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의 사진으로 보는 문화] 전시? 공연?...정연두·수르야 'DMZ 극장'
국립현대미술관, 다원 예술 프로젝트동부전선~서부전선 13개 전망대 촬영한사진,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선봬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무장지대(DMZ)의 다양한 역사적·장소적 맥락을 전시, 퍼포먼스 등을 통해 살펴보는 ‘DMZ 극장’을 20일부터 오는 10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펼쳐진다. 작가 정연두와 연출가 수르야가 협업하여 선보이는 ‘DMZ 극장’은 사진,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비무장지대가 지닌 분단과 전쟁의 이데올로기적 맥락이나 생태적 보고(寶庫)로서 특징을 넘어선 의미와 서사의 확장을 시도한 다원예술 프로젝트이다. ‘DMZ 극장’은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에 이르는 13개 전망대를 촬영한 사진 작품과 각 전망대에 얽힌 현실 혹은 우화를 함축한 조형 오브제, 그리고 이를 무대 삼아 진행되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전시 작품과 퍼포먼스는 도라 전망대, 승리 전망대, 열쇠 전망대 등 각 전망대의 이름을 따라 <도라극장>, <승리극장>, <열쇠극장> 등으로 이름 붙여졌다. 작가들이 5년여 동안 DMZ 주변 전망대를 돌며 수집한 다양한 구전 설화와 공적·사적 서사들이 사진과 오브제 설치 중심의 전시와 배우 및 연주자가 참여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종횡무진 펼쳐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DMZ에 대해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거대 서사가 놓친 또 다른 이야기, DMZ의 대안 서사를 만나게 된다. 전시 기간 동안 13개 전망대 이름과 관련 서사로 구성한 퍼포먼스가 9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 매주 수·토요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다. 미술관 누리집을 통해 사전예약 후 관람 가능하다. 강화 평화극장
북한의 임진강과 남한의 한강이 만나 먼바다로 흘러가는 길목 강화도. 이곳은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이용해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들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강화극장'을 구성하는 형형색색 페트병 오브제와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는 페트병을 이어 만든 오브제를 구명대 삼아 바다를 건너온 탈북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두산 통일극장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서는 북한 황해북도 기정동 선전마을이 보이는데, 선전마을인 만큼 실제로 사람들이 모두 거주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남한에 보여주기 위해 일부 연출된 장소이기도 하다. 해서 지붕조차 없는 건물들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두산 통일극장'은 지붕 없는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상을 기반으로 한다. 군인 트럭 타이어에 군모와 총을 연결하고 그 위에 초록색 천을 덮어 나팔꽃 모양의 유연한 천 오브제를 전시장에 설치한다. 배우들은 공연 시 이 천을 자유롭게 펼치고 닫는다. 초록색 천은 오두산 전망대 앞의 푸른 물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지붕 없는 마을의 비 오는 어느 날의 흥겨운 일상을 상상케 하는 매개체이다. 배우들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비 오는 날, 행복하게 천 놀이를 하는 선전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연출한다. 도라극장
한국전쟁 휴전 후 포로 교환을 했던 도라 전망대 근처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소재로 하여 만남과 헤어짐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전쟁 후 남북 간에 단 한 번의 포로 교환이 있었고, 양쪽의 포로들은 남한과 북한 중 한 곳만을 선택하여 넘어갈 수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번 건너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라극장'을 구성하는 오브제는 두 개의 팔레트 판과 서로를 당기는 황금색 밧줄이다. 이를 배경으로 쇼 마스터의 극적 대사와 남북 이산가족 만남 시 오고 간 실제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키 큰 남자와 키 작은 남자 사이의 줄다리기 퍼포먼스가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승전극장
'승전극장'은 한국전쟁 당시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누이의 의족을 마련하기 위해 아끼던 경주마 ‘아침해’를 미군에게 팔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 경주마는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인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탄약 보급소로부터 산 정상까지 50여 회 왕복하며 무거운 탄약을 실어 나르는 등, 승리의 큰 공을 세우고 ‘레클리스’(reckless, 거침없는)라는 이름의 유명한 군마(軍馬)로 거듭난다. 그리고 1997년, 라이프(Life)지에서 선정한 미국 100대 영웅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상승극장
