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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후석 "디아스포라, 다양·다름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능력"

등록 2021-09-11 07:57:00   최종수정 2021-09-27 07: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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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자전적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 출간

영화 '헤로니모' 감독…정체성 찾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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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 저자겸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감독 전후석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9.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현주 기자 = "'디아스포라'는 고착화된 나, 정체된 현실에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의지예요. 사회적으로는 다양성, 다름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이죠. 점점 다양해지는 세상 속에서 디아스포라는 좋은 다리 역할을 할 겁니다."

다큐 영화 '헤로니모' 감독이자 첫 자전적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를 펴낸 전후석 감독을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코트'에서 만났다.

'당신의 수식어'는 30대 청년, 변호사, 영화감독,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등 여러 개의 수식어를 가진 전 감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 코트라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전 감독은 휴가차 떠난 쿠바에서 우연히 '헤로니모'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그 길로 영화의 세계로 뛰어든다.

"공항에 마중나온 사람이 쿠바 한인 3세, 파트리시아였죠.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를 통해 '헤로니모'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헤로니모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처음엔 영화가 아니라 유튜브 영상 정도로 계획했었는데 일이 점점 커졌죠."

'헤로니모'는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쿠바 혁명의 주역이자 쿠바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 헤로니모 임, 한국 이름 임은조와 그의 아버지이자 독립운동가 임천택의 흔적을 쫓는 다큐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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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 저자겸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감독 전후석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 하고 있다. 2021.09.11. [email protected]
전 감독은 "만약 헤로니모가 쿠바 혁명에 참석하지 않고, 쿠바 한인 공동체 복원을 위해 여생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반응하진 않았을 것 같다"며 "헤로니모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특출난 캐릭터였다. 나를 흡입하는 힘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변호사였던 전 감독은 영화 '헤로니모'를 통해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의 세계에 뛰어든다. 그는 "보통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이 안정, 성공 이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 같다"며 "그런 내가 '헤로니모'와 만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3살 때 한국으로 와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가 영화와 법을 공부한 재미 한인이다. 대한민국에서 절대 다수의 일원으로 살다 미국에서 소수가 되는 경험을 한 뒤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그림자처럼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자신의 수식어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하던 그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만난다.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지만 전 감독은 누구나 디아스포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디아스포라는 이민자, 소수자, 이방인으로서 늘 편견과 싸우게 되죠. 그렇지만 다른 말로는 이중, 다중 정체성을 갖고 다른 문화권과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과거 단일민족 국가라고 했지만 이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죠. 갑자기 다른 문화권 사람을 수용하라고 하면 어렵지만 디아스포라가 좋은 다리,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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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 저자겸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감독 전후석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 하고 있다. 2021.09.11. [email protected]
'난민' 문제가 나오자 우리나라의 경우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통일'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한반도 내에는 2500만명의 다른 종류의 한국인들이 있는 것"이라며 "통일이 되면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누구나 난민과 같은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 감독은 "미국 트럼프 현상을 보면 주류였던 백인, 기독교인, 중산층들이 그간 유지한 권력을 공고히 하려다 보니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이라며 "우리도 언제든 이방인이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디아스포라를 통해 다양성, 혼합성을 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종착역은 '세계 시민'"이라며 "결국 어떤 정체성이건 고립이 아닌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 속 미국에서 아시아계가 혐오 범죄 대상이 되는 걸 보면서도 디아스포라적 사유를 적용하게 됐다.

"코로나와 디아스포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타자의 존재 정당성을 의심하는 게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코로나 근원지라며 아시안이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됐죠.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우리의 정당성을 의심받을 때 우리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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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 저자겸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 감독 전후석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 하고 있다. 2021.09.11. [email protected]
전 감독은 "국내로 들어오는 다른 나라의 디아스포라들, 다문화 가정들을 보면서 지나치게 한국화를 강요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며 "그들 고유의 정체성이 수용될 수 있는 대인배 사회가 되면 좋지 않을까, 그 안에서 디아스포라적 사유가 유용하게 하나의 담론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CHOSEN'이라는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연방 하원직에 도전한 재미 한인 후보자 5명에 관한 이야기로, 미주 한인사와 한인 정치인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다큐 영화다.

"'초선'이라고 읽지만 사실 '조선'이라고도 읽을 수 있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죠. 다소 불편한 영화가 될 수도 있어요. 한국에 좌우 대립이 있듯 미국 한인사회에도 이념적 갈등이 있어요. 단순히 '국뽕'적 느낌 이면의 다양한 부분을 보고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길 바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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