우 개선 등 선결 과제가 많다고 조언한다. 최병욱 상명대 군사안보학과 교수는 "장기복무가 가능한 구조로 군 인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 매년 8000여명 장교가 임용되지만 장기복무자 선발 비율은 25% 수준이다. 부사관도 매년 9000여명 임용되지만 그중 43%만이 장기복무자로 선발된다"며 "장기복무가 불확실하고 정년도 짧은 군 직장은 사회 일반 직장에 비해 취약하다. 부적격자와 희망 전역자를 제외한 전원이 장기복무가 가능한 인력구조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제대군인 재취업 문제에 관해서는 "매년 7000~8000명의 직업군인이 전역하는데 군인연금을 받지 못하고 전역하는 군인은 60%에 달한다. 이들의 취업률은 56.6%(2018년)로 일반 국민 고용률인 70.2%(25~29세)에서 75.7%(30~39세)에 미치지 못한다"며 "직업군인 재취업 문제를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병제 전환을 위해서는 군인 보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직업군인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초급간부 보수는 중소기업 수준에서 대기업 수준으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며 "간부 정년을 연장하는 한편 장교는 중령까지 승진을 보장하고, 부사관은 장비복무비율이 60~70%까지 상향되도록 정원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