상승 전망대의 장소는 1974년 구정섭 중사가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로 땅굴을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설치된 곡괭이와 연통 형태의 긴 오브제는 남과 북을 통과하는 땅굴을 상징한다. 텅 비어있는 굴 구멍에서 터널을 뚫고 나온 듯한 배우의 퍼포먼스는 땅굴이 암시하는 긴장이 아니라 터널 끝의 희망을 유추하게 한다. 열쇠극장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던 고지전(高地戰)을 비롯하여 DMZ 주변 지명에 얽힌 설화가 오브제의 내용과 형태를 구성한다. 수많은 포탄 투하로 인해 하얀색 탄약 재가 고지를 덮은 모양이 백마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백마고지’, 전쟁 중 포탄이 너무 많이 떨어져 봉우리가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아이스크림 고지’, 전쟁의 요충지이자 가장 높은 산인 ‘오성산’, 고래를 닮은 ‘고왕산’, 톱니처럼 이어진 뾰족뾰족한 모양의 ‘악어턱 능선’, 수컷 닭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계웅산’, 두 개 봉우리가 도드라진 ‘낙타봉’, T 자 모양의 ‘티본 능선’, 화채 그릇을 닮은 ‘펀치볼 마을’ 등이 움직이는 오브제 모빌로 설치되었다. 멸공극장
'멸공극장' 오브제 및 퍼포먼스는 한국전쟁 발발 후 피난민들이 이동한 평야 지역인 민들레 벌판의 구전 설화에서 출발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난민들은 들판을 통해 이동하였는데, 지뢰를 밟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피난민들 사이에서 ‘먼 들에 가지 마라, 먼 들에 가지 마라’라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이것이 지금의 민들레 벌판으로 구전 변형된 것이라 한다. 민들레 벌판 형상의 오브제가 전시장에서 설치된 가운데, 전쟁고아로 버려진 후 지뢰를 밟아 영원히 이곳에 살게 된, 흙이 되어 버린 민들레 할머니의 이야기가 퍼포먼스로 펼쳐진다. 철원 평화극장
한반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정치, 군사의 요충지였던 철원. 일찍이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며, 백마고지 전투와 철의 삼각지대 전투, 저격능선 전투 등,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가장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의 극적 역사를 품고 있는 철원 평화 전망대 근처 두루미는 인간이 떠난 후 그곳에 남아 남과 북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생명체이다. 두루미를 상징하는 한 명의 배우가 긴 봉을 따라 하늘로 힘차게 오르는 몸짓은 고통과 죽음을 지나 행복을 염원하는 퍼포밍이다. 승리극장
승리 전망대 주변에 흐르는 유명한 강의 이름은 ‘화강(花江)’으로, 강변에 꽃이 많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북 확성기와 초소를 형상화한 오브제가 수직으로 설치된 가운데, ‘화강의 여신’이 그 위에 앉아 전망대 주변에서 일어났던 치열한 고지전과 각종 지형과 설화를 설명하는 퍼포먼스를 극적으로 수행한다. 사상자들의 피가 흘러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고 하는 ‘피의 능선’, 하얀색 탄약 재가 고지를 덮은 모양이 백마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백마고지’ 등을 설명하는 화강 여신의 언어적 수행성은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우화적으로 상기시킨다. 칠성극장
한국전쟁 때 평양에 최초로 입성한 육군 7사단 칠성부대. '칠성극장'은 군인들이 총 대신 오색의 풍선을 들고 전투가 아닌 관광을 위해 평양에 입성하여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을 연출한 사진 작품에서 출발한다. 이에 더해 개량 한복을 차려입은 소녀가 평양의 어느 광장에서 자유로이 페달을 밟을 자전거 한 대가 전시장에 놓여있다. 관광을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될 날을 꿈꾸어볼 수 있을까? 을지극장
'을지극장'의 서사는 가칠봉에서 시작한다. 가칠봉이란 금강산 1만 2천 봉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으로 더해진 7번째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북녘을 보면 선녀 폭포라는 아름다운 폭포가 보인다. 1970년대에 북한군이 대남 심리전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북한 여군들이 목욕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이러한 도발에 상응하여 남한도 1992년 가칠봉 정상에 수영장을 짓고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열게 했다는 설도 있다. '을지극장'에는 대남 대북 심리전의 주요 매체인 ‘소리’를 상징하면서도 부대마다 있는 급수 타워를 연상시키는 ‘핸드팬’이 철골구조의 수직 오브제 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금강산극장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감호라는 호수를 형상화한 투명한 물방울 모양의 오브제 위에 거울이 놓여있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에서 선녀는 아이 셋을 안고 업고 다리에 끼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배우들에게 분장실은 세상과의 인연을 잠시 내려놓고 무대라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날아 올라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금강산극장'의 거울과 물방울 설치물은 바로 이 분장실에 자리 잡고 있다. 긴장과 흥분 속에서 무대로의 승천을 준비하는 배우들을 위한 곳이다. 고성 통일극장
DMZ의 동쪽 끝에는 금강산과 해금강이 가까이 보이는 고성이 위치한다. '고성 통일극장'에는 금강산에 서식하는 멧돼지, 곰, 고라니 등, 야생 동물들에 관한 신화가 스며들어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닥불 주변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상 속의 동물 이야기를 모닥불을 형상화한 반짝이는 오브제와 야생 동물 탈을 쓰고 공연을 펼치는 배우들의 몸짓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선을 너머 하나로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