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역선택 방지 갈등①]'룰의 늪'에 빠진 대권주자들 자중지란
역선택 방지 조항 놓고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 분열洪·劉 호남·여당 지지층 강세 보이자 역선택 논란 증폭윤석열·최재형·황교안 역선택 방지 찬성 vs 8명 '반대'역선택' 내홍에도 당 지도부는 선관위에 공 넘겨 방관
당내 경선이 시작되자마자 대선주자들은 역선택을 놓고 '룰(규칙)의 늪'에 빠지면서 각자 유불리를 따지는 데만 혈안이 돼 정책대결은커녕 비방전에 몰두하면서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당 안팎에선 내년 대선에서 승리해 수권정당의 면모를 되찾을 수 있을지, 경선이 끝난 후에도 '원팀'으로 정권탈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해도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던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순식간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2강 1중' 구도를 형성하면서 역선택 논란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당초 윤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투톱'으로 선두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됐지만,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이 8월 들어 큰 폭으로 빠지는 대신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이 나란히 동반 상승하면서 야권의 대선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문제는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의 지지율이 진보적 성향이 강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호남권에서 급등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의 터줏대감과도 다름없는 두 후보의 지지율 상승 동력이 다름아닌 여권의 텃밭에 있었던 셈이다. 당 일각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를 일컫는 '대깨문' 혹은 '문빠'를 의식해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 전 총장 측은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는 분들의 의사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결정 과정에 개입한다는 것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지지자들 열망을 받들지 못하는 것(장제원 총괄실장)", 최 전 원장 측은 "역선택을 막는 것이 본선 경쟁력을 높이고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길(박대출 전략총괄본부장)"이라며 여권 지지자들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경선 여론조사에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자는 입장이다. 홍 의원은 민주당원이 공화당 후보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지지했던 레이건 데모크라트' 현상을 들어 "레이건도 민주당 지지층의 교차 지원을 대폭 이끌어내 두 번이나 대통령에 수월하게 당선됐다"며 "A당을 지지하면서 정작 투표에서는 B당 후보를 찍는 것은 역선택 투표가 아니고 교차 투표"라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역선택을 내세워 반쪽 국민경선을 하자고 하는 시도는 어떤 형태로든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전 의원은 "8명의 후보가 반대하고, 역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대선 패배를 초래할 게 뻔한 경선룰을 기어코 만들겠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유 전 의원 캠프의 오신환 종합상황실장도 "역선택 방지 조항은 그 실체 자체가 유령과 싸우는 것"이라며 완전 개방 경선을 요구했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둘러싼 대권주자들의 신경전은 정홍원 당 선거관리위원장을 향한 공세로 이어지면서 당내 긴장감이 한층 높아졌다.
이에 윤 전 총장 측은 "경고한다. 더는 경기의 심판인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을 흔들지 마라"고 맞서는 한편, 유 전 의원과 홍 의원을 동시에 겨냥, "과거에 앙숙이던 두 후보가 요즘 윤 후보를 공격하는데 손발을 착착 맞추는 게 정략으로 보여 '홍승민'이라는 신조어도 나오고 있다"며 비방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일각에선 대선을 불과 6개월 남겨놓은 시점에까지 경선 규칙을 놓고 당 전체가 내홍을 앓는 모습을 노출하자, 국민의힘이 수권정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란 지적도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7월 경선 규칙을 수정, 보완해가며 혼란을 최소화한 것과는 대비된다. 당초 민주당 당헌·당규는 대통령 후보 선출과 관련된 규정으로 '국민경선 또는 국민 참여경선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세부 규칙이 마련돼 있지 않아 매번 대선 때마다 경선 룰을 두고 갈등을 반복했다. 통상 대선 경선룰은 각 경선 후보측과의 협의하에 경선 직전에야 정해졌기에, 대선을 1년8개월여 앞두고 경선룰을 조기에 확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경선 과정에서 후보 선출 규정을 만들 경우 후보마다 각자 유리한 룰을 고집하며 당의 모습이 사나워질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경계한 것이다.
일각에선 '룰의 전쟁'을 방관하고 있는 당 지도부의 책임론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당내 최고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가 권한에 맞는 역할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당내 역선택 논란을 지도부에서 교통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차례 말했지만 지도부는 관여 안 한다"며 중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준석 당대표는 "정홍원 총리께 참 어려운 조정을 부탁드려서 죄송하다. 하지만 정홍원 총리께서는 권위와 경륜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최고위가 아무리 중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선관위에서 역할을 해주시는게 중요할 것이라고 본다"며 선관위로 공을 넘겼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