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근의 반려학개론]보신탕이 뭐죠?
윤신근의 반려학개론
[서울=뉴시스] 어느새 여름이 됐다. 11일은 초복(初伏)이기도 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맘때면 '보신탕'이 사회 구성원 간 갈등 요소로 부각될 정도였는데 이제는 이를 먹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어느새 잊혔고, 점점 소멸돼 가고 있다. 문득 필자가 동물보호연구회를 설립했던 1991년을 돌아본다. 당시엔 국내 식용견 수가 반려견 수를 압도할 정도로 많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보신탕을 먹었다는 얘기다. 그때도 보신탕 반대 움직임은 있었다. 시작은 해외였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일부 유럽 국가가 한국에서 보신탕을 금지하지 않으면 대회 참가를 보이코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놀란 정부는 보신탕집을 대로변에서 영업할 수 없게 했다. 이젠 아련한 추억 속의 이름인 프랑스 여성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격렬하게 우리나라의 보신탕 풍습을 비판했다. 국내에서는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유문화다" "내정간섭이다" 등 반발하는 목소리도 컸다. 그러다 서서히 국내에서도 보신탕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필자도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여러 지상파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수이자 약자였던 보신탕 반대론 선봉에 섰다. 일간지 칼럼이나 인터뷰를 통해서도 보신탕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파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계, 재계, 언론계 등 우리 사회 지도층 상당수가 보신탕을 즐기고, 국민 상당수가 이를 고유한 문화이자 전통으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한 상황에서 목소리 높여 보신탕을 반대하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뿌리 깊은 개 식용 악습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보신탕을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것만 고수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병행하기로 했다. 바로 불모지였던 이 땅에 '반려동물 문화'(당시엔 애견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올림픽 개최 이후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때였다. 집마다 반려견을 키우고, 상대적으로 보신탕과 거리가 먼 청소년, 어린이가 반려동물을 비롯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보신탕이 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시간도 들고,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보신탕 애호가들과 갈등하고 대립한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면 부딪히는 것 외에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신탕 반대가 아닌 반려동물 문화를 확산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자 기회가 더 확대했다. 필자는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와 같은 동물 프로그램은 물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호기심 천국' 등 당대 인기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출연해 반려동물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알렸다. 일간지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서도 반려견(당시엔 애견) 품종을 소개하고, 키우는 법을 알려주는 등 반려동물 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했다. 사비를 들여 어린이 동물 사생 대회, 백일장 등을 매년 개최했다. 이는 신문, 방송을 통해 앞다퉈 보도됐다. 만일 필자가 보신탕 반대만 주장했다면 어땠을까? 노출 기회도 적었을 것이고, 있다고 해도 여름에 국한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제 반려견이 식용견보다 훨씬 많은 세상이 됐다. 20년 전만 해도 반려견에게 옷을 입히는 것이 뉴스에 나왔지만, 이제는 당연해졌다. 보신탕집은 정부가 굳이 퇴출하지 않아도 찾는 이가 없어 알아서 폐업하고 있다. 아마 몇 년 안에 보신탕은 역사책에나 기록되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 문득 필자와 동물보호연구회의 공만 부각한 듯하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만 노력했겠는가. 한여름 치열하게 싸우며 식용 위기에 놓인 가련한 생명을 한 마리라도 더 구하려고 애썼고, 지금도 대의를 위해 몸 바치고 있는 동물권 행동가들에게도 경의와 감사를 전한다. 다만 오늘 필자가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린 이유는 '젠더 갈등'처럼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갈등을 푸는 방법이 반드시 '치킨 게임'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어떤 방법이 더 옳든 후대에게 "보신탕이 뭐죠?"라는 질문을 빨리 받고 싶은 마음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윤신근 수의사·동물학박사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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