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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성실함은 때로 예술이 된다…영화 '암살자들'

등록 2021-08-1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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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먼저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만한 팩트 두 가지. 하나는 2017년 2월 여성 두 명이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로 살해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 용의자 두 명이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이라는 점이다. 이번엔 아마도 많은 이들이 모를 만한 팩트 한 가지. 시티와 도안은 2019년 무혐의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암살자들'(감독 라이언 화이트)은 이 세 가지 팩트 사이의 빈 곳을 추적한다. 시티와 도안은 누구인가. 북한 공작원인가, 아니면 북한이 고용한 청부살인업자인가. 둘 다 아니라면 두 사람은 김정남을 왜 죽였는가. 그들이 이 암살을 은밀히 수행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석방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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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이 다큐멘터리로서 창의적인 형식을 보여준다거나 어떤 영화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내 관객이라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숱하게 봐온 스릴러 형태 구성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나갈 뿐이고, 이 작품이 풀어내는 이야기라는 것도 인내심을 가지고 검색만 몇 번 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살자들'은 무가치한 작품인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미덕은 이 희대의 살인 사건에 관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시간을 들여 직접 확인한 뒤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해낸다는 점이며, 그것을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통해 알기 쉽게 풀어내 관객에게 소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암살자들'은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해 기록으로 남긴다. 어떤 작품은 이렇게 그 시도와 성실함, 존재 자체만으로 예술이 된다.

라이언 화이트가 내세운 가설은 이것이다. ①시티와 도안은 평범한 여성이다. ②돈을 벌기 위해 쿠알라룸푸르에 왔다. ③북한 공작원들은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한 뒤 두 사람에게 접근했다. ④그들은 시티와 도안에게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던 몰래카메라를 찍는 데 참여하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⑤두 여성은 수개월에 걸쳐 이 비디오 촬영에 참여하다가 북한 공작원의 최종 목표인 김정남에게까지 장난을 치기에 이른다. ⑥그렇게 시티와 도안은 1급 살인 용의자로 체포됐고, 북한 공작원들은 출국하거나 자취를 감췄다. 정리하면 '시티와 도안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이용당했고, 그들은 김정남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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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이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정권이 암살을 기획·실행하면서 벌인 반인륜적 행태를 고발하는 것이다. 다만 '암살자들'은 이 만행의 기원을 향해 파 들어가기보다는 이 사건이 드러내 보인 갖가지 상황을 놓치지 않고 훑는다. 사건의 진실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함께 이 암살을 가능하게 한 주변 상황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판다. 구심(求心)보다는 원심(遠心)을 지향하는 연출이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북한 공작원이 이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김정남을 죽일 수 있었던 배경엔 돈만 주면 쉽게 접근 가능한 동남아시아의 취약한 여성 인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또 북한 용의자들이 단 한 명도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에 잡히지 않은 건 당시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상황과 관계가 있다는 것. 또 시티와 도안의 무죄를 방증하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2년 넘게 구금돼 있을 수밖에 없던 정치적 이유와 반대로 이들이 풀려나게 된 정치·외교적 상황의 변화,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김정은의 국제 정치 데뷔 등이다. 라이언 화이트 감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김정남을 죽인 것이 반인륜적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암살을 위해 그들이 판을 깔고 이 사건에서 빠져나오는 방식 역시 최악이었다.'

'암살자들'은 12일 개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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